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통로가 됨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1. 여호와께 감사하라 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이제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3. 이제 아론의 집은 말하기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4.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말하기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5.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 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내게 부르짖으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우리가 갇혀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하나님은 여전히 역사하시며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를 경험해야 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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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 118 1. 여호와께 감사하라 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이제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3. 이제 아론의 집은 말하기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4.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말하기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5.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 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8.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9.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 10. 열방이 나를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 11. 저희가 나를 에워싸고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 12. 저희가 벌과 같이 나를 에워쌌으나 가시덤불의 불 같이 소멸되었나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 13. 네가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셨도다 14.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15. 의인의 장막에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16.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 17.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18.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붙이지 아니하셨도다 19. 내게 의의 문을 열지어다 내가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20.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21.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22.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24.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25.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 26.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27.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우리에게 비취셨으니 줄로 희생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 28.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29.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시편 30 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2.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3.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5.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6.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7.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8.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9.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어찌 진토가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10. 여호와여 들으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11.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12. 이는 잠잠치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케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 예레미야 1 1.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2.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다스린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3.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십일년 말까지 임하니라 이 해 오 월에 예루살렘이 사로잡히니라 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6.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8.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9.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10.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를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 13.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임하리라 1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북방 모든 나라의 족속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면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을 치리라 16.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베풀어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 17.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다 그들에게 고하라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두렵건대 내가 너로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게 할까 하노라 18. 보라 내가 오늘날 너로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족장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하였은즉 19.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번 주일 설교로 만든 6일 묵상입니다 —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에 하나씩.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십니다. 이 약속을 믿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르짖음은 간절한 기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듣고 응답하십니다. 간절함을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응답하십니다. 믿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은 큰 힘이 됩니다. 공동체의 기도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통로가 됩니다. 함께 기도할 때 더 큰 응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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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일 말씀에서 뽑은 5문제입니다. 보기를 눌러 정답을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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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두 번째로 하신 말씀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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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가 갇힌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갇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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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부르짖으라고 하신 이유 중 하나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은 역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부르짖으라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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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짖는 기도가 간절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부르짖는 기도는 열정적인 기도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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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에서 언급된 AI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AI는 항상 사용자가 원하는 말을 해 주는 특징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우리 모두에게 넘치도록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아멘. 우리는 내일부터 제 24차 가을 글로벌 특별 새벽 부흥회를 시작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점심을 먹고 나면 한국 시간과 새벽과 비슷한 시간이겠죠. 온라인을 통해서 글로벌 특별 새벽 부흥회에 늘 참여해 왔습니다. 참여할 때마다 마치 현장과 같은 시간들의 은혜를 누리면서 너무나 좋고 감사하다는 시간을 갖게 되었고, 또 그렇게 온라인으로 참여하고 나서 제 마음 안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온라인으로 참여 이렇게 좋은데 현장은 얼마나 좋을까? 아니, 온라인으로 이렇게 좋은데 현장은 얼마나 좋을까? 이 현장이 너무나 설레고 또 기대가 되는 현장인데 드디어 제가 현장에서 글로벌 특세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혹시 몸이 불편하시거나 여러 가지 여의치 않은 분들은 온라인으로 여러분 집중하면서 참여할 수 있겠지만, 마음 가운데 내가 이 시간에 언제 일어나봤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을 거고, 날씨가 추운데 가기 싫다 하시는 분도 있잖아요.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이 말씀을 꼭 생각해 주십시오. 온라인으로도 이렇게 좋은데 현장은 얼마나 좋을까? 그 마음으로 현장에서 우리가 함께 모여서 특세에 참여할 수 있는 우리 사랑의 영가족이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럼 옆에 분과 이렇게 인사하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같은 자리에서 만나요."라고 인사하겠습니다. 내일 같은 자리에서 만나요. 내일 같은 자리에서 만나요. 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두 번째 말씀하신 본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명령하고 있는데요. 이 말씀하신 배경이 좀 있습니다. 1절의 내용을 보니까 이렇게 말하는데 함께 읽겠습니다. "예레미야가 아직 시대들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 예레미야가 지금 아직 시대에 갇혔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가 시대에 갇힐 만한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말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예레미야가 악한 일을 해서 나쁜 일을 해서 시위대가 그를 잡으러 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말씀을 전하다가 사명대로 살다가 시대에 갇혔다는 것이죠. 예레미야가 전했던 메시지는 이겁니다. "예루살렘의 성은 무너질 것이고 시드기아 왕은 포로로 잡혀갈 것이다. 침공을 받아서 이스라엘 땅은 망할 것이고 시드기아 왕은 적들의 손에 끌려갈 것이다."라는 거였습니다. 물론 시드기아 왕과 유다 사람들은 이 말이 듣기에는 불편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은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고 해서 도움되는 건 아니잖아요. 내가 들어야 될 말이 있고 또 듣고 싶은 말도 있겠지만 반드시 내가 듣고 깨달아야 될 말들도 있는데 안타깝게도 시드기아 왕은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안 해 준다고 해서 예레미야를 가두어 버렸습니다. 사람들 마음 안에 듣고 싶은 말을 듣고 싶은 마음의 욕망이 있죠. 그래서 AI를 통해서 자신이 위로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지난 10월 달에 최근 한 달 동안 AI를 통해서 감정적인 교감과 위로와 마음의 정서적인 안정감을 가진 사람의 퍼센트를 조사했더니 AI를 쓰시는 사람 가운데 무려 60.3%가 AI와 대화를 나누면서 마음의 안정감과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작년에 이용자의 60.3%였는데 무려 1년 만에 7%가 넘게 증가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걸 통해서 내가 듣고 싶은 말, 그 말에도 위로를 받고 싶어 합니다. 여러분 AI를 쓰면 알겠지만 AI는 많은 질문들에 항상 내가 원하는 말,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늘 해 주는 사안이죠. 절대 AI는 "당신은 틀렸습니다. 당신은 잘못됐습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똑바로 살아야 됩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거기 안에 세팅값이 있기 때문인데요. 그래도 내가 틀렸는데도 불구하고 AI에게 "네가 틀렸어."라고 말하면 부정하지 않고 "어, 제가 틀렸네요. 다시 한번 알아보겠습니다."라고 반응을 합니다. 이게 보통 AI의 세팅 값인데 제가 실제로 좀 해 봤습니다. "1 + 1은 뭐야?"라고 말했더니 "2"라고 답변하더라고요.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2가 아닌 것 같은데 3인 것 같은데."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아, 목사님 그렇군요." 아, 제가 목사로 불러 달라고 세팅을 해 놨거든요. "목사님 그렇군요."라고 하더니 "산수에서 1 + 1은 2지만 상황에 따라 3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남자가 여자를 만나 한 가정을 이루면 아이가 태어나면 삼이 되겠지요. 삼이라는 겁니다. 또 이렇게 말한다. "신앙적으로 두 사람이 함께 모여 기도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셋이 될 수 있습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학적으로 얘기하자. 1 + 1은 3이야."라고 말했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1 더하기 1은 맞습니다. 목사님, 1 + 1은 과학적으로도 3이 될 수 있습니다." 저에게 왜 잘못 알고 있냐고 당신의 생각을 뜯어치라고 말하지 않아요. 그냥 무조건 "네,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하면서 나를 위로해 준다는 것이죠. 어쩌면 우리가 그런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내가 듣기 원하는 듣고 싶은 말보다 내가 들어야 될 말을 더 듣기 위하여 살아가야 된다는 것이죠. 이스라엘 땅 가운데 선지자들이 많았습니다. 참 선지자가 있었고 거짓 선지자가 있었는데 "평안하다, 평안하다.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선지자는 거짓 선지자고 "너희에게 하나님을 떠나면 심판이 있을 거야."라고 지적하고 책망하는 자는 참 선지자라고 말했던 성경에 많은 예언서들의 이야기가 있죠. 우리가 어찌 보면 사람을 의식하다 보면 그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을 하게 되고, 내가 어떨 때는 듣고 싶은 말을 듣기 위하여 사람을 찾아다닐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진실 앞에 설 때에 우리는 갇히게 되죠. 오히려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된 세상 가운데 맞추어 살면 우리의 삶은 평안할 수 있습니다. 갇힐 일이 없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그로 인해서 갇히는 일들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때로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 절대 환영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더 하나님의 말씀, 들어야 될 말씀을 듣는 자리에 있어야 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기독교 영성이라는 것은 완벽한 인생, 완전한 인생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성이라는 것은 돌이킬 수 있는 힘이에요.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내가 죄 가운데 있었는데, 내가 교만한 자리 가운데 있었는데, 내가 그릇된 자리에 있었는데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주님께서 원하던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참 영성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죠. 완벽한 사람 없습니다. 나는 실수합니다. 나는 연약합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날마다 그 은혜 힘입어서 주님께서 원하는 자리로 나는 돌아가겠습니다. 이 고백을 자진 자들이 그리스도의 영성을 가진 자라는 것이죠. 어떨 때는 나의 잘못을 알게 되면 돌이켜야 되는데 문제를 덮으려고 하고 진실 앞에 서지 않으려고 하고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서 오히려 더 공격하려고 합니다.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정말 연약한 자이지만, 나의 부족함을 알고 나의 연약함을 알고 나의 완전하지 않음을 알고 주님의 은혜로 나는 날마다 되어지는 인생이라고 고백하는 사람, 그 사람이 참 그리스도의 삶의 모습이다라는 것이죠. 안타깝게도 시드기아 왕이 그렇지 못했습니다. 예레미야의 말을 들을 때 다윗이 나단 선지자의 책망 앞에서 그가 울며 회개하며 침상을 눈물로 적셨던 그 모습이 아니라 예레미야의 입을 닫으면 그를 가두면 하나님의 말씀 "너는 포로로 끌려갈 거라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예레미야를 가두어 버렸습니다. 이 갇혀 있는 그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하신 말씀이 오늘 나오는 1절에서 3절의 말씀인데, 3절의 말씀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3절을 함께 볼까요? 이렇게 하나님께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지라." 하나님은 갇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예레미야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너는 그 자리에서 내게 부르짖지라." 말씀하셨다는 것이죠. 소수무책인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고 그 어떤 선택도 그 어떤 길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의 이름을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부르짖지라 말씀하셨다는 것이죠. 사도 바울이 마게도냐 사람들 환상에서 나타나 "우리를 도우라." 할 때 빌립보의 지역에 이를 때 그에게 찾아왔던 것은 감옥에 갇히고 옷벗김을 당하고 매를 맞는 거였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가운데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그 현장 가운데서 여러분, 사도 바울이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라.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고 해로디가 야고보를 잡아 죽이고 이제는 베드로마저 감옥에 가둬서 그를 죽이려고 할 때 힘없는 교회와 힘없는 성도들이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모여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요나가 니누엘을 가라는 명령 앞에 불순종하고 다시 쓰러 갈 때에 풍랑을 만나 바다에 던지움을 당하고 큰 고깃뼈에 삼킴을 당했을 때 그곳이 지옥 같았다고 말하는, 스올 같았다고 말하는 냄새나고 캄캄한 때 요나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오늘도 예레미야가 갇힌 가운데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하게 주의 이름을 부르짖는 것뿐이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한밤쯤과 같은 현장 가운데 사도 바울이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옥문이 열리게 하셨던 것처럼, 베드로가 잡혀 죽음의 위기에 있을 때 교회가 함께 모여 기도할 때 베드로가 자유케 되었던 것처럼, 요나가 고깃배 속에서 그 어떤 길도 보이지 않아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요나를 다시 니네로 갈 수 있도록 그 길을 열어 주셨던 것처럼 우리가 막막하고 갇혀 있는 가운데 우리가 해야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짖는 것, 부르짖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해야 될 현장이라는 것이죠. 지금 우리의 삶이 예레미야 같은 상황 아니겠습니까?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지금 내가 이 상황에서 뭘 할 수 있을까?" 막막하고 답답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무엇도 기대할 수 없는 그 현장 가운데서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지라." 너는 내게 부르짖지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갇혀 있을 때, 캄캄할 때, 보이지 않을 때 너는 내게 부르짖지라.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시는 줄 믿습니다. 아멘.
그러면 사랑하는 영가족 여러분,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르짖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왜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어야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세 가지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부르짖지라고 하시는가? 첫째, 하나님은 역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자, 2절의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이를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무엇을 하고 말씀하십니까? "나는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라. 나는 그 일을 성취하는 여호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그러기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지난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우리가 글로벌 특세를 앞두고 한교섬을 앞두고 1교섬을 앞두고 오정의 단임 목사님께서 교회에 우리가 3일 금식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래서 몇 명의 교육자들과 함께 제천 기도동산에서 저희들은 목요일, 금요일, 목사님은 토요일까지 시간을 보내셨는데요. 그때 목요일 날 저녁에 또 금요일 날 아침에 교육자들이 모이는 가운데서 목사님께서 귀한 말씀을 주셨고 그 말씀이 참 후임 목사인 저에게 큰 도전이 되고 마음에 새겨지는 깊은 은혜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이런 말씀이셨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원을 주셨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소원을 주셨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소원을 들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꿈을 주셨다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비전을 주셨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 실력과 내 능력과 내 형편과 환경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그 꿈과 그 비전을 이루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아멘. 아멘. 사랑의 영가족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원을 주셨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꿈을 주셨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비전을 주셨다면 그 꿈을 그 비전을 그 소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어 가실 줄 믿습니다. 아멘. 그러기 우리에게 하나님은 부르짖지라 말씀하시는 것이죠. 시위대가 예레미야를 다 가두었다 할지라도 그의 말을 닫을 수 있어도 절대로 그 시위대는 하나님을 가둘 수 없는 것이에요. 우리 인생의 앞뒤 자오가 사방에 우겨싸임을 당하였지만, 그러나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것이죠. 우리 인생에 많은 일들이 어렵고 힘들고 내 눈에 시야가 가렸다 할지라도 아무것도 안 보인다 할지라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시선은 절대 가릴 수 없는 줄 믿습니다. 아멘. 사랑 영가족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고 저와 여러분의 삶의 모든 것들을 다스려 주시는 만왕의 왕이심을 믿습니다. 아멘. 나의 인생과 가정과 일터와 자녀와 관계와 여러분의 미래의 모든 것들을 주님은 주관하시고 역사하여 주시는 그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지라." 너는 내게 부르짖지라. 너는 내게 부르짖지라. 말씀하시는 말씀 앞에 날마다 부르짖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아멘.
두 번째로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두 번째는 하나님은 이미 응답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자, 3절의 말씀 우리 함께 읽어 볼까요? 시작. "너는 내게 부르짖지라. 내가 내게 응답하겠고 내가 알지 못하고 크고 은밀한 일을 내게 보이리라." 아멘.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뭐라고 말합니까? "너는 내게 부르짖으면, 네가 내게 부르짖으면 나는 내게 응답하겠고 나는 내게 보일 것이다." 부르짖는 자에게, 나를 찾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모두에게 임하는 것 같지만, 그러나 그 은혜는 찾고 부르짖는 자에게 임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아멘. 너는 내게 부르짖으면 내게 부르짖는 너에게 내가 임할 것이고, 내게 부르짖는 너에게 내가 응답할 것이며, 내게 부르짖는 너에게 내가 보일 거라고 약속하셨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영가족 여러분, 우리가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응답의 문을 열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아멘. 에스겔서 36장 37절의 말씀도 이렇게 말해요. 함께 읽어 볼까요? 시작.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시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니라." 아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응답하시기를 약속하셨어요. 그런데 뭐라고 말합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네가 부르짖어야 된다. 내게 나와 기도해야 된다. 그래야 그 약속을 얻을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죠. 사랑의 영가족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글로벌 특세를 주셨을까요? 왜 우리에게 글로벌 특세로 부르실까요? 그것은 주님께서 응답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나와서 나를 찾으면, 나와서 내 이름을 부르면, 나와서 너의 가정과 자녀와 일터와 경제적인 연약한 육신의 삶의 모든 것들을 내게 와 부르짖으면 나는 너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여 줄 거야. 그 약속으로 우리를 글로벌 특세로 불러 주시는 줄 믿습니다. 아멘. 그러기 우리는 특세에 나와서 우리의 기도가 부르짖는 기도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르짖으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여러분, 기도에는 많은 스타일이 있습니다. 침묵 기도도 있고 묵상 기도도 있고 찬양 기도도 있고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신음의 기도도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갇혀 있는 예레미야에게 부르짖으라고 하였던 것일까요? 하나님의 귀가 먹어서일까요? 아니면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신음하는 소리에도 응답하신다고 하셨는데 왜 굳이 부르짖어야 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세 번째, 부르짖음은 간절한 기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기도의 사람이 바운주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열정은 기도의 핵심이고 원동력이다. 소리내어 부르짖어 기도할 때 열정적인 기도가 될 수 있다." 자, 열정은 기도의 핵심인데 우리가 부르짖으며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가 열정의 기도가 될 수 있다. 스퍼전 목사님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열정 없이 기도하는 것은 전혀 기도하지 않는 것이다.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기도다."라고 이런 말까지 합니다. 그래서 시편 118편 5절에 이런 말을 해요. 함께 읽어 볼까요? 시작.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아멘. 우리가 여호와를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또 시편 30편 2절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읽을까요?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셨음에 나를 고치셨나이다." 내가 여호와 앞에 나와 부르짖었더니 주님께서 내 연약한 육신을, 내 상처받은 영혼을 주님께서 치유하여 주셨도다. 그 은혜가 부르짖는 자에게 임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꼭 부르짖어야 됩니까? 나는 한 번도 교회에서 부르짖어 본 적이 없는 정말 조용히 기도하는 거 신앙생활했습니다. 한은 고등학교 때 새벽 기도 때도 은혜 받아서 간절하게 기도했더니 뒤에서 어느 권사님이 제 어깨를 뚝 툭 두면서 이렇게 한 이후부터 저는 한 번도 부르짖어 기도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부르짖는 게 익숙하지 않습니다. 꼭 부르짖어야 되는 것일까요? 그냥 조금 조용하게 말하면 안 될까요?" 여러분, 살펴보십시오. 우리가 지금 조금조금 기도할 때입니까? 지금 여러분들의 상황이 그냥 기도할 때예요. 우리들의 가정이, 나의 자녀들이, 여러분의 터가, 여러분의 삶이 현장이 부르짖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너무나 답답해서 너무나 힘들어서 "하나님, 누가 나를 위로합니까? 누가 나의 힘이 되어 줍니까? 누가 나의 능력이 되어 줍니까? 아무도 내 편되는 사람이 없는데 주님, 나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지금 그런 상황이잖아요. 나라가 그렇고 민족이 그렇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갇혀서 신음할 수 없는, 아니 간절히 부르짖지 않으면 안 될 수 있는 상황이 우리의 상황인데 우리가 어떻게 지금 가만히 있을 수 있어요. 우리는 지금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현실의 삶을 살고 있는 줄 믿습니다. 아멘. 여러분, 자녀들이 방에서 엄마를 부를 때가 있어요. 뭐 물을 달라고 한 건지 간식을 달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엄마, 엄마." 부르면 그 부엌에 있던 엄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왜라고 불러요?" 또 "엄마, 엄마." 부르면 또 "왜라고 부르죠?" 또 아이가 "엄마, 엄마." 이렇게 가볍게 부르면 그 엄마 마음에 무슨 생각이 있습니까? 바쁜데 왜 불러라는 그 짜증난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아이가 방에서 "엄마!" 부르면 엄마는 갑자기 일어나서 왜라고 묻지 않고 무조건 달려갑니다. 달려가서 "아니, 왜? 왜? 뭐가 문젠데?" 이게 간절한 부르짖음의 부모의 마음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을 간절히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일어나셔서 우리에게 달려오시는 거예요. 우리를 잡아 주시는 겁니다.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겁니다. 여러분,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우리의 기도의 소리가 작아지면 내 마음의 인간적인 소리가 내 귀에 크게 들리고 내 마음을 장악해요. 하지만 내가 간절히 부르짖으면 찾아오는 인간적인 생각과 어둠의 권세의 생각들이 내 부르짖음 앞에 내 마음을 장악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아멘. 그래서 부르짖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특별히 새벽 기도에 오시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시는 성도님이 있잖아요. "거기 두 시간 반 동안 한다며? 아, 나 그렇게 해 본 적이 없어. 그렇게 기도를 많이 시킨다며? 나는 기도를 해도 정말 5대학 6대지를 다 돌고 부모님, 아버지, 어버지, 형제들 다 기도하고 5분밖에 시간이 안 지난 사람인데 내가 어떻게 그렇게 기도해?" 하지만 여러분, 오면요, 우리 기도 입술이 열립니다. 아멘. 기도의 입술이 열리면 하늘의 문이 열리는 거예요. 하늘의 문이 열리면 은혜가 쏟아지는 겁니다. 은혜가 쏟아지면 저와 여러분이 사는 겁니다. 교회가 살고 나라가 살고 민족이 사는 역사가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아멘. 제가 총신대학교 1학년을 이제 입학하고 나서 신입생이 되어서 신학과 MT를 가게 됐습니다. 그때 1학년 4학년 선배님들과 함께 같이 갔는데요. 신학교 교수님이 이제 저녁 집회를 하시고 한 11시 정도에 끝났어요. 그랬더니 이제 신학과 임원단, 임원 목사, 그 전도사 형님들이 신입생들 모이라고 이제 지하 교육관에 저희를 불렀습니다. 그 시간 11시가 넘은 시간이었어요. 딱 가봤더니 바닥에 골판지 박스가 이렇게 깔려 있더라고요. 눈치 챘습니다. 아, 여기 무릎을 꿇으라는 것이구나. 그래서 제2의 부흥 집회가 시작됐습니다. 무릎을 꿇고 선배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도 그렇게 해서 목회하면 안 된다. 신학하면 안 된다." 해 가지고 막 책망도 하고 확 하면서 기도를 간절히 시키는 거예요. 또 신학생 1학년 때니까 얼마나 마음이 뜨겁겠습니까? 간절하게 그 선배 형들이 시키는 대로 막 간절하게 막 기도하는데 얼마 전 지났을까요? 갑자기 제 눈앞에 불이 번쩍이는 겁니다. 그때 제가 주님이신가요? 마음에 좀 의심이 들어서 막 기도하다가 하나님 한 번 더 보여 달라고 한 번도 했더니 하나님께서 저한테 다시 성광으로 강한 빛을 팍 임해 주신 거예요. 너무나 은혜가 되고 정말 그때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11시부터 기도 시작됐던 기도가 1시, 2시를 지나고 다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남아서 계속 간절히 기도했어요. 너무나 좋았거든요. 저를 만나 주셨다는 그 기쁨 때문에. 그런데 문제는 끝나고 났는데 친구들에게 간증을 못 하겠는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이제 20, 30년 전만 해도 총신대 신학과 보수 합동이 교단이 그런 걸 잘 안 가르치고 모르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뭐를 봤다, 뭘 들었다, 뭐 바람소리 느꼈다, 뭐 쓰러졌다 하면 이상하게 보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아무도 얘기 못 하고 괜히 그런 얘기 했다가 "아니, 순복음 교회가 이 사람이 여기 왔냐?" 이럴까 봐 제가 이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받은 은혜가 있으니까 이제 학교 생활이 시작하면서 예배당에서 먼저 기도하고, 또 학교가 끝나면 저기 뒷산에 가서 기도하고 이렇게 정말 주님과의 좋은 인격적인 깊은 사랑의 교제를 풍성하게 나누고 있었어요.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요? 지났더니 신학과 게시판에 이번에 지난주에 갔다 왔던 그 신학과 MT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딱 봤더니 제일 사진 두 장이 있더라고요. 그 두 장이 뭐였냐면 이렇게 손 두고 기도하는 거였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그 불빛이 카메라 플래시였구나. 제가 그걸 알고 나서 얼마나 창피하고 얼마나 민망하고 내가 쓸데없는 공주 막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나 한 가지 깨달음이 생겼어요. 하나님 그때 주신 은혜는 뭡니까? 그건 뭐였던 건가요? 그때 깨달음은 이거였습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기도할 때, 너희들이 함께 모여 기도할 때, 너희들이 함께 모여 부르짖을 때 그 기도 현장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함께 하셨던 시간이었다는 것이죠. 아멘. 입술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고 하늘의 문이 열리고 성령의 능력이 쏟아부어지는 시간. 함께 모여 기도할 때 그 은혜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함께 모여 기도하는 가을 글로벌 특세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여시고 우리의 기도의 문을 열어 주시고 우리의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아멘.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두 번째 주신 말씀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그렇다면 첫 번째 주신 말씀은 무엇일까요? 예레미야 1장에서 그 어린 예레미야를 하나님께서 선지자로 부르셨을 때 주셨던 말씀이 첫 번째 말씀입니다. 그게 1장에 나와요. 그래서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신 부르심입니다. 두 번째 주신 말씀은 뭐냐면 부르짖지라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임한 첫 번째 말씀과 두 번째 말씀의 공통점이 있어요. 그게 뭔지 아십니까? 그 공통점은 부르입니다. 부르. 부르심과 부르짖음. 그래서 한글적인 유의적인 표를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름받은 사람은 부르짖어야 산다. 아멘. 아멘. 아, 멋지지 않습니까? 부름받은 사람은 부르짖어야 산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은 사람은 주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살아야 된다. 하나님의 사명자로 부름받은 사람은 부르짖음으로 기도로 감당해야 한다. 아멘. 세상에 기도하는 사람을 이길 사람은 없다. 기도하는 가정을 이길 것도 없다. 기도하는 교회를 무너뜨릴 자가 없다. 기도하는 나라를 허물 자가 없다. 아멘. 기도하는 자가 승리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아멘. 이번에 우리가 "여호와께서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 이 주제를 가지고 우리가 간절히 부르짖는 고백은 "여호와께 능치 못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아멘. 우리 여러분 삶 가운데 놀라운 은혜와 기적으로 역사가 되어지는 그런 글로벌 특세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아멘. 아멘. 사랑 영가족 여러분, 말씀을 마무리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부르짖으며 살아야 합니다. 갇힌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갇혀 있어도 하나님은 절대로 갇혀 계시는 분은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없을 때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일하시고 하나님은 성취하십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우리 24차 가을 글로벌 특별 새벽 부흥회에 여러분 은혜의 구경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 은혜를 소식으로 듣는 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은혜의 주인공이 되었으면 좋겠고 기적의 주인공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역사하시고 응답하신 하나님 아버지, 갇힌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주님께 부르짖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제24차 가을 글로벌 특별 새벽 부흥회를 통해 우리의 기도의 문을 열어 주시고 가정과 자녀와 교회와 이 나라 가운데 하나님께 허락하시는 역사와 능력으로 충만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핵심 정리
- 하나님은 갇힌 상황에서도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신다.
- 부르짖음은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 하나님은 역사하시는 분이며,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응답하신다.
- 부르짖는 기도는 우리의 영성을 깨우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한다.
나눔 질문
- 우리가 갇힌 상황에서 어떻게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을까요?
- 부르짖는 기도가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주세요.
- 우리가 듣고 싶은 말과 들어야 할 말을 구분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이번 주 적용
이번 주에는 기도하는 시간을 정해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를 드려보세요.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해보세요.
기도 · 묵상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갇힌 상황에서도 주님을 부르짖는 믿음을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