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스영락장로교회 The Korean Young Nak Church of Dallas

7.5.2026 [달라스 영락장로교회] 주일설교 | 한은진 목사 |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 앞에 | 누가복음 5장 17~26

한은진 목사 · 2026-07-06
설교큐티 — 주일 설교로 하는 6일 QT
본문
누가복음 5:17-26

17.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 각 촌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나온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18.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 놓고자 하였으나 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채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20.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설교자
한은진 목사
날짜
2026-07-06
설교 길이
40 분
설교 영상 재생
요약

오늘 본문은 중풍병자가 예수님 앞에 놓여지는 장면을 통해,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 이유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의 육체적 치유보다 먼저 그의 죄를 사하시는 말씀을 하시며,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십니다. 우리는 각자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야 하며, 서로를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우리의 삶과 사역을 주님께 맡기며, 참된 회복과 은혜를 경험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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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
설교 구조
예수님은 죄를 사하시는 권세가 있는 분이십니다.
1
예수님 앞에 놓여야 하는 사람
우리는 예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누가복음 5장 19절
2
죄의 문제를 다루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신다.
누가복음 5장 20절
3
예수님의 권세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
누가복음 5장 24절
◆
예수님 앞에 나아가 우리의 죄를 고백합시다.
전체 스크립트

누가복음 5장 17절부터 2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 "말과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매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무리 때문에 매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화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내리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내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모독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죄를 사하겠느냐?' 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내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게 이르노니 일어나 내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그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하니라. 아멘."

지난주 우리는 나병 환자를 고치신 예수님을 함께 나누어 보았습니다. 당시 나병 환자는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가까이 나아갈 수 없고 공동체의 삶과 예배의 자리에서도 멀어져 있는 사람이었죠.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그에게 나아가셔서 손을 내미시며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오늘 본문 역시 치유 사건으로, 예수님이 한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모두에 기록되어 있을 만큼 복음서 기자들이 중요하게 기억했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단순히 한 병자가 고침받는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본문은 먼저 한 중풍병자가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예수님 앞에 놓여지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사람을 보시고 사람들이 예상치 못하는 말씀을 먼저 던지십니다. "이 사람아 내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사람들은 아마 병고침을 예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먼저 죄 사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이 사건을 단순하게 누구를 고쳤다, 그런 치유의 사건을 넘어서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드러내는 데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 앞에 놓인 한 사람, 그리고 그의 죄를 사하여 주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더 돌이켜보는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1
예수님 앞에 놓여야 하는 사람
우리는 예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누가복음 5장 19절

예수님 앞에 놓여야 하는 사람

첫 번째로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 앞에 놓여야 하는 사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서 놓여야 하는 사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한 중풍병자의 모습에서 시작하죠. 사람들이 그를 침상에 매고 예수님께 나아오는데, 마가복음을 보시면 장정 네 명이 침상을 매고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깁니다. 그 문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예수님께 나아갈 길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지붕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지붕을 열고 그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달아내립니다. 19절이 이러한 과정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한번 보실까요? "무리 때문에 매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화를 벗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내리니." 여기서 우리는 이 사람들이 얼마나 절박했는지, 그리고 이 중풍병자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볼 수 있게 됩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의 집은 대체로 지붕이 평평한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올라갈 수 있었고, 지붕으로 올라가는 그 계단이 주로 집 바깥으로 나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계단을 올라가는 길, 침상 위에 누인 중풍병자를 매고 올라가는 것. 여러분, 그것이 쉬웠을까요? 한번 상상을 해 보십시오. 그 병자는 지금 자신의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죠. 계단을 올라갈 때 그 침상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떨어지겠죠. 그 사람은 자기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에요.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크게 위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내 사람이 함께 들었다고 해도 이 일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희 친가, 저희 부모님이 사시는 친가가 단층집인데 구조가 좀 비슷해요. 여기 본문에 나오는 구조와 2층이 구조가 이제 지붕처럼 평평한 공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곳에다가 비닐하우스를 만드셨습니다. 흙을 2층까지 올리셔서 깔고 이제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작은 농사를 지으시는데 포도나무와 여러 채소 화분들을 올려놓고 가꾸셨습니다. 그런데 그곳으로 올라가는 길도 외부로 나 있는 계단인데, 그 길이 좀 좁고 가팔라요. 그냥 올라갈 때도 힘듭니다. 그래서 제 아들들인 성수와 성결이 어렸을 때 대구에 내려가면 그들이 할아버지를 따라서 위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항상 하는 이야기가 가파르니깐 조심해라, 뛰지 마라, 내려올 때 발 조심해라, 항상 그렇게 이야기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길이 좁기 때문에 물건을 올릴 때 특히 화분 같은 것들을 올릴 때 너무 힘드니까 아버지가 아예 도로레를 만드셨습니다. 도로레를 만들어 가지고 줄을 달아내려서 물건을 올리셨던 그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때가 생각이 나더군요. 저는 가파른 계단 하나를 오르는 일, 자기 몸 하나를 지키고 가는 것도 힘들고 조심스러운데, 오늘 본문을 보시면 어떻습니까? 움직일 수 없는 그 병자를 침상째 매고 지붕으로 올라갑니다. 이렇게 기울어질 수 있는 그 상황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그런데 또 문제가 생깁니다. 올라가고 난 다음에 또 무엇을 해야 했습니까? 올라가면 됩니까? 어떻게 무엇을 했다고 합니까? 기화를 벗겼다고 했죠. 지붕을 벗겨내는 건데, 당시의 지붕은 갈대와 나무, 그리고 진흙과 점토로 이루어진 구조였어요. 뗄려면 뗄 수 있죠. 오늘처럼 시멘트가 아니기 때문에 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떼내는 과정이 쉬웠을까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밑에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 지붕에 구멍을 내기 위해서 뜯다가 그게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밑에 있는 사람 다치잖아요. 그러니 그 뜯어내는 과정도 쉽지 않고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그 집이 누구 집입니까? 그 사람들의 집도 아니에요. 다른 사람의 집입니다. 다른 사람의 집에 올라가서 지붕을 뜯고 그 위에 사람을 침상째 예수님 앞에 내려놓는다. 여러분, 상상이 가십니까? 결코 평범한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 일을 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 목적은 단 하나. 그 사람을 예수님 앞에 모셔가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와 있죠. "예수 앞에 달아내리니." 그들은 이렇게 믿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예수님은 하실 수 있다. 우리는 고칠 수 없지만 예수님은 고칠 수 있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지만 우리가 예수님 앞으로 이 사람을 데려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예수님이 해결해 주실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예수님 앞에 이 환자를 놓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 중풍병자처럼 예수님 앞에 놓여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내 힘으로 다 해결할 수 없고 내 능력으로 다 감당할 수 없기에 우리는 예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장면은 우리 공동체에도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에게도 연약한 지체를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께로 데려가고자 하는 그 사랑이 있는지, 수많은 불편과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그 영혼을 우리 주님 앞에 세우고자 하는 그 끈질긴 사랑이 우리에게 있는지, 더 나아가 아직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 그들을 향해서도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고자 하는 그 간절함이 우리에게 있는지 이 본문은 저와 여러분에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구원할 수도 없고 죄를 용서해 줄 수도 없습니다. 그 사람의 문제를 다 해결해 줄 수도 없고 그 아픔을 우리가 다 짊어질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감당할 수 있는 가장 귀한 섬김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을 우리 옆에 있는 지체를 힘들어하는 자들을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 앞으로 모셔오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 앞에 서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우리의 지체를 섬기는 우리 공동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아멘. 이러한 마음으로 우리 여름의 선교 사역도 감당하기를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오늘 예배를 마치면 우리 남민 선교를 위한 파송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름에 아까 광고 보신 것처럼 계속해서 선교 사역들이 있습니다. 내 간절히 바라는 바는 이 선교가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매 여름마다 돌아오는 그런 행사가 아니라 영혼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려가겠다는 마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가 기도하고 준비하는 그러한 모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일들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 기도해 주십시오. 다시 한번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러분, 그러한 일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아멘. 감사합니다.

한눈에 보기
mindmap
  root(("예수님은 죄를 사하시는 권세가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 앞에 놓여야 하는 사람")
      ("누가복음 5장 19절")
    ("죄의 문제를 다루시는 예수님")
      ("누가복음 5장 20절")
    ("예수님의 권세")
      ("누가복음 5장 24절")
2
죄의 문제를 다루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신다.
누가복음 5장 20절

죄의 문제를 다루시는 예수님

그런데 이제 사람들이 이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에 내려놓았을 때, 예수님은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말씀을 먼저 던지십니다. 그 말씀은 이것입니다. "이 사람아 내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이거예요. "내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사람들은 기대했죠. 예수님 앞에 가면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고쳐 주시겠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병보다 먼저 더 깊은 문제, 더 중요한 문제를 다루십니다. 그것은 바로 죄의 문제였습니다. 죄의 문제. 이것이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함께 나누실 두 번째 주제입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중풍병자는 자기 힘으로 예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자, 누군가가 데려오지 않으면 예수님 앞에 나올 수 없는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중풍병자는 우리 인간의 무력함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나병 환자가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고 사회의 가장 자리에 밀려난 그 사람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면, 그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 주었다면, 오늘 본문의 중풍병자는 스스로 일어날 수 없는 인간의 무력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고 자기 힘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인간의 영적인 무력함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가장 큰 비참함, 그것은 단지 육체적인 연약함, 고통, 아픔만이 아닙니다. 병드는 건 너무나 힘들고 참 비참한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 가운데 실패하는 것도 참 고통스럽습니다. 관계가 깨어지는 것도 너무 아프죠.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가장 큰 비참은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과 단절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죄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항상 가로막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힘과 우리의 공로와 우리의 노력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라는 사실입니다. 죄는 단지 우리가 저지르는 몇 가지 잘못된 행동, 법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그러한 행동을 말하지 않습니다. 죄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고자 하는 마음, 아니 하나님 없이 살고 있으면서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바로 그것이 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가장 시급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먼저 죄사함을 선언하시는 것이죠. "내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의도적으로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이 부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죄사함을 단순하게 가능성으로, 이렇게 이렇게 하면 나중에 죄사함을 받을 것이다라는 미래형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더 노력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 내가 먼저 자격을 갖추어야 하나님께 받아들여진다."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먼저 선포하시고 선언하십니다. 어떻게요? "내 죄사함을 받았다"라고 선포해 주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이 단번에 받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본문을 조금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여기서 죄사함을 받았다라고 말씀하고 있죠. 이 말씀은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곧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하나님에 의해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합니다. 죄사함은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선하게 산다고 나의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노력이나 공로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은혜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것이 죄사함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아멘. 또한 이 말씀은 완료 시제로 되어 있습니다. 그 말은 곧 언젠가 용서받을 수 있다가 아니라 지금 말씀하시는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의 죄가 용서받았다라고 선언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선언하시는 이 용서는 참되고 완전하고 완벽한 용서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죄사함 받은 사람은 더 이상 죄의 정지 아래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예수님 안에서 주어지는 이 죄사함은 우리를 정죄 아래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용서하시면 그 용서는 절대적이고 완전합니다. 죄사함은 단지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분이 죄인에서 의인으로 바뀌는 사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인생의 문제를 가지고 우리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 각자가 가진 인생의 문제를 가지고 이 자리에 나오신 줄 믿습니다. 몸의 연약함을 가지고 간절한 마음으로 나오신 분도 계시고, 자녀의 문제를 가지고 나오신 분들도 분명히 계실 것입니다. 관계의 아픔, 경제적인 어려움, 앞날에 대한 불안, 그리고 말 못할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말할 수 없는 그러한 각자의 마음의 짐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자리에 나오셨을 것입니다. 제가 매주 각 순에서 올라오는 순 보고서를 보거든요. 그 순 보고서를 보면서 기도하고 있는데, 우리 교회가 순이 40개가 있는 거 아십니까? 네, 순이 많습니다. 그 40개 순이니 그 각 순마다 얼마나 많은 삶의 고민과 아픔들이 있겠습니까? 볼 때마다 아, 참 이런 아픔들이 있구나, 이런 몰랐던 일들이 있구나 깨달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의 자비가 아니면 버틸 수 없는, 견딜 수 없는 그러한 수많은 상황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이 말씀처럼 주님 앞에 나와서, 아니 주님 앞에 나올 때마다 삶의 세파에 지친 영혼이 쉼을 얻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또한 순 안에서 서로의 삶을 나누시고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하시고, 아프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울어주고 서로 위로하면서 이 땅에서 참된 영적인 공동체를 이루어 가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바라기는 거기서 멈추지 마시고 더 깊은 은혜의 자리에까지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 내 상황을 바꾸어 주십시오" 해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주님, 나로 하여금 이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볼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보다, 상황보다 주님이 더 크게 보이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나를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사 나의 가장 깊은 영혼의 문제를 볼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내 죄를 용서하시고 나를 하나님 앞에 다시 설 수 있게끔 나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주님 앞에 나아가는 가운데 참된 회복의 은혜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순과 우리 모든 성도에게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3
예수님의 권세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
누가복음 5장 24절

예수님의 권세

그런데 바로 이 말씀 "내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말씀 때문에 이 본문을 보시면 긴장이 생깁니다. 예수님께서 "내 죄 사함을 받았다"라고 말씀하시자 그 자리에 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아니, 이 신성 모독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느냐?" 그들의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맞는 말이죠. 왜냐하면 죄를 사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본문은 조금 더 깊은 질문으로 저와 여러분들을 인도해 갑니다. 그것은 죄사함을 선포한 이 예수님은 과연 누구신가? 그분에게 정말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가? 그렇다면 그분 앞에 우리는 어떻게 서야 할 것인가? 이제 예수님은 세 번째 주제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치유, 곧 중풍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고쳐 주시는 그 치유를 통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이 죄를 사하는 권세를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생각을 아셨습니다. 그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다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23절에 이렇게 물으십니다. "내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여기서 예수님이 물으시는 것은 단순하게 실제로 어느 것이 더 쉽겠느냐 그것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둘 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사하는 것, 사람이 할 수 있습니까? 사람의 권한 밖의 일입니다. 그리고 중풍병자를 즉시 이렇게 세우는 것, 그것도 사람이 할 수 있습니까? 기적이죠. 사람의 능력 밖의 일입니다. 둘 다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관찰자의 입장에서,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떻습니까, 여러분? 무엇이 말하기가 더 쉽습니까? 한번 제가 여러분에게 여쭤 보겠습니다. 무엇이 더 쉽습니까? 죄사함을 받았다라고 말하는 것이 쉽습니까? 아니면 일어나 걸어라라고 말하는 것이 쉽습니까? 앞에 것은 1번, 뒤에 것은 2번입니다. 1번입니까, 2번입니까? 다시 대답해 주세요. 뭐가 더 쉽습니까? 왜 1번도 있고 2번도 있죠? 제가 예를 들어서 설명드려 보겠습니다. 그러면 뭐가 답인 줄 아실 겁니다. 자, 누가 중한 병에 걸린 사람을 제 앞에 데리고 왔어요. 그리고 이제 이렇게 부탁을 합니다. "이분 너무 아파요. 어떻게 좀 해 주세요." 그런데 제가 그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신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당신의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라고 말하는 것과 "지금 당장 일어나 걸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 여러분, 1번이 쉽습니까? 2번이 쉽습니까? 예, 이제 1번밖에 없죠. 왜 그렇습니까? 제가 이 사람한테 "일어나"라고 말하면 못 일어나면 거짓말하는 사람이 되잖아요. 목사가 거짓말하는 사람이 되면 됩니까? 안 되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말로 "그 죄사함을 받아라." 하는 게 더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로 이 지점에서 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이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너희는 내가 죄사함을 선언한 것 그것을 빈말로 여기느냐? 너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선언을 믿지 못하느냐? 그렇다면 내가 너희 눈앞에 확인할 수 있는 일을 행해 보여 주겠다. 내가 이 중풍병자를 일으켜 세움으로써 보이지 않는 죄사함의 권세가 나에게 있다는 것도 너희들에게 보여 주겠다." 그리고 난 다음에 바로 하신 말씀이 이것이죠.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내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세 가지를 명령하세요. 첫 번째는 일어나라. 두 번째는 내 침상을 들라. 세 번째는 집으로 가라. 이 명령은 단순한 말이 아니죠. 이 사람이 정말 일어나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의 몸이 완전히 고침받았다라는 그러한 증거가 됩니다. 그리고 그의 몸이 고침받았다면 조금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죄사함의 선언도 빈말입니까? 빈말이 아닙니까? 빈말이 아니게 되는 거죠. 그리고 실제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25절을 보겠습니다.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아멘이십니까? 이 사람은 일어났습니다. 침상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조금 전까지 사람들의 손에 들려왔던 그 사람이 이제는 자기 침상을 들고 걸어갑니다. 조금 전까지 스스로 움직일 수 없었던 그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 치유는 모든 사람이 본어졌습니다. 아무도 부인할 수가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사건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겠죠. 당연히 우리 눈앞에 있는 이 예수는 누구인가? 이 예수는 도대체 누구인가? 만일 죄를 사할 수 있는 분이 오직 하나님뿐이시라면 지금 눈앞에 있는 예수는 누구인가? 예수님은 정말 신성 모독자인가? 아니면 진짜로 하나님이 보내신 분인가? 예수님은 단지 병자를 고치는 능력 있는 선생 중에 한 명인가? 아니면 이 땅에서 병자를 고칠 뿐만 아니라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인가? 이 사건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로 하여금 선택지를 좁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거저 좋은 뛰어난 선생으로만 남겨둘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단지 병을 고치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그러한 좋은 분, 놀라운 분 정도로만 남겨둘 수 없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 너희로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신지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만이 가지신 그 죄를 사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심을 분명히 선포하셨습니다. 그래서 26절에서 이렇게 사람들이 반응합니다.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했습니까? 두려워했습니다. 왜 두려워했습니까? 단순히 병자가 고침 받았으면 놀라워할 뿐이잖아요. 그런데 그들이 두려워했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이 사건 속에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하신 일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누구신지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보고 있는 저와 여러분도 중립에 머물러 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거저 좋은 선생으로만 둘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단지 병을 고치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그 정도로만 볼 수 없습니다. 왜요? 예수님이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땅에 온 인자다. 그리고 나는 죄를 사는 권세가 있다. 내가 너희의 죄를 다 용서해 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래서 저와 여러분에게 도전합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 그리고 그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그분 앞에 믿음으로 응답해야 됩니다. 우리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형편만 바꾸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죄 문제를 다 내려놓고 "주님이 죄 때문에 내가 주님께 가까이 나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며 회복을 꿈꾸며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또한 그분 앞에 나오는 모든 자를 회복시키시고 구원으로 인도해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결론

결론으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우리에게 또한 보여 줍니다.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셨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참 목적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시며,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를 하나님께 회복시켜 주신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 앞으로 이 시간 나십시오. 우리가 가진 문제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죄,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약한 모든 것을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아와서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참된 용서와 회복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죄사함의 은혜 안에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귀한 성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인생의 어려움 가운데 가장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우리의 죄의 문제인데,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이 땅에 오신 것 너무 감사합니다. 이 시간 다시 말씀을 통하여서 결단하기를 원합니다. 선택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나의 구주로,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주님으로 믿고 나아가는 모든 자에게 주님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감사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자, 이 시간은 우리 남민 선교 파송식 시간입니다. 우리 다 앞으로 나와 주시겠습니까? 네. 7월 7일부터 8월 4일까지 매주 화요일 5주 동안 있을 남민 선교입니다. 이제 앞에 보시면 기도 제목이 나올 것인데요. 우리 다 함께 이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제가 세 가지 기도 제목을 여러분께 이제 알려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7월 7일부터 8월 4일까지 다섯 번 진행되는 남민 VBS를 통해서 남민과 도시 아이들에게 복음이 흘러가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아까 말씀 중에 우리가 나누었죠. 우리가 줄 수 있는 것, 가장 소중한 것은 복음입니다. 그 복음이 흘러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두 번째, 모든 팀원들이 사랑과 지혜로서 아이들을 섬길 수 있도록,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영혼을 품는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마지막 세 번째, 남민 아이들과 모든 팀원들의 안전을 지켜 주시도록, 이 모든 과정이 평안과 보호하심 가운데 이루어지도록 우리 다 같이 소리 높여서 통성으로 한번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우리가 주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부탁하신 것, 하나님 영혼을 부탁하셨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너희도 사랑하라라고 영혼을 부탁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 우리 남민들 아버지,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고국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가족을 떠난 자들입니다. 상처받고 고통받고 힘이 든 그들에게 아버지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밖에 없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예수의 은혜밖에 없습니다. 아버지, 우리 남민 선교 팀이 그 마음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사랑의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매 여름마다 돌아오는 그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이 시간 우리의 사랑의 전파를 통하여서 우리의 마음을 통하여서 우리의 복음 전파를 통하여서 아버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예수의 사랑이, 예수의 은혜가 심겨질 수 있도록 주님 그렇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함께 준비하며 나아가는 우리 팀에게 아버지 먼저 사랑의 마음을 주시옵소서. 먼저 예수님의 마음을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주시옵소서. 그 마음으로 나아갈 때에 놀라운 구원의 역사, 예수님을 만나는 역사 일어날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름에 수많은 우리의 선교 사역이 있는데 그중에 가장 먼저 우리 남민 선교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남민들 자신의 자이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 고국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가족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그 심령, 그 아픔 우리가 다 어떻게 해 줄 수 없지만 그러나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바로 예수님인 줄 믿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인 줄 믿습니다. 주여, 우리가 복음을 들고 나아갈 때에 그저 한 여름의 행사가 아니라 하나님, 우리의 마음속에 그 영혼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말 그 영혼들이 예수님을 만나도록, 예수님을 가슴에 품을 수 있도록 그러한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가 나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몸으로 나아가지 못한 우리 성도들이 간절함으로 기도할 수 있게 하여 주시고, 기도하며 나아갈 때에 우리의 발걸음이 결코 헛된 발걸음이 되지 않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옵소서. 감사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우리 다 같이 일어나셔서 파송의 노래 부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 우리 손을 내밀고 두 손을 내밀고 함께 찬양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 내 마른 땅에 샘물게 하시기, 길은 가난한 영혼, 목마른 영혼 당신을 통해 주사. 다시 한번 더 찬양하시겠습니다. 다시 한번 더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서 우리 함께 다시 한번 더 찬양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 내 마른 땅에 샘물게 하시기를, 가난한 영혼, 목마른 영혼 당신을 통해 주 사랑할 원하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위로 교통하신 은혜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기로 작정하는 주의 백성들에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전파하려는 우리 남민 선교팀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주의 영광 영원히 주정 영원님 할렐루야 할렐루 찬양 성자 성령의 아멘.

스터디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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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정리

  • 우리는 예수님 앞에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 예수님은 우리의 죄 문제를 먼저 다루신다.
  •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분이시다.
  • 우리는 예수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눔 질문

  1.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아갈 때 어떤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고 있나요?
  2.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먼저 죄사함을 선언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3. 우리 공동체에서 연약한 지체를 위해 어떤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4. 예수님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요?

이번 주 적용

이번 주에는 내 주변의 연약한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방법을 고민해보세요.

기도 · 묵상

예수님,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나를 회복시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변의 연약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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