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4장 31절부터 41절의 말씀을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공동체 주심을 믿고 제가 읽도록 하겠습니다. 갈릴리의 가보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심매 그들이 그 가르침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질러 이르되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오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다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함에 나가는도다 하더라.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데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정드니라. 해진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니라.
지난주 우리는 나사렛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이사야 61장 말씀을 읽으신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기억나시나요? 예수님이 그 말씀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 메시아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그 메시아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그리고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시는 분이시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약속이 자신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그 말씀이 이사야서의 예언의 말씀이 어떻게 실제로 이루어졌을까요? 오늘 본문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갈릴리 가보나움으로 위치를 옮기십니다. 나사렛에서 갈릴리 가보나움으로 가시는데, 거기서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전파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자를 고치시는데, 이 모든 일을 권위 있는 당신의 말씀으로 행하십니다. 오늘 아침 이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더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이 더 말씀을 가까이하고, 또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
첫 번째로,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세가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귀신이 떠나가고 병자가 고침받는 장면이 먼저 눈에 들어오죠. 그러나 누가는 그러한 기적적인 사건들보다 먼저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자를 고치시는 그 능력은 예수님의 권위 있는 능력 있는 말씀과 떨어질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먼저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그리고 그 권위 있는 말씀에 이어 그 말씀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으시고 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우리 32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라. 무엇이 권위가 있다고요? 예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말씀이 권위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누가는 지금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이 권위 있게 보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병자를 고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이 권위를 얻게 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기적의 사건들을 다루기 이전에 오히려 누가는 먼저 예수님이 하신 말씀 자체가 권위가 있고 능력이 있으며 권세가 있음을 먼저 분명하게 선포해 주고 있습니다. 같은 내용을 여러분 마가복음 1장 22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어요. 두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하더라. 이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누구와 비교하고 있습니까? 서기관들과 비교하고 있어요. 서기관들의 가르침은 권위가 없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권위가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여러분, 당시의 서기관들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을까요? 당시의 서기관들은 말씀을 너무나 잘 알고 연구하는 학자들이었습니다. 전통을 따라 말씀을 해석했고, 구약의 말씀에 대한 랍비의 해석을 발전시켜오던 사람들이었고, 더 나아가 그 규정들을 삶의 여러 영역에 세밀하게 적용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마태복음 23장을 보시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말하는 것, 그 가르치는 것 그것은 행하고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서기관들이 가르쳤던 모든 것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에요. 그들은 성경을 깊이 연구했고, 전통을 따라 해석하고 말씀에 잘 적용하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중요한 것은 그들의 가르침에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같은 권세와 권위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말씀의 권위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보는 이 말씀의 권위가 무엇일까요? 매일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말씀 앞에 엎드리는데, 이 말씀이 가지고 있는 권위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고, 하나님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이켜봄으로 회개하게 하고, 그에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이러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서기관들의 가르침에는 이러한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서기관들은 이러한 말씀의 본질에 치중하기보다는 본질보다는 세밀한 규정과 형식에 얽매여 있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