바울은 태풍 속에서도 자신의 소속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 14. 얼마 못되어 섬 가운데로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하니 15.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16.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17.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18. 우리가 …
오늘 설교에서는 바울의 항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바울은 태풍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고, 이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도 안심하라고 전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좋은 환경이나 조건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가 진정한 축복임을 깨닫고, 그 믿음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잊지 않고, 그에 따라 살아가기를 다짐합시다.
- 사도행전 27:13-26 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 14. 얼마 못되어 섬 가운데로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하니 15.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16.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17.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라 20.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 사도행전 27:13 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
- 사도행전 27 1. 우리의 배 타고 이달리야로 갈 일이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사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2.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행선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3.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받음을 허락하더니 4.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바람의 거스림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 5.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성에 이르러 6.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7. 배가 더디 가 여러 날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 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 8.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성에서 가깝더라 9.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10.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되 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12. 그 항구가 과동하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 편은 동북을, 한 편은 동남을 향하였더라 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 14. 얼마 못되어 섬 가운데로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하니 15.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16.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17.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라 20.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27. 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 이리저리 쫓겨 가더니 밤중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28. 물을 재어보니 이십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29.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주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더니 30.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주려는 체하고 거루를 바다에 내려놓거늘 31. 바울이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32. 이에 군사들이 거룻 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33.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을 음식 먹으라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34. 음식 먹으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 하고 35.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36. 저희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37.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인이러라 38.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39. 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 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40.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킷줄을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을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41.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당하여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혀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가니 42. 군사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저희를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43.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저희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 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44.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으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항해의 중요성
- 항해의 시작
- 다수의 의견과 하나님의 뜻
- 위기 속의 소망
- 하나님의 사자와 소속
- 변하지 않는 부르심
- 하나님을 믿는 확신
이번 주일 설교로 만든 6일 묵상입니다 —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에 하나씩.
이번 주일 말씀에서 뽑은 5문제입니다. 보기를 눌러 정답을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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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제안한 항구에서 겨울을 보내자는 의견에 대해 배의 승선원들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바울의 제안에 대해 배의 승선원들은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고, 그들은 더 좋은 환경의 항구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설교자: 백승철 목사
날짜: 2026-10-03
설교하기 어려운 장소가 아마 효사랑 선교입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 목사님이 설계한 게 아니더라고요. 보니까 뭔가 목사님, 유명한 목사님들이 설교하기 때문에 우리 어르신들 귀가 상당하겠다. 싹이 나면 큰일 나겠죠. 예지, 예 수준이 그만큼 대단하다. 오늘 설교 본문이 사도행전 27장 13절부터 26절까지거든요. 항해를 한번 해 보겠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복귀를 합니다. 3차 선교 여행 후에 체포가 돼요. 이 재판을 받아요. 재판이 세 번 이루어지는데 그 세 번 재판이 종결되고 나서 드디어 로마로 향합니다. 배를 타고 이 지점이 가이사라고 하는 지점입니다. 그게 로마까지 거리가 2,500마일입니다. 그 배를 타고 한 2,400마일을 가요. 어마하죠? 그리고 한 100마일 정도를 육지를 통해 로마에 입성을 합니다. 긴 거리를 가요. 지금 오늘 말씀의 출발 지점은 그레데 섬이라고 하는 아주 작은 항구입니다. 미항이라고 이름하는 그 항구에 정착이 돼 있어요. 그 특이한 것은 겨울철에는 배가 항해하지를 못합니다. 이유는 기상이 악조권이기 때문에 3개월 정도를 배가 뜰 수가 없어요. 그거는 그 당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그래서 미양의 배가 정착하고 있었을 때 바울이 제안을 해요. 우리 떠나지 말자. 이 미양에서 겨울을 지나고 난 후에 로마로 항해하자. 그 얘기를 해요. 만약에 배가 움직이면 배가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생명의 위협을 당할 수 있다. 그러니 미양 항구에 겨울철 지나고 나서 출발하자. 어땠을까요? 그 배에는 바울을 포함해서 276명이 승선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말에 동조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요? 없어요. 성경 기록에 만약에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그 사람 이름을 반드시 누가는 기록해 놓았을 거예요. 단 한 명이 없어요. 선주, 선장, 그 배 안에 있던 경험자들, 다수의 사람들은 이 미양이라고 하는 항구가 너무 열악하다. 그러니 곁에 있는 40마일 되는 지점에 베닉스 항구가 있으니 그로 가자. 그 이유가 단순해요. 조건과 환경이 거기가 너무 좋기 때문에. 아주 올바른 판단이죠. 이 작은 항구에서 불편하게 3개월을 지내는 것보다는 더 좋은 환경이니까 이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자세히 현미경 관찰을 해 보면 우리 신앙의 부정적 시각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 우리는 좋은 환경, 좋은 조건, 잘되는 것 이것이 축복의 조건이라고 잘못 생각하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하나님 판단의 기준일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것이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목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것이 이제 완전히 다 무너집니다. 다수의 의견에 의해서 베닉스 항구로 배가 움직이기 시작을 해요. 자, 13절 한번 보십시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다울 감아 그대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어떤 느낌이 있나요? 이 사도행전 27장과 28장은 특별히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여러분들이 감독이라고 생각하셔야 돼요. 하나의 한 장면, 한 명 장면들을 촬영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너무나 이 항해하는 장면들이 귀에 쏙쏙 들어오고 머리에 감깁니다. 13절도 하나의 장면이라고 생각을 하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너무나 평온해. 세상 저렇게 평할 수 있나요? 남풍이 순하게 불죠. 그리고 다슬감 그레대 해변을 중심으로 항해를 하더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어요. 너무나 평온해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아요. 중심이 뭡니까?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우리 생각이 맞았다. 이 미안에서 머무는 것보다는 베닉스 항구로 가서 머무는 것이 우리 계획과 우리가 판단한 것이 옳았다. 그것이 강조됩니다. 누가 이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짚어 가지고 기록을 해 놓았어요. 이거 맞은 거다. 얼마나 기뻐하겠어요? 그리고 무슨 이야기했겠습니까? 뒷담화했겠지. 바울 봐라. 저 인간은 제수인데 뭔 자기가 잘났다고 미양이라고 하는 항구에서 머물게 하자고 그런 제안을 하냐? 어이 바울의 생각이 틀렸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그 안에 다 내포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14절 보십시오. 인생 참 묘합니다. 얼마 안 되어 섬으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이제 시작입니다. 그 시간이 1, 2년 걸린 게 아니에요. 얼마 안 돼서, 아니 13절과 같은 상황에 웬 광풍이 일어납니까? 웬 태풍이 일어납니까? 이런 기상 조건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입니다. 여기 유라굴로라는 광풍은 태풍입니다. NIV 영어 성경은 북동풍으로 번역을 해 놨고 다른 영어 성경은 허리케인으로 번역을 해놨어요. 그러니까 이 태풍 가운데 가장 강력한 태풍이 보라 닥친 거예요. 그래서요. 15절 보면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 뭘로 가는 거예요? 태풍이 부는 방향대로 이 배가 움직이기 시작을 합니다. 베닉스로 가야 되는데 그쪽 방향이 아니고 태풍이 부는 대로 움직여요. 이 성경에서요. 바람에 맞춰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이 표현이 반복이 됩니다. 간신히 이런 표현도 반복이 돼요. 그러다가 이 상황 설명을 하나의 장면 장면으로 기억을 하십시오. 가이라 작은 섬 내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 거루가 뭐지요? 예. 거루는 구명선입니다. 자그마한 배예요. 이걸 거루라 그럽니다. 이거 옛날 번역 성경이 27장 집에 가서 이제 1절부터 쭉 읽어 보십시오. 예.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 있습니다. 거루는 이 작은 구명선과 같은 작은 배입니다. 배 말미에 밧줄로 묶어 가지고 급할 때 사용하려고 하는 그 배예요. 거루를 잡아. 그거를 끌어올리는 거예요. 가판 위로. 태풍을 보니까 온갖 반응을 다 합니다. 태풍에 맞서서. 한 가지 13절에 놓쳐서는 안 될 것은 그 세번역 성경은 거기에 부사를 하나 붙여 놨어요. 마침내 남풍이 순하게 불어서 움직이기 시작을 했다. 이 베닉스로 가는 방향은 하나님 뜻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너무나 딱딱 모든 게 맞아 떨어지는 거예요. 지상도 맞아떨어지고 환경도 맞아떨어지고 순간도 맞아떨어지고 이 맞아떨어지는 장면이 요나서에 나옵니다. 요나가 하나님 부르심을 받고 도망가잖아요. 요박까지 내려갔는데 성경에 마침 다시 가는 배를 발견합니다. 그 다시 도망은 가요. 그 배를 타고 하나님 낯을 피해서 도망가는데 모든 게 잘돼요. 점 이렇게 딱딱 맞아 떨어집니까? 모든 조건도 잘되고요. 너무너무 잘돼. 그 길은 망하는 길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길입니다. 우리는 항해에서 그 광경을 이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이 가이다라고 하는 이 작은 섬을 끼고서 태풍에 밀려서 배가 움직여요. 이 가이다라고 하는 이 작은 섬은 태풍이 불어서 시야에 보이는 마지막 섬이에요. 그러면 이 작은 섬에 가서 어찌하든지 노력을 해서 거기에 정착하려고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런 모습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 섬을 바라보면서 지나간다는 것을 장면을 보고 상상을 해 보십시오. 그것이 마지막 희망이고 마지막 소망이었는데 그 작은 섬이지만 거기에 정착을 해야지만 살아날 수가 있는데 살아날 수 있는 요지를 눈으로 보고서 스쳐 지나가요. 태풍에 밀려서 얼마나 비극적입니까? 17절 보십시오. 자, 같이 읽습니다. 시작. 끌어올리고 줄을 가지고 돌려고 스르니스에 걸린과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여기도 그냥 쫓겨가더니. 끌어올리고 스르디스도 뭐예요? 모래 섬 같은 겁니다. 모래톱 바다 밑에 거기에 걸리면 배가 움직이질 못해요. 온갖 두려움을 가지고 배가 태풍에 밀리는 대로 가고 있어요. 그냥 쫓겨가더니 태풍을 피해야지만 사는데 태풍의 모든 것을 그냥 맡기는 거예요. 죽음의 길에 그냥 몽땅 맡길 수밖에 없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이게 뭡니까? 이런 인생 살고 싶습니까? 예. 아니, 태풍을 피해야 되는데 이제는 그 태풍에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19절 보십시오. 자, 같이 읽습니다. 4월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 이것도 비극적인 그 장면이에요. 그들의 손으로 모든 걸 다 버려요. 이 큰 화물선이에요. 거기에는 온갖 화물이 들어 있고 곡물도 들어 있어요. 이런 걸 그냥 다 갖다 버려요. 어디에? 바다에. 기구고 뭐고 이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 몽땅 버리는데 누구의 손으로 버립니까? 그들의 손으로 캐시를 갖다가 막 뿌리는 거예요. 바다에 살기 위해서 소형이 없는 겁니다. 그 배실은 수많은 화물과 곡물은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니에요. 생명에 대한 살아야 되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다 갖다 바다에 쏟아붙습니다. 그리고 20절 마지막 결론을 내립니다. 읽어 보십시오. 여러 날 동안은 해도 별도 없지 아니하고 큰 바람이 그대로 있음에 구원의 영광 없어졌더라. 아, 이게 마지막 결론입니다. 그 배 안에 있던 바울을 포함한 275명이 내린 결론이 20절이에요. 여러 날 동안 약 14일 동안 태풍에 밀려 가지고 뭐 토하는 사람도 있고 별의별 사람 다 있겠죠.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날이 흐렸던 것 같아요. 해와 별은 그 당시 GPS 역할을 합니다. 배가 움직이는데 그 GPS를 따라서 움직여 가야 되는데 해도 별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 일어났으니 어디로 가야 되는지도 몰라요. 그대로 있음에 구원의 요망마저 없어졌다라. 이게 영어 성경이 너무나 번역을 기가 막히게 해놨어요. all fin all, 완전히 우리는 마침내 포기해. 우리에게 있던 모든 소망들을 완전히 내려놓은 거예요. 죄로. 예. of being sa 특별히 생명을 보존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도 소망과 여건이 조성되지 않는 거예요. 바다에 돈을 뿌릴 때, 바다에 화물을 던져 버렸을 때는 그래도 희망이 있었어요. 그 희망마저 완전히 사라진 거예요. 해결책이 없어요. 방법이 없어요. 여기서 성경이 끝나면 얼마나 비극적입니까? 그런데 또 하나 장면이 돌출됩니다. 드디어 주인공이 누구예요? 그 배의 바울입니다. 바울이 주연입니다. 바울이 등장을 해요. 그럼 바울이 등장한다는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어떤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22절 보십시오. 21절에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에 대해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성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무슨 생각이 들어요? 21절, 이게 마음에 쏙쏙 들어옵니까? 와, 우리는 신앙인이 열 상당히 제가 수준이 높다 그랬죠. 설교 시작 전에 상당히 수준이 높으신 거예요. 저 21절을 보고요. 내 마음에 쏙쏙 들어온다고 하시는 분들은 바울의 마음을 읽으신 거예요. 이거는요.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고 고통당하고 있잖아요. 그때 바울이 미양 항구에서 출발하기 전에 저런 얘기를 했다는 거를 다시 상기시키는 겁니다. 왜 너희들은 떠나지 아니했으면 이런 일 당했겠느냐? 잘 봐라. 이 타격과 손상을 미양에 머물고 있었으면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을 텐데 잘됐다. 아주 내 말 안 들어 가지고 이런 일 벌어진 걸 보니 아주 잘된 일이다. 이거를요. 비꼬아서 들으면 아주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바울은 미양 항구에서 전했던 메시지를 전합니다. 왜 그런가요? 바울의 언어에는 하나님 말씀 믿음이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상기시키는 이 말씀의 내용 중에는 종교적인 용어가 하나도 안 들어가 있어요. 뭐 거기에 하나님이 들어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들어가 있습니까? 구원에 대한 믿음의 구원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까? 전혀 그런 내용이 들어가지 않고 하나님 말씀과 믿음에 기초한 내용을 일반 언어로 사람들이 알아듣기 좋게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뒤에 쏙쏙이 들어오도록 강렬하게 전하는 메시지예요. 우리 언어의 중심이 그래야 되지 않습니까? 날이 가면 그냥 툭툭 던지는 말들이 그 말 속에 하나님 말씀과 믿음의 기초에서 던져지는 언어는 반드시 효력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22절에 보면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에 생명의 손상을 입는 사람은 하나도 없겠다. 이 선포를 합니다. 얼마나 좋은 소식입니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안심하라. 이 안심하라는 단어는 기뻐하라. 동사입니다. 똑같은 동의예요. 태풍이 불고 이 사람들은 단 하나의 소망이 모두 사라진 상태인데 그 현장에서 너희는 기뻐하라는 거예요. 이거보다 더 좋은 소식이 어디나 살아가면서 이것과 같은 더 내용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해결책이 없는데 해결책이 있다. 응. 방법이 없는데 방법이 있다. 죽을 수밖에 없는데 죽지 않는 방법이 있다. 그게 뭡니까? 복음입니다. 복음의 위력, 복음의 특징이 이렇게 소중한 겁니다. 우리는 바울이 함께 로마로 향해는 한 여정을 오늘 아침에 숙고했습니다. 이 항해를 통해서 바울의 입술을 통해서 세 가지 중요한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 23절 보십시오. 같이 읽습니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젯밤에 내게서 말하되. 23절 확인할 수 있는 첫 번째 요소는 소속입니다. 바울은 이 태풍이 불고 사람들이 죽음과 공포에 휩싸고 있었을 때 자기 소속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내가 속한 것은 하나님이라. 선주도 아니고 이 배도 아니고 여러분도 아니고 내가 속한 것은 하나님이고 나는 그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다. 나는 그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다. 이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어렵습니다. 폭풍처럼 죽음이 눈앞에 왔을 때 나는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이 사실을 드러내는 것은요. 10분의이나 될까요? 일제 강정기 심사배가 이루어졌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별거 아닙니다. 그냥 신사 참배 전하고 편안히 그 시절을 지나가면 되는데 그게 뭐라고 믿음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 감옥 가고 고통당하는 우리 선배들, 믿음의 선배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당시 기독교인구 총을 계산해서 퍼센트를 따져 보면 믿음의 신조를 지키고 내 소속을 분명히 했던 성도들은요 10분의 1도 안 됩니다. 제가 모시고 했던 박지동 목사님도 고신 총회장을 했습니다. 미국 옥이잖아요. 그 목사님도요. 옷골을 치릅니다. 이 믿음 때문에. 그 아버지들은 부모님들은 학교를 안 보냈어요. 국민학교가 최종 학년입니다. 검정고시로 그 이후에 목사님이 되셨는데 학교 가면 신사한테 절하고 공부를 하고 그런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거야. 부모님들이 내 신앙을 어려웠을 때 드러내는 것은 굉장한 겁니다. 2007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샘물 교회입니다. 그것도 우리 고신 교회예요. 23명이 아프카신 사탄으로 선교 갔는데 다 체포가 돼요. 두 명이 총살로 살해됩니다. 2004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너무나 잘 알죠. 김선일입니다. 김선일 형제예요. 크리스천이에요. 예. 일반 평신도 선교사 마찬가지입니다. TV의 화면에 나왔지요. 어떻게 나왔습니까? 절귀합니다. 나는 살고 싶다. 제발 나를 도와달라. 정말 나는 너무너무 살고 싶다. 눈물을 뿌리며 그 광경을 보고 아니, 어떻게 예수 믿는 사람이 저렇게 고백할 수 있냐? 아주 처절하게 복음을 전하다가 얼마나 좋은 기회냐. 그 유튜브 영상으로 지금도 살아 있어요. 복음을 전하다가 순결을 해야지 어떻게 나를 살려 달라고 하느냐? 죽음의 문 앞에 심각한 상황이 도래하면 나는 하나님의 소속이라고 하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내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실패했잖아요. 예. 그래서 우리 남은 생애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효사랑 이곳에서 있는 어르신들의 삶은 순간마다 내 목숨이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나의 삶의 소속이 드러나는 그런 삶의 여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두 번째 확인할 수 있는 것은 24절입니다. 같이 읽어 볼까요? 시작. 바울이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다윗 앞에 서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하게 하는 자를 다게 주셨다 하였으니. 두 번째는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변경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백성철을 목사로 부르셨으면 그 사실은 변경되지 않아요. 이거 믿으십니까? 아멘. 하나님을 권사님으로 직분자로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녀로 나를 부르셨으면 절대로 변동되지는 않습니다. 그 변경되지 않는 사실을 누가 훼손합니까? 우리가 훼손해요. 인간 우리가 훼손하지 하나님과 관계에서는 절대로 훼손되지 않습니다. 바울은 그 긴박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의 사역을 확증시킵니다.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얼마나 대단합니까? 19절에 사도행전 그때 참 바울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된다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습니다. 그리고 23장에 와서 예수님이 다시 나타나서 목소리로 똑똑히 증언해 줘요. 그리고 27절에 항의하는 가운데 또 한번 확신을 시켜 줍니다. 이 말씀대로 다 내게 주셨다.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나에게 맡겨 주셨다. 이 주셨다라고 하는 동사가 선물 은혜에서 나온 동사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생명은 단 한 사람도 손상을 입지 않습니다. 그 말이 맞나요? 아멘. 276명이 다 살아갑니다. 한 사람 부르심의 사역자가 올바로 그 다수 가운데 현장에 쓰면 수많은 다수가 살아납니다. 우리의 사역, 제가 그 성경과 문화 강의하잖아요. 그 숙제를 내줬더니 어떤 어르신이 너무나 바부돼요. 눈껏 뜰 수 없이 받게 된다고. 그래서 숙차기가 너무너무 힘들고 몸도 막 지치고 힘들, 아니 시이어이 정도 연세 되시면 좀 편하게 살아야 되지 않습니까? 네. 등록 끝까지 내가면서 여기 와서 왜 이렇게 하십니까? 그리고 또 배운 거를 그냥 지나치는 게 아니라 다 활용하시잖아요. 이런 데가 없는 것 같아요. 예. 이런 단체가 없는 것 같아요. 그거를 연사가 있으신데 양론도 가고 선교 지역도 가고 복음을 또 전하는데도 사용을 하시니까 너무나 너무나 잘 살고 계신다. 하나님이 주신 사역을 마지막 순간까지 감당해 나가는 우리 어르신들의 삶을 축복하고 또 응원합니다. 아멘. 세 번째 확신입니다. 25절 같이 읽어 볼까요?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심하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라. 이런 확신이 있습니까? 아멘. 아멘. 이거보다 좋은 게 없습니다. 내가 이 세상 살아가는 날 동안 내 생각을 감당하는 동안에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나는 내가 믿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믿라. 아멘. 성경이 66권이 되어 있는데 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 들어와서 그대로 되는 것을 한번 멋지게 이 세상 지구에서 살면서 경험되어야 되지 않습니까? 아멘. 그것이 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손들에게 후손들에게 믿음의 유산으로 흘러가게 해야 되지 않습니까? 내가 말씀하신 그 하나님 말씀 그대로 되리라고 하는 것을 나는 그 하나님을 믿노라. 이런 역사가 이제 남은 생애에 반드시 성취되기를 축원합니다. 강력한 거예요.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라. 여기에서 파송되지 않고 반드시 우리는 한 섬에 하나님이 지정한 섬에 도착해서 모두 생존할 것을 선포합니다. 오늘 말씀이 다시 한번 남은 생애에 하나님 나라에 가는 한국에 도착할 텐데 어찌게 나의 신앙과 믿음의 모습이 드러나는 삶, 또 하나님 맡겨 주신 사역을 온전히 완성해 나가는 삶, 하나님 말씀대로 그대로 이루어지는 삶의 여정, 사역의 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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