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교회

[사랑의교회] 예수님으로 살리 - 윤대혁 후임목사

윤대혁 후임목사 · 2026-07-26
본문
로마서 8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

설교자
윤대혁 후임목사
날짜
2026-07-26
설교 길이
33 분
설교 영상 재생
요약

우리는 세상에서 '루키즘'이라는 기준으로 평가받으며,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고 강한 모습만을 보여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를 질그릇으로 묘사하며, 우리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연약함을 인정하고, 그 안에 있는 예수님의 능력을 믿을 때, 우리는 진정한 힘을 얻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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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
설교 구조
우리는 질그릇이지만 예수님으로 살리
1
우리는 질그릇이다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자
고린도후서 4:7
◆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주로 고백합시다.
전체 스크립트

할렐루야. 아멘.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우리 밝은 얼굴로 옆에 분과 인사하겠습니다. 평안하셨습니까? 인사하겠습니다. 평안하셨습니까? 평안하셨습니까?

매년마다 그 해에 등장하는 신조어가 있습니다. 새로 만들어진 단어이겠죠. 저 젊었을 때 신조는 이런 신조어가 있었습니다. '반가반가' 뭐 이런 신조어가 있었는데 요즘에 좀 차원이 높은 것 같습니다. 말을 해도 도저히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지 모를 만한 신조가 있는데 한번 찾아봤습니다. 이 말 아십니까? '난리잡으라'는 말 아십니까? 난리가 났을 때 쓰는 새로운 신조어입니다. 그리고 '잼민'이라고 아시나요? 모든 의사 결정을 AI에게 물어보는 그때 그 사람들을 통틀어서 '잼민'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젊은 세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한국말을 구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를 때가 있어서 가끔씩이 말이 무슨 뜻이야? 묻고 싶은 그 충동이 일어나도 묻지 못한 이유는 안 놀아줄 것 같아서 그 말을 묻지 못하고 그냥 이해한 것처럼 웃고 넘어갈 때가 있습니다.

시대를 넘어가면서 회기가 바꾸면서 그 시대 때 새로 나온 신조들이 여러분 사전에 등재되기도 하는데 20세기 말이 되면서 또 21세기 넘어가면서 새롭게 모든 사람에게 주목받았던 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 단어는 '루키즘'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루키즘이라는 단어는 '룩보다'라는 그 단어와 '이즘'이라는 철학과 사상을 담고 있는 단어가 합쳐져서 루키즘이라는 단어가 나왔는데요. 이 단어의 뜻은 이렇습니다. 네가 세상의 모든 것을 판단하고 그 기준점을 잘 때 무엇을 갖고 있는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떤 것을 이루었는가?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모든 것을 평가하는 시대다라고 말할 때 루키즘이란 단어를 씁니다. 세상은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 걸 가지고 우리 인생의 실패와 성공을 또한 진단하려고 합니다. 당신이 지금 얼마나 많이 배웠습니까? 학력이 어떻습니까? 어떤 집에 살고 있습니까? 월급은 얼마입니까?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얼마나 많은 것을 갖고 있습니까라는 걸 가지고 우리들의 가치와 우리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하죠. 그렇다 보니까 이런 시대 사육은 우리들의 삶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우리는 준비의 가정 가운데 있고 빚어지고 만들어 가고 있는데 세상은 계속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당장 보여야 된다라고 제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까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간에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감추기 위해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있다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강하다고 자기를 포장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약한 모습을 감추려다 보니까 없는 것을 없는데도 불구하고 있는 것처럼 가면을 쓰고 우리가 살아갈 때가 있죠. 하지만 성경은 우리들의 존재 가치를 네가 무엇을 갖고 있느냐를 가지고 평가하지 않는다라는 겁니다. 여러분, 성경은 우리의 존재를 뭐라고 말하고 있냐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를 질그릇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질그릇은 흙으로 만들어진 그릇입니다. 그리고 땅에 떨어지면 부셔지는 그릇이고 질그릇과 진그릇이 만나면 쪼개집니다. 물을 묻히면 흑먼지가 묻어나는 너무나 평범하고 하루 쓰다가 버려도 아깝지 않은 그릇이 여러분 질그릇이다라는 것이죠. 여러분, 그만큼 우리는 성경에서 우리를 정의는 것은 너희는 연약한 질그릇이시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루키즘의 시대를 살다 보니깐 우리는 질그릇이 되어선 안 된다. 부족하고 연약한데도 불구하고 너희는 강한 다이아몬드처럼 그 강해야 된다고 말하고 금처럼 값이 있어 보여야 된다고 말하는 시대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내 인생의 어려움과 힘을 만나고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할 때가 많죠. 어딘가 기대서 나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싶어도 혹시라도 내가 연약한 모습을 보이면 누가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 연약함을 감추려고 하게 되기도 합니다. 구역에 가서 아니 다락방에 가서 여러분 훈련 모임에 가서 내 인생의 어려움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싶어도 딱 기도 시간만 되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때부터 이렇게 말하죠. 저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 집안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우리의 자녀도 잘 자라고 있고 사업도 걱정 없이 잘 됩니다. 절에서 기도하지 마시고 절에 다른 사람 위해서 많이 기도하십시오라고 오히려 말할 때가 있습니다. 내 인생에 어려움이 있지만 어려움을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죠. 그렇다고 해서 개인적으로 혼자 나와서 교회 나와, 새벽 기도 나와, 수요 기도에 나와, 토요 비전 예배 나와 또 기도하고 싶지만 내가 기도하러 나온 그 순간부터 소문이 나기 시작하죠. 뭐처럼 새벽 기도 나왔는데 이런 소문이 들립니다. 오늘 김지사님 나온 거 봤어요? 새벽 기도에 먼 일이 있는 거 아닐까요?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수요 예배 나오면 안 듣까 싶어서 수요 예배 나왔고 또 금요 기도에 나왔는데 그때도 말합니다. 그 집산이 안 나왔던 수요 예배와 금요 기도에 나왔더라고요. 사업이 어렵되는데 사업되면 나온 게 아닐까요라고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안 될 것 같아서 주일날 와서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데 그날 목사님의 설교가 그렇게 눈물 흘릴 만한 내용도 아니었는데 찬양하되 눈물로 기도하며 오늘 최권사님 봤어요? 눈물로 기도하시대요. 이렇게 얘기를 들리다 보니까 어디 가서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시대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감추고 감출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 있죠.

저도 미국에 처음 유학을 가서 아이들이 세 살 한 살 때 처음 유학 갔을 때는 그 부모가 아이들보다 영어를 잘하는 건 당연한 거죠. 그래서 영어를 하면 아이들이 아빠 영어 잘한다. 엄마 영어 잘한다. 이러다가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2, 3학년만 돼도 이제 역전 연상이 일어나서 아이들이 영어를 더 잘하게 됩니다. 하루는 저희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딸이 초등학교 1학년 때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식당에 가서 이제 음식을 주문하는 과정 가운데 뭐가 잘 소통이 안 됐던지 사람이 버벅거리고 저도 제대로 얘기 못하는 상황이 됐어요. 그때 저희 3학년 된 아들이 절 도와주겠다고 제 옆에서 있는 겁니다. 그때 마음에 기분이 좀 안 좋은 거예요. 자존심에 그 스크리치가 나서 아들한테 아들아 저리가 있어라. 아빠 갈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그 정호원과 여러 가지 얘기를 하고 음식을 주문하고 와서 다 주문하고 음식을 기다립니다. 근데 음식을 딱 정원이 갖고 왔는데 우리 아들이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아빠 이거 아니잖아요라고 하는 거예요. 이 음식이 아니라는 거 잘못 나왔다는 겁니다. 그때도 마음이 또 상해 가지고 이렇게 말하죠. 그냥 주는 대로 먹어라. 제 실수를 지키고 싶지 않아서 모든 것이 마치 계획 가운데 것처럼 말하는 제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질그릇이라고. 아무리 네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 대한 존재 가치를 말하는데 너희는 질그릇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너무나 평범하고 볼품 없는 하지만 사도 바울은 우리가 질그릇이라는 것에만 포커스를 두고 있지 않다는 것에 우린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뭘 말하고 있냐면 우리는 질그릇이 맞다. 늙깨지고 부족하고 문제 앞에서 벌벌 떠는 연약한 존재인 건 맞지만 그러나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보배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으셨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린 연약하지만 능력의 예수 그리스도가 보배로우신 주님이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계신다라고 사도 바울은 거기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죠.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질그릇의 포커스를 맞춥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말씀 가운데 뭘 말하고 있냐면 세상 사람들 루키즘 눈에 보이는 것에 포커스 맞춘다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이름의 능력에 우리는 집중해야 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멘.

여러분 간혹 우리 눈에 보이는 것에 오늘 포커스를 둔 분 가운데 어떨 때는 참 좋은 분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미국에서 저희 친구 목사님과 함께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고 이제 피트니스 클럽에서 이제 사우나까지 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땀을 흘린 다음에 이제 샤워하고 목사님과 함께 이제 그 사우나 룸에 들어갔는데 단 둘밖에 없었어요. 그때 이런저런 교회 얘기를 이렇게 주고받았습니다. 한 2, 3분 지났을까요? 한 60대 어떤 남자분 두 분이 이렇게 들어오셨습니다. 서로 이제 서먹서먹한까지 말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는데 한 2분 정도 지났을 때 그 60세 되셨던 그 한 분이 저희를 보고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혹시 목사님이신가요? 묻는 거였습니다. 어떻게 하셨냐고 딱 봐도 목사님 같다는 겁니다. 사우나에서 목사님 같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어느 교회 다니십니까? 저는 이 교회 다닙니다. 어, 저 어느 교회 뭐 집사 얘기를 나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이제 나오는 길에 친구 목사님이 이런 얘기했습니다. 감추고 감추고 싶어도 우리 안에는 영성은 감출 길이 없구나라고 말하면서 서로 격려했던 적이 있는데 참 고마운 분이었습니다. 여러분, 눈에 보이는 내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으로 인하여 우리는 존귀한 자이고 복된 자임을 믿습니다. 아멘.

여러분, 하지만 세상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된다. 금그릇이 돼야 된다. 계속해서 다이아몬드처럼 강한 자가 돼야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질그릇이시다라고 말해요. 우리 안에 누가 계세요? 보배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이 이렇게 말합니다. 7절 말씀인데요. 함께 읽어 볼까요?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아멘. 우리의 능력은 눈에 보이는 것이 있지 않다. 우리의 능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질그릇 같은 우리가 보배로 오신 예수를 담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의 삶을 우리는 살아갈 수 있을까요? 분명히 연약하다고 말았는데 부족 분명히 성경 가운데 부족하다고 말았는데 실수 많다고 말았는데 어떻게 해야 우리가 능력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두 가지를 나누기 원합니다. 예수님으로 살기 위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될 첫 번째는 저와 여러분이 질그릇이라는 것을 먼저 인정하셔야 됩니다. 여러분 질그릇은 깨질 수 있습니다. 아니 깨지는 게 당연합니다. 아니 질그릇이 깨지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겁니다. 질그릇은 반드시 깨져야 된다는 것이죠. 누가 나에게 그 말합니다. 너는 늘 벌벌 떨잖아. 넌 늘 겁이 많잖아. 늘 실수하잖아. 늘 연약하잖아. 늘 부족하잖아. 말할 때마다 그것 때문에 나를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고 자존심이 상할 필요도 없고 우리는 스스로 인정해야 됩니다. 그렇다. 나는 연약하고 부족하다. 문제 앞에서 두려워하고 사건을 만나면 벌벌 떨고 문제를 만나면 주저 앉아 버리는 깨지는 질그릇이다라는 것을 나 스스로 인정해야 된다라는 것이죠.

오늘 8절 9절의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어요.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싸일 당하여도 쌓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바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분명히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사방의 우겨싸움을 당한다. 버림을 받는다. 답답한 일을 겪는다. 거꾸러뜨림을 당한다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어요. 이것은 내 노력과 내 실력과 상관없이 그와 같은 일이 내 삶에 몰려든다는 것이죠. 내 의견과 나의 어떤 선택과 상관없이 그런 일을 만날 때 여러분 우리는 무너지고 넘어지고 쓰러지고 소망을 잃고 주저하는 일을 우리는 겪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의 말씀은 전혀 다르게 우리에게 말하고 있어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이렇게 말합니다. 사방으로 우겨싸임을 당하여도 우린 쌓이지 않을 것이고 답답함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을 것이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바되지 않을 것이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을 것인데 성경은 그렇게 우리에게 정의하고 있는데 왜 우리는 이런 일을 만나면 왜 무너지고 쓰러지고 넘어지고 주저 앉아 버리냐는 거예요. 왜 우리는 성경과 다른 삶을 우리는 겪게 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분, 그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가 깨지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버티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했으니 내 힘과 내 노력으로 해 보려고 한다는 거예요.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할 수 있어. 자기 체면을 가면서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 가운데 살아가다 보니까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기 어렵다는 것이죠.

여러분, 향유 옥합이 있어요. 향유 옥합에는 여러분 그 향기가 나타나기 위해서 제일 첫 번째 해야 되는 게 뭐죠? 향유가 옥합이 깨져야 되는 겁니다. 향유 옥합이 깨져야 향유의 향기로움이 드러나는 것처럼 질그릇 같은 우리가 문제 앞에서, 사건 앞에서, 상황 앞에서 부서지고 깨질 때마다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게 시작되는 줄 믿습니다. 아멘. 그러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인정해야 돼요. 그렇다. 나는 부족하다. 나는 연약하다. 나는 실수가 많다. 나는 늘 문제 앞에서 벌벌 떤다. 그렇게 나는 부족한 자이다. 그러나 내 안에 능력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신다. 살아 역사하신다. 이것을 믿을 때 여러분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 능력이 나타나게 됨을 믿습니다. 아멘.

여러분, 사도 바울은 복음을 끝까지 전했던 그의 생명을 끝까지 복음을 위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의 복음의 길에는 너무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유대인들에게도 핍박을 받았고 기독교인들에게도 핍박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네가 참 유대인이라고 말하면서 베냐민 지파 중에 베냐민이라고 말하면서 결국 예수를 믿고 배신하여 배교도가 되라는 유대인들의 사도 바울을 향한 핍박이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갔더니 이방인에게 갔더니 그들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했고 교회를 진멸했으며 예수 믿는 자를 핍박했던 네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우리에게 와서 말씀을 가르쳐 그 사도 바울을 공격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감옥에 갇혔고 매를 맞았으며 풍랑을 만나 죽을 뻔한 위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어려움과 위기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끝까지 복음의 길을 완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도 바울이 많은 것을 배워서 인맥이 좋아서 출신이 좋아서 로마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보장되어서가 아니었다는 것이죠. 오히려 남들이 갖고 싶어 했던 그가 갖고 있던 모든 것들을 사도 바울은 내가 다 배설물로 여겼다고 말하고 있어요.

여러분,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그가 이렇게 끝까지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끝까지 살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가 복음 행지를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로마서 8장에 보면 그 7장의 마지막 부분에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죄인 중의 괴수다. 나만큼 완악한 자가 어디냐? 나만큼 주님 앞에 용서받지 못할 자가 어디냐?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다 말하면서 오호라 나는 공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낼 수 있으랴. 나는 문제 앞에 늘 벌벌 떨고 누가 뭐라고 하면 늘 주저 앉아 버리는 공고한 사람인데 늘 좌절하는 사람인데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낼 수 있으랴 말하며 로마서 8장 1절에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아멘.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인 줄 알고 공고한 자라는 걸 알 때에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소망하며 살게 되는 줄 믿습니다. 아멘.

사도 바울이 끝까지 낙심하지 않을 수 있었던 그 이유는 그가 연약한 자임을 알았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심을 그는 믿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말을 고백합니다. 함께 읽어 볼까요? 시작.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느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아멘. 아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거하게 되는 것은 뭘 말하고 있어요? 내가 나의 약함을 자랑하리니 나는 연약한 자입니다. 나는 질그릇입니다. 주님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제 그릇입니다. 자랑할 때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안에 거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오히려 사람은 강함을 자랑할 때 넘어집니다. 성경은 말하고 있어요. 섰을 때 넘어질까 조심해라. 뭔가 된 것 같은데 뭔가 내 힘으로 내 노력으로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찾아오는 넘어짐이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연약함을 인정하는 자는 부족함을 아는 자는 절대로 넘어지지 않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능력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 것이죠.

세상은 계속해서 우리 이렇게 말합니다. 힘 있는 자가 성공할 것이다. 강하면 성공할 것이다. 이 말은 틀리지 않은 거예요. 예, 강한 거 좋습니다. 힘 있는 거 좋아요. 성공의 길에 좋은 길이 열릴 거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성공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열매를 맺어가는 자입니다. 아멘. 여러분, 강하면 성공할 수 있지만 강하다고 해서 열매를 맺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약하다고 인정하면 반면에 우리 연약하다고 고백하면 주님께서 우리 안에 열매를 맺어가실 줄 믿습니다. 아멘. 우리 사랑의 교회 모든 분들은 날마다 우리가 연약한 자임을 질그릇을 인정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보배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아멘.

두 번째로 예수님으로 살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될까요? 첫 번째는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내가 질그릇을 인정해야 됩니다. 두 번째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하며 우리는 살아가야 합니다. 자, 우리가 예수님으로 살기 위해선 예수님이 내 안에 거여야 되는데 제일 첫 번째 되는 선행이 뭐냐면 내가 죄인임을 알고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음을 그리고 그가 부활하셨음을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야 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구세주이심을 우리가 믿을 때 주님께서 내 안에 거하시며 성령께서 저와 여러분의 삶을 주님 오실 그날까지 주님 만날 그날까지 성화의 과정으로 성도의 견인의 과정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주님 오실 그날 주님 만날 그날 우리 완전히 영화롭게 되지만 그 전까지 예수를 주라 고백하는 자의 삶을 주님은 끝까지 우리가 자녀되어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라는 것이죠.

오늘 본문에서도 그와 같은 말을 합니다. 10절의 말씀인데요. 우리 함께 읽어 볼까요? 시작.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아멘. 자, 예수의 생명, 예수님의 능력이 내 몸에 나타나기 위해서 제일 첫 번째 뭘 말하고 있냐면 예수의 죽음을 내 몸에 짊어져야 된다고 말하고 있어요. 저 우리가 배운 거 좀 다르지 않습니까? 오히려 주님께서 나의 연약한 육신의 짐을 짊어 주셨는데 우리가 왜 예수님의 죽음을 우리가 짊어져야 될까? 이 의미를 우리가 더 깊이 알 수 있기 위해선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아멘. 이 말은 이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시기 위해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되는 것은 예수를 나의 구주로 고백해야 되는데 예수를 주라 고백한 그 순간 내 죄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을 당하고 내가 예수를 주라 고백한 순간 내 자아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힘을 당하고 내가 예수를 주라 고백한 순간 내 욕심이 내 교만이 내 연약함이 내 모든 것이 십자가에 못 박힘을 당한다라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아멘.

여러분, 예수를 주라 고백한 순간 우리 모든 것이 십자가에 못 박힘을 당합니다. 그리고 나서 무엇되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삶이 시작됩니다. 오늘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을 보면 그 내용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그 말 앞에서 머물 때가 있어요. 그러니까 너무나 슬프고 가슴이 아리고 나 때문에 주님이 돌아가신 것 같아서 몸둘 바를 모르겠고 하지만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은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아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은 한 번의 사건이지만 그다음에 사는 것을 무려 네 번이나 얘기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자, 내가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라.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아멘. 사는 것에 말하고 있어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것에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주라 고백한 순간 우리는 예수님으로 살아가는 인생을 살기 시작합니다. 아멘. 주님이 주인 되셔서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시는 것이죠.

주님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함께 외치겠습니다. 구원을 얻으리로다. 아멘. 아멘. 그 구원은 우리의 영혼의 구원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전인적인 구원이에요. 나의 생각과 나의 마음과 나의 고통과 나의 슬픔과 나의 모든 것에서 나를 건져 주시는 그 구원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임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아멘.

참 신기하죠? 예수를 주라 고백한 순간부터 우리들의 생각이 달라집니다. 인생의 태도가 달라져요. 사람을 대할 때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주님이 나의 주인 되시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여러분 되어집니다. 그전에는 내가 나 인생의 주인이자고 살아서 문제 하나 만나면 벌벌 떨고 사건 하나 만나면 다 싫고 그만두고 싶었는데 예수가 나의 주인으로 안 순간부터 어떤 문제를 만나도 이거 다 주님이 하실 일이니까 주님의 역사니까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감사하고 되면 되는 대로 기뻐하고 내 마음에 요동치지 않는 거 왜 주님이 주인이니까 내가 운영하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이 이끄시는 인생이니깐요.

여러분, 내 인생이 주인이 나라고 사는 사람과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라고 사는 사람은 인생의 차이가 크게 날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삽을 하나 줍니다. 삽을 하나 줘서 하루 동안 24시간 동안 당신의 실력과 능력을 조금도 아히지 말고 땅을 팔아 한다면 24시간 동안 땅을 판다면 얼마나 팔 수 있을까요?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은 이 삽을 통해서 얼마 정도 팔 수 있을지 알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파도 파도 20번 땅을 파면 20분 쉬야 되고 땅을 파다가 얼굴만한 돌덩이가 나오면 손으로 다 긁어내서 걷어내야 되고 아무리 한시 24시간 동안 사로 내 온 힘을 가지고 판다 할지라도 가로 1m 세로 1m 깊이 1m를 파기 힘들 거예요. 이게 나의 노력뿐입니다. 아무리 수고해 봤자 내 인생의 주도권을 내가 갖고 산다면 그럴 수밖에 없을 거예요. 하지만 나의 인생의 주인이 우리 그리스도시라 걸 믿는 그 순간부터 여러분 우리 인생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 주님의 포크레인이 와서 한 순간에 파 버리십니다. 24시간 파도 되지 않던 것이 주님께서 한번 파 주시면 주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면 열리는 게 하나님의 역사예요, 여러분. 아멘. 이게 주님을 주인으로 모신 자와 내 인생을 내가 주인으로 살아가는 자의 삶이라는 것이죠.

주님이 나의 주인 되면 고민거리가 사라져요. 걱정거리가 사라집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 오시기 때문에 어떤 문제, 어떤 사건을 만나도 기대가 되고 평강이 찾아하고 소망이 일어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제 마음 가운데 이 마음을 절대 잊지 않으려고 해요. 목회의 주인은 우리 주님이시다. 내가 하는 거 아니다. 교회의 주인은 우리 주님이시다. 내 인생의 주인은 우리 주님이시다. 그러니깐 주님께서 하시는 건 나는 보기만 하면 된다. 이 마음을 살아요. 그러니깐요. 기쁘지 않을 일이 없습니다. 즐겁지 않을 일이 없어요. 제 표정 보세요. 늘 기쁘잖아요. 늘 행복하잖아요. 왜요? 어려운 일을 만나도 힘든 거예요. 어려운 일 만나면 주님께서 해결하셨겠죠. 기쁜 일 만나면 더 행복한 거예요. 주님께서 나에게 좋은 일 주셨으니까 더 기쁜 겁니다. 여러분, 복음을 가진 자들은 예수를 소유한 자들은 얼굴이 밝을 수밖에 없어요. 우리 삼부 예배들 있으면 다 얼굴 밝잖아요. 다 보십시오. 밝을 수밖에 없는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데 슬퍼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제가 담임 목사로 나갈 때 부모사 시절에 저희 교를 담당하셨던 장로님께서 저한테 이런 말씀하셨습니다. 윤목사님, 목사님은 콕 다닌 가면 얼굴로 목회하셔야 됩니다. 하셨어요. 제가 한번 어 이게 무슨 의미지 방끝 웃었던 적이 있는데 그게 아니라 이렇게 지금 웃는 거 계속 웃으면서 목회하세요. 웃으면서 목회하세요. 여러분 우리가 울 일이 없습니다. 웃으면 되는 거예요. 주님께서 이루시고 소망하며 계속 내가 주인되려고 하니까 힘든 거예요. 여러분 다툼이 왜 일어나요? 내가 주인되려고 하는 거잖아요. 결혼해서 부부 관계 가운데 왜 갈등이 시작됩니까? 주도권 싸움이잖아요. 어디에서 들었는지 야, 너 첫날 밤에 너 주도권 뺏겼으면 안 된다. 그 주도권 싸움 가운데 싸우잖아요. 부모와 자녀가 왜 싸워요? 주도권 싸움이잖아요. 내가 이번에 아예 한번 잡아 버리겠다. 아이들은 내가 이번에 한번 엄마 코 한번 꺾어 버리겠다. 그 주도권 싸움 때문에 싸우는 거잖아요. 교회 사역과 여러 가지 공동체 왜 갈등이 생겨요? 내가 주인이 있잖아. 내가 주인 되려고 하니까. 주인과 주인이 만났으니 얼마나 다투겠어요? 종들과 종들을 만나면 다툴 일이 없습니다. 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거예요. 순종만 하면 되는 겁니다. 주인이 이루실 것을 보면 되는 거예요.

사랑하는 영가족 여러분, 날마다 우리가 예수를 주라 고백한 순간마다 내 삶에 복잡했던 많은 일들이 주님께서 주인되셔서 그 일들을 풀어가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우리 예수님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제가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을 보고 교회 권사님들을 보면 항상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간에 입에서 늘 나왔던 말이 있어요. 만약에 좋은 일이 있어도 오 주님 감사합니다. 슬픈 일이 있어도 오 주님이라고 얘기했어요. 심지어는 이렇게 밥을 짓다가 밥을 태웠는데도 우리 어머니가 말합니다. 어이고 하나님 아버지 얘기할 때가 있어요. 모든 일이 다 주님께 속한 거예요. 모든 일이 다 주님께 속하니까 뭐예요? 근심할 일이고 걱정할 일이 없는 거죠. 어렸을 때 배가 아프면 아이고 배 아이고 배 했는데 저희 어머니는 아이고 주님 아이고 주님 아이고 주님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맡기니까 하나님께서 하시겠지 하나님께서 열어 가시겠지 하나님께서 이끄시겠지 그 마음으로 살아가니까 마음이 여러분 흔들리지 않는 거예요.

사랑 영가족 여러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 모든 만물의 주관자가 되시며 왕의 왕이 되십니다. 모든 권세는 예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되어 있습니다. 아멘. 여러분 삶의 모든 영역 가정과 일터와 관계와 그 모든 영역은 다 그리스도 앞에 굴복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멘.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 영역 가운데 주님이 다스리지 않은 것이 어디겠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로 살기 위해선 날마다 날마다 예수를 주라 부르며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말씀을 마무리할까요? 우리 사랑하는 영가족 여러분,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깨지는 게 당연해요. 문제 앞에서 벌벌 떠는 게 당연합니다. 그때 버티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렇다. 나는 약하다. 나는 약하다. 나는 부족하다. 그러나 내 안에 계신 보배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는 능력이 많도다. 아멘. 아멘. 그분을 붙잡으며 사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날마다 주라 고백하십시오. 날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때마다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삶을 이끌어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질그릇을 깨닫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연약한 인생임을 인정하며 예수님을 의지하고 사는 자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보배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기에 세상을 바라보면 늘 두렵지만 주님을 바라보면 늘 새 힘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를 때 주께서 우리 가운데 다가오셔서 내가 여기 있다. 내가 여기 있다 하시고 내가 너를 이끌겠다 하시는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인도함 받는 자들 주여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감사드릴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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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정리

  • 우리는 질그릇 같은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능력과 소망이다.
  • 세상의 기준에 따라 스스로를 평가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가치를 기억하자.
  •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며 살아갈 때 진정한 삶의 변화가 일어난다.

나눔 질문

  1. 우리는 왜 질그릇 같은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가요?
  2. 세상의 기준에 따라 나 자신을 평가할 때 어떤 감정을 느끼나요?
  3.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신다는 믿음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4. 어떤 상황에서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며 살아가고 있나요?
  5.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요?

이번 주 적용

이번 주에는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임을 고백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기도 · 묵상

하나님,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게 하시고,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힘을 얻도록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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