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거리하늘가족교회

260906(주일예배) 왜 일하세요? (창 2:15, 3:17-19)

캘거리하늘가족교회 · 2026-09-06
설교큐티 — 주일 설교로 하는 6일 QT
본문
창세기 3

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

설교자
캘거리하늘가족교회
날짜
2026-09-06
설교 길이
41 분
설교 영상 재생
요약

오늘 설교에서는 우리가 왜 일하는지를 성경을 통해 살펴봅니다. 첫 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하지만, 이는 인간의 타락 이후의 결과입니다. 두 번째로, 성공과 자기 발전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러한 성공이 진정한 의미를 가질지는 의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것이며, 구원받은 우리는 기쁨으로 일할 수 있는 자녀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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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
설교 구조
일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다
1
일의 의미
일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다
창세기 2:15
2
일의 목적
일은 성공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고린도전서 10:31
3
일의 소명
하나님이 보내신 자리에서 일하라
골로서서 3:23
◆
우리의 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축복의 수단이다

이번 주일 설교로 만든 6일 묵상입니다 —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에 하나씩.

이번 주 말씀창세기 2장 15절 -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경작하고 지키게 하시니라.'
1
월요일
일의 의미를 되새기다
오늘의 본문창세기 2장 15절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 동산을 경작하고 지키게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일하는 것이 단순히 생계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스스로에게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이 주신 소명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오늘 실천오늘 하루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되새기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기도하나님, 제 일터에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2
화요일
일의 목적을 찾다
오늘의 본문고린도전서 10장 31절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일의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스스로에게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있는가?
오늘 실천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마음으로 오늘의 업무를 수행하기.
기도주님, 제 모든 일이 주님께 영광이 되길 원합니다.
3
수요일
노동의 기쁨을 회복하다
오늘의 본문창세기 3장 17-19절

타락 이후 노동이 고통이 되었지만, 우리는 구원받은 자로서 노동의 기쁨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일하는 것 자체가 축복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스스로에게내가 일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고 있는가?
오늘 실천오늘 일하는 동안 기쁨을 느끼며 최선을 다해보자.
기도하나님, 제 일에 기쁨을 주시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게 하소서.
4
목요일
소명의식 갖기
오늘의 본문골로새서 3장 22-23절

우리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소명의식을 갖고 일할 때, 우리의 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됩니다.

스스로에게내가 일하는 곳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수 있을까?
오늘 실천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마음으로 일하기.
기도주님, 저를 이곳에 보내신 이유를 깨닫게 하시고, 그 소명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5
금요일
참된 성공의 기준
오늘의 본문시편 90편 10절

인생의 길은 짧고, 우리가 이룬 업적이 영원한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참된 성공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내가 추구하는 성공은 무엇인가?
오늘 실천오늘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하나님의 영광과 연결되어 있는지 점검하기.
기도하나님, 저의 목표가 주님의 뜻과 일치하게 하소서.
6
토요일
일의 축복을 나누다
오늘의 본문창세기 1장 28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일은 다른 사람에게도 축복이 되어야 합니다.

스스로에게내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축복이 될 수 있을까?
오늘 실천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로 주변 사람들에게 축복을 나누기.
기도하나님, 제 일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도 축복이 되게 하소서.
말씀 확인 퀴즈

이번 주일 말씀에서 뽑은 5문제입니다. 보기를 눌러 정답을 확인해 보세요.

  1. 설교의 주제는 무엇인가요?
  2. 첫 번째 일꾼은 왜 일을 한다고 대답했나요?
  3. 두 번째 일꾼의 대답은 무엇이었나요?
  4. 노동의 목적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무엇인가요?
  5. 설교에서 노동은 어떤 것으로 설명되었나요?
전체 스크립트

자, 오늘 왜 일하십니까? 왜 일하세요? 이 제목으로 말씀 나누겠습니다. 아, 네. 내일은 우리에게 노동절이지요. 연휴라 그런지 우리 많은 가족들이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노동절은 노동자들의 권위와 지위를 향상하기 위하여 서강 나라에서 정한 기념일입니다. 보통 메이데이라 그러지요. 그 이름처럼 보통은 이제 5월 1일 날, 5월 1일이 노동절인데 북미는 이제 9월 첫 번째 월요일을 그렇게 노동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 내일 노동절을 앞두고요. 노동의 의미와 목적을 성경 안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한 지혜자가 성전을 건축하는 현장에 나아가 이제 일꾼들을 만났습니다. 한 일꾼을 붙들고 “당신 왜 여기서 일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짜증을 내면서 “몰라서 물어?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래 하는 게 아니냐”고 이렇게 신경을 냅니다. 아, 정말 피곤한 인생이지요. 이제 부활에서 저 지혜자가 또 다른 일꾼을 만나서 또 동일하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여기서 일을 하십니까?” 그랬더니 이 사람은요. “난 꿈이 있어요. 나는 최고의 기술자가 되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다르죠. 이 사람에게는 꿈과 비전이 있었던 거지요. 자기 성장 아니면 자실련 뭐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예, 열정도 있고 그리고 정말 그 밝은 에너지가 이렇게 넘쳐난 거예요.

자, 세 번째로 지혜자가 다른 사람에게 또 “당신은 왜 여기서 일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은 또 다른 대답을 하는 거예요.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이 거하실 성소를 나는 짓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감독차도 설계사도 아니고 인부 노동자에 불과한데, 자기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 성전을 짓는다는 그 자부심과 기쁨에 넘쳐 흘렀던 거지요. 사람들은 이렇게 일하는 목적들이 제각기 다릅니다.

자, 이제 여러분들에게도 한번 묻겠습니다. 여러분, 왜 일하십니까? 여러분 왜 일하십니까? 뭐 말고도 나름 어떤 철학과 가치를 가지고 또 대답할 수 있으시겠지만, 그냥 단순하게 우리가 앞서 살펴봤던 일꾼들 세 사람의 범주에서 한번 선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왜 일하시는지, 이런 질문에 보통은 뭐 그냥 대답을 안 하시는데 그러면 안 되고요. 다 빠짐없이 이 질문에 대답을 하셔야 돼요.

자, 첫 번째 일꾼처럼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거지요.”라고 생각하는 성도님들은 오른쪽 발가락을 한번 들어 보시지요. 아, 예. 몇 분 계셔요? 예. 자, 두 번째 일꾼. “나는 자신을 위해서 성공을 위해서 열심히 일합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제 왼쪽 엄지 발가락 한번 들어 보세요. [웃음] 자, 세 번째. 세 번째 일꾼. “나는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일합니다.”라고 생각하신 분은 하나님께 윙클 한번 해 보시죠. 어, 예. 제가 다 주관들이 있으십니다.

자, 그러면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을 한번 성경에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첫 번째는요.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그 애들이 뽀로로를 좋아하는 게 노는 게 제일 좋아서, 사람은 노는 게 제일 좋은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마치 그 에덴 동산에 아담과 하와처럼 언제나 놀고 먹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요. 왜 우리가 놀고 먹으면 안 됩니까?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어요. 우리가 이제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에덴 동산은 모든 게 다 갖추어져 있는 그런 아름다운 정말 낙원인데 이제 쫓겨났어요. 그러니 이제는 스스로 자기 스스로 먹고 살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이게 모든 인생의 참 불행이지요.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 이제 창세기 3장의 말씀을 읽었죠. 여기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너 평생 수고해야 그 먹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수고한 대로 또 먹을 수 없는 경우들이 또 많이 있어요. 왜 그렇습니까? “땅이 네게 가시던 불과 엉기를 낼 것이라.” 그래서 심어도 심은 대로 거두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죄로 인하여서 땅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노력한 대로 얻지 못할 때도 있어요. “네가 이제는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평생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떻습니까? 범죄한 자에게 내리는 어떤 그 형벌을 그 뭐 CC로 합니까? 그 무거운 돌을 막 굴려야 되는 것처럼 범죄한 인간들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형벌처럼 그렇게 무겁게 느껴집니다. 죄를 지었으니 약속을 깨뜨리고 그 금단의 열매를 먹었으니 이제 어쩔 수 없이 평생 땀 흘리고 수고해야 살아갈 수 있게 된 거죠. 아쉽죠? 아담이 그것만 안 먹었어도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며 살지 않을 텐데, 그 한 순간 그 유혹을 못 이기고 넘어가서, 이제는 숙명처럼 어느 누구도 노동의 짐을 벗어 던질 수가 없게 된 겁니다.

오늘 성경에도 하나님을 위해 있는 우리에게도 주신 일반적인 자유 법칙이 있어요. 그건 뭡니까? “심은 대로 거둔다.” 예, 심은 대로 거둔다는 거예요. 스스로 속이지 말아라. 하나님은 없신적 여김을 받지 않는데 심은 대로 거둔다. 여러분, 심지 않고 거둘 방법 있습니까?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서 심지 않고 거둘 수 있습니까? 아니에요. 그럴 수 없어요. 이건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자연 법칙입니다. 그래서 일하지 않고 게으른 자는 잠언에서 게으른 자와 지혜 없는 자를 동일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게으른 자의 밭은 뭐 가시덤불 있고 잡초가 우성하고 돌담이 무너져서 거기에서는 수확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건요, 일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어요. 얻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죽이는 것을 이제 자살이라 하지요. 자기를 죽이는 거,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더라도 자기 자신을 발멸시키고 자기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게 뭡니까? 예, 게으름이에요. 게으른 자는 자기를 죽인다고 말합니다.

그래서요, 참 바울은 굉장히 강한 어조로 말하고 있어요.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먹을 것도 주지 말아라. 그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먹을 권한이 없다. “먹지도 말게 하라” 하고 참 강하게 말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는 세상이에요. 그게 기본값이에요. 그래서 일하지 않으면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이렇게 평생 노동의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 인간은 그렇게 허덕이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노동 가운데에 땀 흘리고 쓰고 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 그건 뭐 당연하지만 그럼에도요. 생존을 위해서 노동하는 것은 그건 어떤 동물적인 삶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모든 동물들도 살아가기 위해서 일하지 않습니까? 사냥하고 그렇게 살아가지 않습니까? 사람도 그런 생각으로 살아가면 동물과 다를 바가 없지요.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사람들은요. 그 노동이 살아가기 위한 목적이 아니고 살아가기 위한 수단인 겁니다. 그러면 목적이 따로 있는 거죠. 그 노동을 통해서 어떤 사람은 목적을 따로 가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노동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지혜가 우리에게는 있다는 거지요. 어쩔 수 없이 사는 거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거 아닙니다. 다 먹고 살고 하는 짓이죠. 이건 동물적인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거지요. 노동의 어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자, 그러면 이 노동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참된 목적과 의미는 무엇일까? 그게 이제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노동의 목적이 아니고 이 노동을 통해서 뭔가를 이루겠다는 거죠. 우리가 이제 열심히 뭐 일하는 거, 그냥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고 좀 더 고상하고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거, 예, 성공이라고도 하겠고 쉽게 이해하기로는 뭐 성공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이러한 일들이 그렇게 만만치 않잖아요. 뭐 우리 그 옛날에 아의 치유 뭐 이런 이야기 했었어요. 아니 그거 들었고 매시 걷고 뭐 치사하고 유치하고 이게 이제 직장에 삶의 현장입니다. 그럼에도요. 그럼에도 뭐 아니고 그들어워도 그렇게 버티는 까닭은 먹고 살기 위해서라면 뭐 단련이 수도 있겠죠. 그런 것보다는 예, 거기에서 뿌리 내리고 그리고 올라가기 위해서 승진하기 위해서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서지요. 직장인들의 양복 안 주머니에는 늘 사직서가 있다 그래요. 늘 사표를 품고 출근하지만, 그 시원하게 사표를 던져 버리지 못하는 까닭은 예, 거기서 버티고 견뎌서 마침내 올라가 승진하고 성공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들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는 이상은 아이 밑바닥에서 한단씩 정말 힘겹게 그렇게 딛고 일어서야 해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무엇으로 우리의 존재감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나의 나된 어떤 그런 부분들이 나의 정체성이라 그런 것이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람들을 처음 만났을 때에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무슨 일 하고 계세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 이 사람이 그런 일을 하는구나” 하면 이제 그 사람으로 규정이 되는 거지요. 무슨 일 하세요? 이제 그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거들먹거리고 그리고 좀 으쓱하기도 하고 주눅들고 유축되기도 합니다. 이제 그렇게 치열하게 성공의 사닥다리에 올라 정상에 우뚝 선 사람들, 예, 많은 불을 가지거나 권력을 가지거나 아니면 존경을 받는 위인들 그 자리에 올라가기까지 얼마나 정말 치열하게 고대게 올라갔을까 생각하면 마당이 존경과 찬사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뭐 종교가 잔사를 받지만 그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섰을 때 리스크가 있어요. 어떤 위험성이 있어요. 뭡니까? 추락할 수 있어요. 한 순간에 줄락할 수 있어요. 바닥에 엎드린 사람이 뭐 넘어질 이유가 있습니까? 바닥에 엎드린 사람은 절대 넘어지지 않아요. 그렇지만 올라갈수록 이제 넘어질 수 있어요. 더군다나 어떤 그 성실과 땀이 아니라 불리와 거짓으로 쌓아올린 그런 성공이라면 오래 가지 못해요. 그건 치명적인 실패일 뿐입니다. 야고보가 그 이야기를 해요. “너희가 불리의 재물로 그렇게 쌓은 게 그건 금자 답이 아니고 그건 증거라고요.” 증거라고요. 너희 불법과 불리의 증거라고 하나님이 거기에 대해서 심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거짓된 성공. 우리 주변에 뭐 많이 있죠. 얼마 전에 한국에 한 연예인이 인터뷰하면서 자기가 사대집 막 의사 집 아니고 자기 중조부가 왕의 뭐 황제도 진료했다 뭐 이런 이야기 자랑했다가 역풍을 맞았죠. 그분이 그 친일 행적의 의혹이 제기돼 가지고 오히려 큰 낭패를 보고 말았습니다. 뭐 아직 그 거짓으로 싸우려는 게 드러나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고 또 그렇게 드러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게 언제까지 감추질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어요. 하나님 앞에 그걸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요.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뭐 공평하니 어쩌니 하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하는 건 누구나 다 동의할 수 있을 겁니다. 깨지고 상하고 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정상에 오른다는 것은 어쩌면 정상적이지 않은 그런 위험성이 있음을 늘 조심하셔야 되고요.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게 목적이 아니라 진실하고 그리고 참되게 살아가는 그게 우리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이게요. 후진국은 뭐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에요. 뭐 우리도 한때 상공한 쿠테타는 뭐 처벌할 수 없다. 뭐 그딴 놀리를 가지고서 이야기했던 시절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누구도 그렇게 동의하지 않아요. 지금은 예, 쿠테타예요. 거기에 대해서는 선고를 했든 실패를 했든 당연한 처벌을 해야 된다고 우리 모두는 생각합니다. 이제는 예, 선진국이 될수록 그 과정까지도 정당해야 된다 하는 게 우리 일반적인 상식이에요. 더군다나 하나님 앞에서 모든 걸 보시고 중심을 하시는 하나님께 인정받는다는 거. 그래서 정말 그 자실에 그 정상이 올라가는 거 중요한데 그 과정도 정당하고 그리고 바른 길을 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 정당하고 바르게 올라가서 후대의 이름을 남기고 이렇다 할지라도 정말 그렇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그 영혼이 참된 성공자일까? 그것을 정말 참된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자체만 바라보면 얼마든지 그렇게 평가할 수 있겠죠. 그렇지만 좀 더 넓혀 보면 인류 역사와 온 우주와 그리고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시각과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그건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시편에는요. 우리가 아무리 70을 살고 80을 살아도 그건 수고와 슬픔뿐이다. 그가 70년 80년 살았다고 장 뭐 자랑하고 업적을 이루었다고 말하지만 그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고 그리고 신속히 날아간다고 말합니다. 왜 날아갑니까? 티끌이니까. 티끌.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인생의 존재가 티끌이라면 큰 업적을 이룬 티끌과 별 업적이 없는 티끌, 뭐 대단한 티끌과 향편 없는 티끌 무슨 차이입니까? 뭐 대단한 티끌도 그냥 티끌일 뿐이고 엄청난 티끌도 그 아이 그 번지도 안 되는 티끌 불과하다. 그리고 그 인생이요. 찰라고 말해. 찰라.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다. 밤에 한 순간 같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게 주의 목전에는 하나님의 시간표에서는 천년도 지나간 어젯밤 한여름 밤 꿈에 불과하다는 거죠.

그러면 노동이 어떤 노동을 통해서 자실과 성공의 가치를 이루어야 한다고 이루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것도 그리 의미 없는 일인데 그러면 참된 목적과 의미는 무엇일까? 이제 믿음의 사람들로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야. 하나님도 없으니 이걸 그렇게 넓혀 바라볼 수가 없겠지요. 하지만 믿음이 있는 신앙을 가진 우리가 정말 이루어야 하는 참된 목적과 의미는 무엇인가? 그게 이제 세 번째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 예, 우리 노동이 우리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 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앞서 창세기 3장에서 노동이라는 게, 일이라는 게 인간의 그 타락으로 말미암아 부여된 어떤 그 형벌처럼 그렇게 보았습니다. 그런데요. 이 창세기 3장 말씀을 보면 그 노동 그 자체가 형벌이 아니에요. 그 말씀 자세히 보면 이제 수고를 더한다는 말씀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 노동 자체가 하나님의 형벌이 아니고 거기가 수고하는 게 힘들고 고생스럽고 그게 이제 하나님의 형벌이죠. 사실 노동은 하나님의 형벌이 아니고 하나님의 축복이에요. 왜 그렇습니까? 타락하기 전에도 노동은 있었습니다. 여러분 아담과 하와가 아무것도 안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에덴 동산에서 그냥 놀고 먹는 빈둥빈둥 그거 아니었어요. 그리고 또 여러분 빈둥빈둥하는 게 부러워 보이긴 하지만 여러분 백수가 부러우십니까? 그럼 백수 되시면 되잖아요. 그런데 누구도 아 왜 틀리지? 그렇게 한 해를 지나가면 아 이거 지옥 같은 삶이에요. 그래서 나들 그렇게 일거리를 찾아 나서지 않습니까?

성경 말씀 보면요. 창세기 2장 15절 말씀.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에덴 동산에 두어서 그것을 경작하게 하셨습니다.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다. 경작한다. 땅을 갈아서 농사 짓는 거예요. 그리고 지키게 하셨다. 그것을 잘 관리하게 하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에도 이제 그 동산에서 농사를 짓고 이렇게 번역을 합니다. 그러니까 타락 이전에도 하나님의 심판 이전에도 노동은 있었다는 거예요. 그러면 타락함으로 인해서 이 노동이 기쁨이 아니고 괴로운 게 된 거지요. 타락 이전의 노동은 정말 즐거운 기쁜 일이었지만 이게 이제 인간의 죄의 형벌로 인하여서 기쁨을 빼앗기고, 뭐 일하면서 기쁘신 분들이 가혹하지만 대부분은 즐겁게 일하기보다는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괴롭게 이제 일하게 되는 거. 그래서 그 구원이라는 게 다시 회복된 거 아닙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은 백성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회복 가운데 하나가 이 노동의 회복도 있어요. 이걸 마지못해서 그냥 어쩔 수 없이 한숨 쉬면서 짜증내고 이렇게 일하는 게 아니고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백성들은 이제는 그것을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일할 수 있는 그 비결이 있다 하는 거죠. 그거 이제 지금 말씀을 나누려고 하는 겁니다.

세상에서는 노동을 깊이 하지요. 뭐 노동 노예들이 하는 것이고 주인들은 양들 놀고 먹었습니다. 옛날 우리 사회도 뭐 산농 공상 그래 가지고 선비들은 일 안 해요. 아무리 양식이 떨어져도 절대 일하지 않습니다. 이런 그 아래 것들이 천한 것들이 이제 하는 것으로 여겨졌고 이런 인식들이 오늘 우리 가운데도 뭐 좀 남아 있어요. 그래서 승진하고 출세한다는 건 예, 손발이 편하자고 하는 거예요. 그냥 시키는 거 말로 시켜서 하지 자기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요. 자, 그런데 이게 이제 타락한 세상의 노동관이라면 원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건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 노동은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귀한 수단이에요.

자,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뭐 요한복음, 고린도전서 10장 31절 뭐 다 잘 알고 계시죠. “먹든지 마시든지 뭘 하든지 다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이게 인생의 존재 이유예요.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웨스트미스터 소요문답 1번. 인생의 제일 목적이 뭡니까? 이거예요.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서 먹고 마시는 건 이제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거지요. 먹든지 마시든지 그거 삶의 목적이죠. 자, 그다음에 무엇을 하든지. 자, 이게 뭘 하는 거? 이게 이제 노동이라는 거지요. 그러면 먹고 마시는 생존과 그리고 일하는 노동의 목적이 뭡니까?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네. 그러니까 이건 뭐 아이, 뭐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예, 뭐 먹구멍 포도 이런 자 먹고 사는 건 하나님 책임져 주신다고 말씀했어요. 그건 하나님께 주시는 거다. 그러면 그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으로 우리 하늘은 뭔데? 하나님 영광 위하여서 예, 하나님 영광 위하여서 살아가라는 겁니다.

우리는 창세기 2장 15절 말씀에서 자 보세요. 왜 자꾸 안 나오네. 우리로 하여금 그 경작하게 하시는 분이 누군가? 여호와 하나님이에요. 그러니까 에덴 동산에 아담과 하와에게 그 경작하도록 농사 짓고 그리고 그것을 잘 관리하도록 맡겨 주신 분이 하나님이에요. 그 일터에 아담과 하와를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거죠. 하나님이 보냈다. 예. 아담과 하와가 이게 하나님이 보내 주신 자리, 그리고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할 때에 아, 정말 즐겁게 심바람나게 일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이걸 맡겨 주셨어. 여러분 우리가 뭐 어떤 일을 맡았을 때에 너무나 하고 싶은 일, 그리고 정말 귀하고 소중한 일 하면 “야, 나에게 이런 일을 맡겨 주다니” 하면서 정말 기쁘고 감격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일을 맡겨 주셨다. 여기에 정말 아담과 하와가 그게 아니에요. 힘들고 그게 아니고 정말 즐겁게 그렇게 일했을 거라는 거죠.

우리는 하나님이 불러서 맡겨 주셨다. 이것을 어려운 이야기 한자로는 소명이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예. 하나님이 부르셨다. 소명. 우리 사회도 옛날 그 천직이라는 이야기, 하늘이 맡겨 준 일이라 천직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맡겨 주셨다. 그래서 우리 청년들이 이제 악기를 또 고민하고 또 이제 찾아가고 뭐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렇게 국리도 하는데, 어떤 직업을 어떤 일터를 어떤 일을 해야 되는가 한국 사람들의 이제 그 대부분 기준은 돈 많이 벌고 편한 거지 않나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네가 딱 10년만 고생해라. 그러면 60년은 편하게 살다. 그래서 뭐 10살부터 막 공부시키고 뭐 그 자가 있든 없든 “야, 의대를 가야 돈 많이 벌어. 법대를 가야 편하게 살아.” 뭐 이러면서 애들 막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보내 주신 데가 어딘지를 찾는 거. 하나님이 나를 어느 곳에 보내 주시는지, 어느 곳이 나를 필요로 하는지, 내가 어떤 일을 잘하고 있는지,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운 일인지 이걸 찾아서 돈이 되든 안 되든 그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 뭐 돈만 해 버는 직장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내가 있어야 되는 그 자리, 나를 필요하는 그 자리, 그 자리를 찾아가야 된다는 거지요. 하나님이 보내 주신 현장, 하나님이 맡겨 주신 직업 그걸 찾아야 되고요. 그리고 내가 그 자리에 있다면 이제는 그걸 뒤집어야지요. 이곳이 하나님 보냄받은 자리가 되어야 하고 그리고 이 일이 하나님 맡겨 주신 일이 되어야 하는 거, 그 소명을 이제는 증명하는 거지요.

우리의 직업에 있어 중요한 거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소명과 내가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겁니다. 그 이제 종교 개혁자들이 발견한 뭐 원래 있었는데 잊혀진 그리고 개혁자들이 발견해 낸 중요한 진리 가운데 하나가 직업 소명이에요. 예전에는 성직과 세속적인 일을 구분했습니다. 뭐 성직자라고 불렀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세속적인 사람들. 개혁자들이 찾아낸 건요. 성직과 세속이 없다는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불러서 보냈는데 그러면 거룩한 일이지. 루터가 그렇게 말하지요. 가정 주부는 주부로서, 공무원은 공무원으로서, 농부는 농부로서 그 삶에 충실하라. 이게 소명이다. 이게 성직이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뭐 직업의 귀천이 어디냐? 여러분? 직업의 귀천이 어디냐? 이거 기독교 직업 윤리에서 나온 이야기인데요. 사람들이 비웃어요. 직업의 귀천은 어디냐고? 여기 있지. 세상에 있지. 어디나 있지? 다 지금 귀천은 있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 주신 일이라면 그게 무엇인가에 예, 지구 한 구속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정돈하고 거래를 쓰는 정서불 할지라도 그걸 천하나 할 수 없는 거지요. 왜요? 하나님이 맡겨 주신 일이니까. 세상에 존경과 인정을 받는 무슨 사무소 할지라도 그게 전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욕망을 위한 수단이라면 그건 결코 성직이 될 수가 없는 거지요. 하나님이 보내 주신 일이라면 그게 모든 주의 일이고 그게 성직이에요.

그래서 교육자들은요. 예, 목사가 성직자가 아니고 많은 제사장을 이야기했습니다. 누구나 하나님 앞에 부름받은 제사장이고 예배자라는 거예요. 우리 삶의 터전, 여러분 하나님께 영광은 오늘이 시간 단지 일주일에 그 한 시간이 자리에 국한된 게 아니고요. 하나님이 영광 받으셔야 되는 자리는 이 자리에서만이 아니고 모든 삶의 영역에서 다 영광받으셔야 한다는 게 영역 주권. 아브라함 가이파가 이야기하는 그래서 하나님 여러분들 그 자리 보내시는 겁니다. 목사를 보내는 게 아니고 단 여러분을 구별해 부르시고 또 다시 그곳에 보내시는 까닭은 하나님은 그곳에서도 높임을 받으시고 예배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내가 노력하고 성공해서 그 자리 있는 거 아니에요. 내 보스가 나를 채용해서 그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까닭은 뭡니까? 하나님이 나를 그곳에 보내셨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그러면요. 이제 직업 의식과 윤리가 바뀌지요. 내가 누구에게 충성해야 하는지, 내가 누구 앞에서 일해야 되는지, 내 생사 여탈권이 보스에게 있고 그래서 보스 눈밖에 나면 나는 잘리고 그게 우리 살아가는 현실입니다. 그런데요.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으면 그건 하나님이 지키신 겁니다. 하나님이 이곳에 필요 없으 다른 곳에 보내실 거예요. 그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요. 골로서서 3장이 이렇게 말합니다. 자, 우리 22절 23절 한번 같이 읽어 봅시다. 자, 시작. “종들아 모든 일이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자, 결론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왜요? 예. 그 상을 주께 받을 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하나님께 하듯하라. 하나님께 하듯 하라는 겁니다.

우리 사랑하시는 하늘 가족 여러분, 하나님이 단지 뭐 단 한 시간에 하나님 그게 아니잖아요. 예배당에서 영광 돌려야 되지만 그러나 삶의 자리 일터에서도 그 치열한 서바이벌을 세상에서도 나를 보내신 분이 하나님 아, 그 소명을 믿으시고요. 그 보내신 하나님께 영광이 되시는 영광을 돌리는 귀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축원합니다.

자, 그러면은요. 그것뿐인가? 노동이라는 게 그냥 하나님 영광, 그거 그것뿐인가? 아니에요. 자, 나에게도 있어요. 노동은 하나님께 영광이고 나에게는 뭘까요? 예. 축복이에요. 나에게는 축복이에요. 노동은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이제 나오는데요.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이게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축복이에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정복하라. 이제 정복하라는 말이 있는데 정복한다는 것은 무력을 가지고서는 자기 마음대로 막 지배하는 거, 이런 생각을 하시기 쉬운데 그건 아니고요. 성경이 말하는 정복은 세상적인 정복이 아니잖아요. 땅을 잘 경작하고 개발해서 잘 관리하라. 그런 겁니다. 네가 주인이 아니잖아요. 우리가 주인이 아니잖아요. 하나님이 주인이고 하나님이 보냄받았으니 그걸 잘 경작하고 잘 개발해서 잘 관리하라. 노동입니다. 그 노동이 축복이에요. 그 노동을 복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을 내려 주시는데 어떻게 해요? “그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땅에 가시던 불과 엉건길를 위해서 쟤는 땅이 그 노력한 예, 땀을 온전히 돌려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수고한 대로 먹을 뿐 아니라 그 이상에 넘치도록 과분하게 내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하나님의 복이 그 가운데에 있을 거라는 거예요. 이사학 같은 경우는 뭐 아내 농사에 그 100배나 되는 축복을 받지 않았습니까? 과분하게 내려 주신다.

자, 그러면 그렇게 내려 주시는 까닭은 뭡니까? 하나님 왜 우리에게 넘치도록 복을 주실까요? 누리라고요. 그걸로 즐겁게 누리라고. 전도서 5장 19절이죠. 그건 하나님 선물이라고. 그래서 여러분에게 주신 복을 많고 누리시고요. 이렇게 연휴에도 좀 예배하시고 누리시고, 내 누릴 정도만 주시는 게 아니고 내가 이렇게 누릴 만큼만 주시는 게 아니고 더 주세요. 더 주세요. 왜 더 주실까? 흘러 넘치도록 과분하게 주시는 까닭은 내가 하나님 축복의 통로가 되라. 나를 통해서 주신 복을 좀 이웃들과 함께 나누라. 에베소서 4장 28절이 자기 손으로 수고하고 선한 일을 하는 까닭은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주기 위해서요. 뭐 벌어서 남주냐? 물론 우리 벌어서 남주는 사람들이에요. 그게 세상을 정복하는 거고 세상을 잘 다스리는 겁니다.

우리 하늘가 식구들이 노동의 두 가지 관점은 소명, 하나님의 부르심이고 또 하나는 축복이에요. 그래서 어디에 있든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선포하는 우리 귀한 하나님의 자녀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자, 이제 말씀 마무리하지요. 자, 왜 일하는가? 아, 뭐 1번도 있고 2번도 있고 3번도 있습니다. 1번에서 2번으로, 2번에서 3번으로 우리의 시야가 인식이 더 넓어졌으면 합니다. 단지 뭐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고 성공을 위해서도 아니라는 걸 넘어서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일하는 마지못해 일하는 형벌이 아니고 하나님의 소명이며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사람들 볼 때는 뭐 보잘것없는 자리일 수 있고 그리고 형편없는 일일 수도 있지만 이게 하나님이 보내 주신 자리라는 그 믿음이 있다면 그건 정말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나에게 맡겨 주신 복된 자리예요. 그래서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선포하는 하나님의 믿음의 자녀들 되시면 좋겠습니다.

자,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해야 되는지, 이걸 뭐 일일이 다 설명 못 하고요. 이제 예, 간단하게 그냥 제목만 읽다갑니다. 자, 첫 번째는 자, 같이 읽어 봅시다. 자, 시작. “사람에게 하듯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께 하듯 하라.” 어디에든지 간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하듯 그렇게 하십시오. 자, 둘째는 뭡니까? 예, 둘째 시작. “부지런하게 성실하게 충성스럽게 감당하라.” 하나님의 정직이에요. 내가 주인이니까 내 마음대로 노 아니에요. 하나님의 정직이에요. 하나님이 주인이세요. 그래서 나도 부지런하게 성실하게 충성스럽게 그렇게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합니다.

자, 세 번째는 뭡니까? “즐거움으로 심바람나게 감당하라.” 예. 이게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않은 자의 정말 결정적인 차이예요. 죄로 인한 타락이 우리 노동을 좀 수고하고 괴롭고 피하고 싶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백성들은요. 이게요.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고 나를 보내신 소명이 있는 성직, 거룩한 직분이에요. 이게 하나님의 일이란 말이지요. 그러면 우리는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니 그 감격, 그 감동으로 기쁘게 감당해야 한다는 겁니다. 노에 그런 말이 있대요. “전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가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우리의 일터가 하나님의 일인 것을 알고 즐겁게 기쁘게 심바람. 그래서 찬송가 458장 있죠?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게 됩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어요. 예수님은 즐겁게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그런 뭐 고통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그런데 그거 말고 그거 말고 그것만 있는 게 아니고 그거 말고 기쁨이 있는 거예요. 즐거움이 있는 거예요. 뭐 노동이라는 게 힘들고 땀나고 어렵고 맞죠. 그러나 그것만 있다면 그건 정말 무의미하고 비참한 일일 겁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나를 보내신 하나님 소명이 있고 하나님 영광을 드러낼 사명이 있고 또 그것을 통해 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감격으로 즐거움으로 기쁨으로 일에 참여하시고 또 그렇게 하나님을 드러내시고 영광을 선포하시는 우리 귀한 하나님의 자녀들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복합니다.

스터디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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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정리

  • 일의 목적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 노동은 타락 이후의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다.
  • 각자의 일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인식하고 그에 맞춰 살아가야 한다.
  •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나눔 질문

  1. 여러분은 왜 일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3. 여러분의 직업이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라고 느끼시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4. 일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과 고통은 어떤 것인가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번 주 적용

이번 주에는 일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세요.

기도 · 묵상

하나님, 저의 일터에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일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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