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큰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 보면 복음이라는 단어가 있죠. 그렇죠? 이 복음은 성도에게서 가장 큰 능력을 가져다 주는 단어이고 승리를 가져다 주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또 똑같은 단어가 존재하는데, 복음의 시작이다. 복음의 시작을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예, 어떻게 한번 보기 시작해 보겠습니다.
마가복음 1장 3절에 보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력을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다 나아가 자기의 죄를 자백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세례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안 나가고 이걸로 조금 해야 될 것 같아요. >> 처음부터 다시 할까요? >> 온라인에 지금 안 나가서 이게 >> 언제부터 안 나가는데? >> 처음부터 안 나간 것 같아요. >> 그럼 처음부터 다시 하죠. >> 예. 제가 방송국에 한 사람 같은데 온라인에 한 소리 소리가 하루도 안 나갔대요. 여러분들은 들으실 모르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이것도 처음인데 다시 듣죠 뭐. 이제 나가나요? 이제 나가요. 예. 제가 새롭게 다시 설교를 시작할게요.
마가복음 1장에 보면 아까도 얘기한 건 아무도 모르죠? >> 저만 아는데 예. 굉장히 중요한 단어가 등장을 합니다. 이 복음이라는 단어가 등장을 합니다. 이 복음은 우리 믿는 성도에 있어서 가장 큰 능력이고 승리의 단어입니다. 그런데 복음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세례라는 단어가 등장해요. 그래서 복음의 시작을 얘기하는데 복음의 시작은 뭘로 시작을 하는 것인가 하면 바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심으로 인해서 시작되는 거, 그것을 복음의 시작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누가 등장하냐면 우리가 그 큰 이름 예수님이라는 이름이 등장을 하죠. 그렇죠?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심으로 인하여 복음의 시작이 이루어진다. 예. 시작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제 세례를 받으시는데 또 다른 단어가 여기에서 등장합니다. 그게 뭐냐면 시작이라는 단어예요. 여러분들은 그냥 이렇게 스치듯이 이 구조를 봤을지 모르지만 시작이라는 이 단어는 천지를 창조했을 때 쓰는 단어가 여기에 들어가요. 예. 그러니까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것이 나오는데, 태초에 바로 이 태초가 시작이거든요. 예. 그러니까 천지 창조에 쓰였던 이 단어가 등장을 합니다. 천지 창조에 쓰였던 단어.
근데 여러분들, 천지 창조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천지 창조하기 전에 이 세상이 혼돈의 세계였어요. 공허의 세계였고 흑암으로 가득 찬 세계였어요. 그거를 천지 창조를 통해서 질서를 딱 갖춰 가죠. 그래서 천지 창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죠. 그렇죠? 마찬가지로 이 세례도 마찬가지예요. 천지 창조를 이루는 단어가 거기에 세례에 쓰였듯이 세례 속에도 혼돈의 세계가 그 안에 있어요. 세례를 봤는데 무슨 혼돈의 시간이 있을까요? 왜냐하면 왜 이런 시간이 있냐면 죄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래요. 사람마다 자기의 죄에 대해서 세례를 받고 하는 모든 것은 회개를 위한 거잖아요. 그죠? 회개를 위한 건데 죄를 대하는 태도가 다 달라요.
뭐 누가복음에 봤더라도 누가복음에 보면 거기 보면 왕이 죄를 져요. 왕이 말도 안 되는 죄를 짓죠. 그죠? 누가복음 3장 19절에 보면 본왕 헤롯은 그의 동생 아내 헤로디아와 일과 또 자기 행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요한에게 책망을 받아요. 왜냐하면 자기 동생을 아내로 맞으니까 말도 안 되는 죄를 짓는 그러니까 기독교 안에서 교회 안에서 하나님 믿는 유대 안에서 유대교 안에서도 이건 말도 안 되는 죄잖아요. 예. 그럼 이 사람은 어떻게 회개를 해야 되느냐? 피해 제사가 필요하냐? 물로 씻어서만 되느냐? 이런 정리 정도는 해 줄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 정리 정도는.
근데 헤롯 같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죠. 어떤 사람은 유대인이 있어요. 유대인. 유대인.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회개할 필요가 자기들이 없다고 생각해요. 선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야,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무슨 회개가 필요해?" 또 이렇게 나오는 사람 있어요. 그게 누가복음 3장 8절이죠. 그러므로 회개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라고 말하지 말라. 근데 이제 반대 사람은 "우리는 아브라함의 조상인데 무슨 회개가 필요하니?"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우리는 무조건 천국 간다고 회개가 필요 없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 거니까 회개와 세례를 받는 이것조차도 혼돈의 시간 속에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그렇죠? 누군가가 정리를 해 줘야 돼. 누군가가.
예. 그래서 그거를 정리해 주는 사람이 필요한데 그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세례 요한이라는 사람이에요. 세례 요한. 왜요? 이 사람이 와서 뭐 하기 때문에? 마가복음 1장 2절부터 보면 "선지자 이사야 보라. 내가 선지자를 내 앞에 보내노니 그가 내 길을 준비하리라." 누군가가 혼돈된 그거를 준비하고 정리 정도는 해 줄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 그렇죠? 그렇죠. 여러분들 회개만 하더라도 이해가 되세요? 왜 정리 정도가 필요한지. 회개의 종류가 다르고 회개 받는 모습이 다 다르고 뭘로 씻느냐? 필요가 필요는 죄 아니다. 자기든 선민이다. 그래서 1장 3절에 "광야에 외치는 자가 있으니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이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 이 사람이.
근데 왜 더욱더 이 사람이 필요할까요? 왜 더욱더 필요할까요? 왜 어떤 사건 때문에 이 정리 중도를 제대로 착하게 해 줄 사람이 필요할까요? 그 이유는 갑자기 등장한 예수님 때문에 그런 거예요. 예수님 때문에 죄 없으신 예수님은 어떻게 해야 돼요? 죄 없으신 예수님은 세례를 받아야 될까 말까? 죄 없으신 예수님은 물로 씻느냐? 죄 없으신 예수님은 불로 씻느냐?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줄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 예. 그렇죠.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아, 왜 갑자기 이 세례 요한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등장하지? 이 거대한 사건 앞에서 예, 천지 창조라는 단어가 쓰이고 예, 그 큰 단어들이 쓰이는 그 앞에서 왜 세례 요한이라는 그 작은 사람이 필요하지? 그 이유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례는 어떻게 할 건지 그거에 대한 답을 주기 위해서 필요한 사람이고 바로 이 사람이 명확하게 그것을 풀어가요. 풀어가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 사람에게 세례를 받아요. 원래는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어요. 죄가 없으니까. 그런데 우리에게 본이 되기 위해서 예, 우리에게 본이 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시지만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거예요. 근데 이제 오케이 해결됐어요. 예수님이 죄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본이 되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셨어요. 근데 그러면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처럼 이제는 우리는 어떻게 살면 될까요? 어떻게 살면 될까? 그거에 대한 답을 또 내야 되겠죠. 그렇죠? 예. 세례 받으신 예수님은 어떻게 살아야 더욱더 풍성하게 이걸 누리며 살 수 있을까?
여기서 이렇게 걸으면 겁이 나요. 다시 해야 됩니까? 예. 우리도 세례 받았잖아요. 이제 우리는 죄가 있어서 세례를 받았는데 죄가 있어 세례를 받았는데 그럼 우리는 이 받은 세례를 어떻게 하면 풍성하게 누리며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는 풍성하게 누리며 살 수 있을까? 그것을 우리가 답을 얻을 수 있겠죠.
이것을 보면 아, 근데 괜히 얘기했네요. 제가 아까 그거를 아무도 몰랐던 사건이잖아요. 왜 걸어오는지. 예. 제가 설교 전에 제가 설교 전에 온라인에 녹음이 안 됐다. 그래서 설교 녹음을 다시 했거든요. 그래서 걸어오시면서 얘기를 하셔서 그 설교를 다시 했거든요. 그래서 혹시 그런 일이 있을까 봐 겁이 나서 얘기한 겁니다. 그 혹시 모르시는 분들은 이해하라고 아, 이거 쉽지 않네요. 하여튼 세례를 받았는데 어떻게 우리를 이 세례를 풍성하게 누릴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해서 보자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세례 받으신 예수님처럼 살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 첫째로 하늘문을 열어 주셔야만 합니다. 좀 더 강하게 얘기하면 하늘문이 열려 있어야만 합니다. 여러분들 많은 분들이 이렇게 착각하는 분들이 있어요. 내가 하는 분을 열고 닫을 수 있다라고 착각하는 분들이 있어요. 아니요. 하늘 문은 내가 열고 닫을 수가 없습니다. 하늘 문은 하나님이 열어 주셔야만 해요. 하나님이 열어 주셔야만 해요.
이것은 언제 벌어지는 일이냐면 우리가 세례를 받는 그 순간, 예수를 믿는 그 순간 문이 열려요. 그리고 안 닫혀요. 안 닫혀요. 만약에 나에게 있어서 하늘 문이 닫혀 있다 그러면 나는 예수를 믿는 게 아니에요. 제대로 믿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가 성령님을 믿기에 내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믿기 때문에 하늘 문이 열려 있는 거예요. 성령님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예. 오늘 말씀 3장 66절에도 보면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셨을 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어떤 일이 벌어졌냐? 하늘이 열렸어요. 그때 그 하늘은 문 열리고 다시 안 닫혀요. 예. 다시 안 닫혀요. 성령님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는 그 순간, 예수를 믿는 그 순간 성령님이 나와 동행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 뭐냐면 성령 하늘의 문이 열려서 언제든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왔을 때 하나님 앞에 깊은 교재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 문이 안 닫힌다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400년 동안 닫혔던 그 하늘 문이 열린 거예요. 예. 내가 열고 닫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해 주신 거예요. 예. 왜요? 하나님과 깊은 교재로 나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하늘 문이 열려 있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래요. 이제부터는 성령님 때문에 문이 열려 있고 그 문이 열려 있는 모든 사람들은 언제든지 그 문을 사용하면 돼요. 예. 가면 들어가면 돼요. 열려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예, 닫혀 있어요.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열어 놓으셨어요. 이 축복이에요. 이 축복이에요.
예. 그래서 요한계시록 3장 6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항상 이렇게 뭘 귀 있는 자는 하나님이 가라사되 뭐 이렇게 나오잖아요. 그럼 정말 들어야 돼요. 그 말씀을 정말 그 말씀은 중요하다는 거예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면서 7절에 "빌라델피아 교회 사자에게 편지하라. 기록 거룩하고 진실하신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 곧 열면 다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그러니까 우리가 열고 닫는 게 아니에요. 그렇죠. 예수님이 열고 닫고 성령님만이 열고 닫을 수 있어요. 그분이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 앞에 열린 문을 두었노니." 이제 여러분 앞에 열린 문을 두었어요. 왜 사용하라고? "야 문을 열어 놨어. 근데 왜 아무도 안 들어오니? 나 심심해." 문을 열어 놨어. 들어와서 사용해. 그러면서 이렇게 얘기해요. "내가 내 행위를 아노니 내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다 알고 계시니까 왜냐하면 이 문이 하나인데 여러분이 사용하는지 안 하는지 왜 모르겠어요? 열어 놓으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와서 사용해.라고 이야기를 하십니다.
근데 여러분들 착각해서 안 돼요. 아까도 얘기한 대로 이 문은 내가 열고 닫을 수 있는 분이 아니에요. 오직 나의 왕이신 하나님께서만 열고 닫을 수 있어요. 나의 주인 되신 하나님만이 열고 닫을 수 있어요. 만약에 내가 열고 닫을 수 있다라고 착각하면 그거는 내 나라지 하나님 나라 얘기하는 거 아니에요. 그걸 정확히 아셔야 돼요. 예. 이제는 여러분들과 마음껏 교재하기 위해서 열어 놓으셨어요. 그래서 이제는 "야, 같이 교재하자. 빨리 들어와. 야, 누구누구야 놀자. 빨리 들어와." 이렇게 주님은 지금 얘기하고 있어요.
그러면 이제 열린 문을 가지고 우리 뭐 해야 될까요? 우리는 두 번째로 어떻게 하면 더 크게 교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돼요. 어떻게 하면 더 크게 교재할 수 있을까를 그러라고 열어 놓은 거예요. 그러는 거예요. 아무도 안 들어오면 주님이 실망하죠. "놀자라고 했는데 아무도 안 들어와." 그 얼마나 큰 실망되는지 아세요? 여러분들 이런 경험 없을 거예요. 저는 레바논 학교를 두바에서 다녔는데 제 생일이었어요. 우리 반에 전체 아이들이 18명인데 저희 집이 망해 가지고 음식도 제대로 만들 수 없는 그러한 집안이었어요. 근데 우리 어머님이 아들 기 살려 주느라고 아들 생일이라고 "야 너네만 아들 18명이잖아? 와라. 생일 잔치 좀 초청해라. 엄마가 한국 음식을 마음껏 만들어 줄게요." 해 가지고 만두랑 외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만두랑 잡채랑 불고기랑 이런 걸 만들어 가지고 오늘 돈이 없으니까 이제 옆에 있는 교인들 막 이렇게 도움 받아 가지고 음식을 잘 차려 놨어요. 물론 그러다 보니까 이제 한인 교인들도 같이 축하해 주느라고 다 왔죠. 근데요. 아무도 안 왔어요. 한 명도 안 왔어요.
여러분들 이런 걸 경험해 보신 적 있으세요? 와, 그 차복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예. 집안이 망해 가지고 예. 고기도 제대로 못 먹는데 아들을 위해서 만들어 놨는데 한 명도 안 왔어요. 저는 아직도 그래서 무슨 생일 잔치인데 안 올까 봐 트라우마가 있어요. 예. 거기다 구경권까지 있잖아요. 우리 한인 교인들이 도대체 예, 큰 사람들은 어떻게 생일 잔치 안 하라고 한번 보러 왔는데 물론 이 나라 생일은 10시에 시작을 해요. 저녁 10시에. 그것도 특이하죠. 근데 9시부터 세한 거예요. 10시에 아무도 안 오는 거예요. 예. 근데 나중에 이제 안 온 이유가 알려졌어요. 그 이유가 뭐냐면 제 친구들의 대부분이 레바논 국적을 가졌는데 그날 레바논이랑 이스라엘이 전쟁이 일어났어요. 그래서 아무도 안 나갔어요. 아주 그럼 안고 연락이라도 하지. 예. 저한테는 완전히 하여튼 문 열어놓는데 안 들어온다. 전 한 명이라도 들어와야 돼요. 예.
근데 어떻게 하면 우리는 문회에 와서 더 크게 교재할 수 있을까요? 첫째는 주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주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더 큰 교재로 나아갈 수 있어요. 오늘 말씀 21절에 보면 백성이 다 세례를 받으세요. 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려 있고 그 하늘 물로 성령의 강림을 먼저 해 주세요. 예. 성령이 먼저 탁 찾아와 주세요. 아, 얼마나 좋았을까? 먼저 성령이 오셨으니까. 저는 한 사람도 알았는데 성령이 먼저 오셔서 "야 걱정하지 마." 그래서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근데 하여튼 그러면서 그기로 이렇게 얘기해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면서 성령이 먼저 찾아오셨어요. 그리고 그 기도를 통해서 계속해서 이제는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교재를 나누어 주심을 보여 주세요. 그 문을 통해서. 특별히 야고서에 보면 얼마나 이 교재가 풍성한 교재가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야고서 5장 13절에 보면 "너 중에 고난 당한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해라.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어다." 저는 이 말씀이 좋은 이유가 뭐냐면 고난 다음에 즐거워하는 자가 있다는 게 좋은 거예요. 예. 또 고난 또 고난 그게 아니라 고난 당할 자가 있느냐? 기도해. 내가 너 만나 줄게. 예. 고난 당한 자가 있어. 예. 기도해. 근데 그다음에 뭐냐면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너 즐거워하게 될 거야.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어다." 그 문으로 그래서 내가 문을 열어 놓은 거야. 와서 나와 만나서 교재하자. 나와 만나서 교재하자. 기도하면 돼. 예. 고난당했어. 기도하자.
또 14절에 보면 이렇게 말하죠. "너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물론 나에게 해당되는 얘기기도 하지만 그는 교회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받으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어다." 아프니 기도하자. 아파. 기도해. 사람들을 청해서 기도하자. 그러면서 15절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해.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그리고 혹시 이게 죄랑 연관된 부분일지라도 죄를 연관된 부분일지라도 기도해. 혹시 죄를 범할지라도 죄를 기도해. 그러면 사함을 받을 거야. 예. 어떤 제일 듣기 싫은 소리가 그걸일지도 몰라요. 병들면 아, 아직도 회개가 모자라고 뭐 회개가 모자랄 수도 있어요. 근데 중요한 건 "야 기도하자." 그것마저도 위해서 기도하자. 예.
그러면서 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뻔뻔할 필요도 있다라는 생각을 저 참 많이 해요. 우리가 기도에 따라서 내 죄가 바로 끊기는 게 아니거든요. 여러분들 기도에 따라서 여러분들 죄를 딱 끊고 싹 변화합니까? 안 변해요. 근데 저 얼굴에 철판 깔고 뻔뻔해도 기도하세요. 하나님 그런 교재를 원해요. 하나님 그런 교재를 원해요. 예. 그럼 결국에 고쳐 주실 거예요. 저는 우리 옛날에 그 흑인들 거 장사하면서 말되는 일도 경험해 왔어요. 너무너무 뻔뻔한 뻔뻔한 사람을 경험했는데 이게 한두 사람이 아닌 거예요. 어느 정도 뻔뻔하냐면 내가 리코스터에서 일했거든요. 리코스터에서 일한다는 거 자체도 신앙이냐 하면 안 돼요. 솔직히 그 당시에 제가 신앙이 결지도 않았기 때문에 리코를 팔았어요. 흑인들한테. 리코라는 건 뭐냐면 맥주 위에 거를 파는 거예요. 하드리고 바드 있죠. 그걸 팔았는데 하필 리코스토와 가게 앞에 흑인 교회가 있는데 역사가 깊은 흑인 교회가 있는데 흑인교회 장로님이 저랑 같이 리코를 팔았어요. 예. 뭐 여러분들이 지금 웃으실지 모르지만 이거는 과한 게 아니에요. 리코스타를 흑인교 장로님이 리코를 팔았어요.
근데 어떤 일이 벌어졌냐면 리코를 딜리버리 하는 사람이 이제 리코를 이렇게 딜리버리가 온 거예요. 그럼 이제 지하실로 들어가요. 리코는 좋은 점이 뭐냐면 상하지 않으니까 몇 년이고 그냥 챙겨 놓으면 돼요. 그래서 돈 벌 수 있는 거예요. 상하지 않으니까. 근데 이제 장로님이 물건을 받았어요. 물건을 받았는데 주위에 돌려 보니까 아무도 자기를 보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이분이 박디라는 술 한 케이스를 훔친 거예요. 근데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데 딱 한 사람한테 걸렸어요. 우리 주인 아씨한테 걸린 거예요. 우신하시가 집 바깥으로 가게 바깥으로 자기가 가지고 자기 잘 실는 거를 본 거예요. 그 당연히 어떻게 해요? 그긴 장님을 잘라 버린 거예요. 자르는 게 당면하죠. 근데 이게 정말 뻔뻔하다고 제가 얘기하는 이유는 뭐냐면 이 흑인 교회 장로님이 그다음 날 우리 교회 놀러 왔어요. "Are you doing? 장사 잘되지?" 그리고 "에브리대 할 일 없으니까 에브리대 우리가 그게 놀러 왔어요." 이해가 됐어요? 아니 도대체 흑 교회는 뭐 하고 있는 거예요? 예. 자기 시무 장로가 리코를 빼돌려 가지고 걸렸는데 그래서 잘렸는데 아무런 어떤 시리가 없어요. 그리고 그 교회 시무 장로를 계속해서 있었어요. 그 말도 안 되는 얘기예요. 이거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인데 제가 뭐가 좀 그러냐면 "야 저 뻔뻔함이 부럽더라고." "야 하나님서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을까?"
정 절대로 해서 안 돼요. 교회는. 예. 예. 명목사가 조금이라도 "야, 오케이." 했다고 얘기 아니에요. 이건 말도 안 되는 얘기예요. 근데 어떤 면에서는 나의 아바 아버지 앞에서 모든 죄를 사해 주신 하나님 앞에서 뻔뻔함도 필요하다. 뻔뻔함이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과 교재가 끝나요. 뻔뻔함이 없으면 우리는 교회를 교회를 안 나갈 거거든요. 예. 그 뻔뻔함이라도 있으니까 그다음 주일날 교회 나가고 뻔뻔함이 있으니까 성령님의 타치하실 때까지의 어떤 기다림과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거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예.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 야고보서 5장 17절로 가면 "엘리야는 우리와 심령이 같은 사람이로되"라고 얘기해요. 왜요? 엘리야는 엘리가 뻔뻔한 사람이에요. 예. 하나님이 불을 내려 주셔 가지고 그 수많은 적들과 불사하면서 이겼어요. 엘리야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우리 찬송과만 부르는 사람들은 모르지만 우리 찬양하는 분들은 알잖아요. 그죠? 근데 그 엘리 하나님이 누구냐면 그 뻔뻔함을 받아 주시는 하나님이란 얘기예요. 그렇게 뻔뻔했는데 그렇게 이겨놓고 여왕이 자기를 죽인다고 하니까 숨어 가지고 울면서 "하나님 저 죽여 주세요." 하면서 쓰러지고 넘어지는 바로 이 사람. 아니 어떻게 이 사람이 쓰러질 수가 있어요? 근데 또 하나님을 찾아. 그리고 이제 또 어떤 사람이 되냐면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 적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도 않게 우리 하나님도 그 뻔뻔함을 받아 주세요. 예. 그 사람이 뻔뻔 아파서 "그래 내가 너를 통해서 능력 행할게. 돌아와. 돌아와. 내가 문 열 너를 위해서도 너를 위해서도 이 문 열어 놨어. 너를 위해서도. 들어와. 교재하자." 예. 그러면서 비를 주시는 우리 하나님. 그러면서 얘기하세요.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그하면 너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는 이마다 구하는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일을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게는 열릴 것이요." 우리 하나님이 "너 아까 넘어졌니? 너 나 배신했니? 괜찮아. 또 구해. 나에게만 다시 와. 그럼 내가 열 길이 해줄 열리게 해 줄게. 찾게 해 줄게. 나에게만 다시 와." 하나님이 약속을 해 주세요.
그런 사람에게 뻔뻔한 사람에게 이랬다 저랬다 히끗히 하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오라는 거예요. 오라는 거예요. 예. 바로 이 기도를 통해서 고넬리와 베드로가 만나잖아요. 만날 수 없는 사람이에요. 예. 서로가 어떠면서 적이에요. 이방인이에요. 서로가 용서를 못하는 사람들이에요. 내가 어떻게 이방인을 받아들여? 예. 이방인이 내가 어떻게 유대인들에게 갈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나 이들이 기도할 때 이들이 연결되어지는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 그래서 그들이 교재가 풍성케 하시는 하나님이시다라는 거예요.
또 이들은 찬송할 때 그들의 교재가 풍성해져요. 감옥이 있었어요. 근데 이들이 찬송합니다. 근데 사도행전 16장 25절에 한밤 중에 바울과 신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함에 제수들이 들어요. 근데 문이 열리네. 예. 여러분들 하나님을 찬송을 좋아하세요. 그리고 여러분들 힘들고 어려울 때 찬양하면 그 가사 하나가 내 가슴에 베혀요. 찬양하세요. 이 좋은 찬송 있는데 왜 안 하십니까? 또 주의 복음을 전파할 때 하는 문이 열려요. 사도행전 7장 56절인데 말하대 "보라 하늘이 열리고" 언제요?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 우로로 주목할 때 언제입니까? 복음을 전할 때예요.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 문이 열려요. 예. 그러면서 요한계시록 3장 8절에 또 얘기하죠. "볼지어다. 내 앞에 열린 문을 두었노니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하나님이 여는 분 아무도 못 닫아요.
또 네 번째로 온전한 11조를 드릴 때 하는 문이 열려요. 말라기서 3장 10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의 온전한 11조를 창고에 드려 나의 집에 창 양식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아들 것이 없도록 붙지 않은지 봐라." 하늘 문이 열려서 교재하는 것. 여러분의 하나님 앞에 드림과 헌신이에요. 여러분들은 돈만 생각할지 모르지만 여기는 헌신이고 드림이에요. 교재예요. 그럴 때 하나님 문이 열린다라는 거죠.
저는 우리 영락의 성도들이 이제는 세례를 받았어요.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그 열린 문을 선물로 받았기에 그 교재를 누릴 수 있는 여러분들이 좋겠어요. 좋았어요. 이 좋은 교재를 왜 안 하십니까? 열어 놨는데 왜 안 찾아가세요? 예. 왜 기도로 찬송으로? 예. 헌신과 모든 봉사로 왜 안 찾아가세요? 찾아가세요. 하나님 지금도 기다리고 있어요. 예. 여러분들은 약속하고 가야만 된다고 착각할지 모르 약속 안 해도 돼요. 언제든지 찾아가세요. 언제든지 주님 기다리고 계세요.
세 번째로는 이 세례 받으신 예수님께서 예수님처럼 살려면 어떻게 되느냐? 하늘 문이 열릴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된다라는 거예요.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아무 때나 음성을 듣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음성을 들려 주고 싶을 때들을 수 있어야 돼요. 들을 수 있어야 돼요.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하늘 문이 열리며 하나님 말씀하시는 게 세 번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늘 문이 열리면서 하나님 말씀하시는 거. 그게 오늘 말씀이죠. 그렇죠. 세례 받았을 때 하늘 문이 열리잖아요. 그게 누가복음 3장 21절인데 백성이 다 세례를 받으세요.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 하늘이 열려 있고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고 하는 문이 열리면서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고 하는 문을 열고 얘기해 주는 장면이 나오죠.
하늘 문을 열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언제 나오냐면 누가복음 9장 35절에 변화산에서 기도하실 때 변화산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 음성이 들려요.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그렇죠? 변화산에서 하늘 문이 열렸을 때 또 얘기하세요. "이는 나의 택한 아들 곧 아들 택함을 받은 자다." 또 세 번째는 하나님을 열고 얘기하실 때가 언제냐면 요한복음 12장 28절이에요. 십자가 지시 막판에 들려 주시는 말씀이에요. 예수님께서 이제 십자가 지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자꾸 얘기하시거든요. "아 이제 십자가 질 때 다 가왔다. 하나의 씨가 죽어야만 열매를 맺는다. 십자가 져야 돼."라고 얘기하실 때 주님이 예수님께서 계속 기도하세요. "주님 내가 저야죠. 근데 힘듭니다. 어떡할까요? 내가 지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이렇게 묻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 내가 지금 나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있는 게 맞아요? 예. 여러분들 힘들고 어려울 때 기도가 당연히 나와요. 하나님 영광되고 싶은데 내 고난과 어려움에 이렇게 사람들이 보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것이 보일까 봐 저도 그게 걱정되거든요. 아프기 때문에. 예. 맞아요. 그때 예수님에게 하늘 문이 열리며 얘기하세요. 12장 28절에 "아버지여 아버지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그 얘기가 뭐냐면 "하나님 내가 하나님의 이름 영광스럽게 하고 있는 거 맞아요?"라고 묻는 거예요. 이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무슨 얘기예요? 잘하고 있어. 걱정하지 마. 잘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하늘 문을 열고 얘기하시는 주제는 하나였어요. 뭐냐면 "야, 잘하고 있어. 너 나가 기뻐하는 아들이야." 예. 너는 내가 너를 택한 사람 맞아. 한마디로 말하면 한마디로 말하면 "나는 너를 사랑한다. 잘하고 있어." 그러니까 하늘을 여시고 하시는 말씀이 일관되게 이 말씀을 주시고 계시다라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몰라요.
예. 하늘을 여시고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내가 너를 사랑해. 잘하고 있어. 걱정하지 마." 이렇게 계속해서 얘기하세요. 한마디로 마가복음 1장 11절에 얘기를 계속해서 해 주시는 거예요.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야. 걱정하지 마.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이렇게 얘기해요. 시편 2장 7절에 보면 같은 맥락의 얘기를 하시는데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여러분 엄청난 축복의 말씀 아니에요. 하나님 나에게 얘기해 주세요.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근데 이 말씀의 배경을 보면 이건 더 엄청나다는 걸 깨달아요.
여기 보면 여호와의 명령을 전한다 그랬잖아요. 여기서 명령을 어떤 명령이냐면 측령을 얘기하는 거예요. 이 장면이 어떤 얘기냐면 온 세계의 모든 외국인들을 국빈들이다 모셔 놓고 지금으로 말하면 그 대관식의 장면이에요. 주에 있는 온 나라를 그 대통령과 모든 사람을 모아놓고요. 주님이 얘기하시는 거예요. 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한마디로 말하면 세상의 모든 국빈들 앞에서 우리 예수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랑하시는 장면이에요. 한마디로 여러분들 많은 부분들이 내 열등감 때문에 내 열금 열등감 때문에 우리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우리 하나님이 누구시냐면 온 세계의 대통령과 높은 사람들 다 모아놓고 얘기하는 거예요. 여러분들 보세요. "내 아들이에요. 내가 얘를 낳았어요. 이쁘죠? 자랑스럽죠?" 여러분들 보세요.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 하나님께서 얘기를 하고 계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를 한 번도 창피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열등감 때문에 창피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너무 자랑스럽다고 얘기하세요. "어 나는 하나님이 낫지 않았는데 괜찮아요. 낫지 않아도 돼요." 그 사람은 하나님을 영접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잖아요. 예. 그래서 요한복음 1장 2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까." 이게 무슨 얘기예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얘기하는 거예요. "얘가 오늘 나를 영접했어요. 얘가 나를 믿는데요. 얘 이제부터 내 자녀예요." 예. 그래서 나는 이 자녀에게 기대를 걸면서 이 사람이 어떻게 주의 뜻을 이루는지를 난 소망 가운데 기쁨 가운데 바라보는 사람이 "얘가 내 자녀예요."라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전도했을 때 우리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그거라는 거예요.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는 거예요. "나는 얘 때문에 기뻐한다."는 얘기예요. 예. 그래서 얘가 나한테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때 우리 하나님이 기뻐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예요. 그게 우리 하나님의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때 여러분 우리 다 애를 나와봐서 알잖아요. 예. 애를 낳서 알잖아요. 애를 놓고 제일 듣고 싶은 소리가 뭐예요? 제일 듣고 싶은 소리가 뭐예요? 예. 저는 요즘에 우리 큰 딸 이렇게 보면서 좀 애초로 와요. 왜냐면 애를 낳는데 꽤 됐잖아요. 돌도 지나고. 아니, 근데 이놈의 자식이 손녀를 얘기하는 거예요. 예. 저 아직도 우리 딸이 더 좋으니까 이놈의 자식이 아직까지 엄마라고 안 불러요. 모든 걸 다 뭐라 그러냐면 아빠 >> 놀리듯이 아빠 다 아빠네. 저도 할아버지도 아빠 할머니도 아빠. 그러니까 우리 딸이 꿈에도 듣기를 원하는 소원은 뭐예요? >> 엄마. 아, 뭐 그 소리 듣고 싶은 거예요.
우리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하나님 아버지 그 소리 듣고 싶어서 우리 하나님이 완장하셨을 것 같아. 예. 그게 우리 하나님이에요.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에요. 저는 우리 성도들이 그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하나님이 가라사되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늘을 여시고 하나님이 하시는 소리가 다 그거거든요. 다 그거요.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 때문에 기뻐해. 내 이름 불러 줄래? 내 이름 불러 줄래? 네가 나를 위해서 뭐 안 해도 돼. 안 해도 돼. 내가 내 아빠 맞지? 내가 너 내 아빠 아버지 맞지?" 우리 하나님 그걸로 기뻐하시고 그걸로 감동받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에요.
내 스스로 생각할 때 나는 못 날 수 있어요. 우리 하나님은 말씀을 대할 때마다 대할 때마다 "내가 너로 인을 기뻐하노라."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의 보 말씀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예. 세상에 소리를 듣지 마세요. 세상에 소리 듣지 마세요. 예. "내가 너 때문에 기뻐하노라. 난 너 때문에 기뻐해." 예. 너희 존재를 기뻐하고 네가 나의 이름을 불러 줄 때 기뻐하고 내가 그래서 하늘 문을 열어 놓고 있는 거야. 하나님 열어 놓고 나와 교재하자. 나와 함께 하자. 나와 같이 살자. 내 이름으로 기도하자. 내 이름으로 찬송하자. 내 이름을 전도하자. 아프니? 그럼 내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 뻔뻔해도 좋아. 뻔뻔해도 좋아. 예. 나한테 와. 나한테 와. 내가 받아 줄게. 세상 사람들은 배신자라고 얘기할지 모르지고 네가 어떻게 감이라고 얘기할지 모르고 네가 어떻게 히뜨기가면서 날 찾아올 수 있어라고 얘기할지 모르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아니에요. 나 찾아와. 나 문 열어 놨어. 물론 이 큰 문은 느껴지지 않을 수 있어요. 왜냐하면 내 죄 때문에 나의 부족함 때문에 그 하나님 문을 열어 놓고 계시거든요. 그 문으로 들어오셔서 예 하나님과 깊은 교재로 나오세요. 그러라고 우리에게 세례를 주신 거고요. 그러라고 문을 열어 놓으신 거예요. 예. 바로 그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깊은 교재로 나아갈 줄 아는 우리 모두가 되어지실 수 있도록 주님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어쩌면 혼돈된 세상입니다. 어쩌면서 세상을 따지기 좋아합니다. 아, 이렇게 회개하고 이렇게 세례받고 이렇게 해야 돼. 뭐 법도 막고 혼돈되게 우리에게 가르치면서 하나님 앞에 깊은 교재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 세례 요한을 보내 주시고 그것을 통해서 모든 것을 안정시키시고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위해 이 문을 열어 놓았다라고 말씀해 주시면 감사합니다. 아무도 이 문을 못 닫아. 너 많이 들어올 수 있고 너를 위해서 이 문을 열어놨기 때문에 "야 들어와 우리 교재하자. 기도로 우리 교재하자. 아프냐? 기도하자. 죄를 접느냐? 뻔뻔하냐? 그래도 찾아와서 기도하자." 예. 자녀답지 못하게 살았느냐? 아니야. 나는 너를 사랑해. 나는 너 때문에 기뻐해. 나는 너 때문에 즐거워해. 나는 너만 생각할 자랑스럽고 그래서 너희가 너에게 권세를 줬으니 그 권세를 통해서 이제 나와 교재하고 승리의 길로 나아가자라고 우리를 불러 주시는 그 주님의 사랑과 은혜 앞에 계속해서 나오는 우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물론 하나님 우리가 뭐라고 아무것도 아닌데 어떤 면에서는 뻔뻔한데 어떤 반역자인데 지금도 문을 열어 주시고 기다리시는 주님, 주님께 찾아가 교재하게 하시고 그 주님의 마음껏 나를 사랑한다는 음성 앞에 나아가는 우리들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우리가 그 교재와 은혜 앞에서 꼬끌라지는 그렇게 주님을 사랑할 줄 아는 주님이 결국에는 주님의 기쁨되는 우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는 아무것도 아닌데 우리를 사랑해 주심에 감사 감사드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아멘.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