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스영락장로교회 The Korean Young Nak Church of Dallas

3.29.2026 [달라스 영락장로교회] 주일설교 | 명치호 목사 | 자녀 교육은 이렇게 | 누가복음 2장 40, 52절

명치호 목사 · 2026-04-25
본문
누가복음 2:40

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설교자
명치호 목사
날짜
2026-04-25
설교 길이
38 분
설교 영상 재생
요약

자녀 교육에 대한 오늘의 메시지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통해 자녀가 건강하게 자라도록 기도하고 말씀을 붙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자녀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받으며 자라야 하며,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정체성을 심어주고 신앙의 습관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를 통해 자녀가 예수님처럼 사랑할 줄 아는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임을 강조합니다.

성경 구절
설교 구조
자녀 교육은 말씀과 기도로 시작된다
1
첫째, 주신 말씀으로 기도해야 한다
말씀 붙들고 기도하자
누가복음 2장 40절
2
둘째, 자녀는 자라야 한다
자녀는 건강하게 자라야 한다
누가복음 2장 52절
우리 자녀들이 예수님처럼 자라도록 기도합시다.
전체 스크립트

오늘 말씀은 특별히 예수님의 어린이 시절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이 말씀을 보면, 아, 이렇게 자녀 교육을 하면 되겠구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제가 자녀 교육에 대한 설교를 많이 안 하는 것 같은데, 혹시라도 아, 이번이 교회구나, 자녀 교육에 대해서 듣는 기회가 바로 이 기회다라고 생각하셔서 여러분들 귀를 기울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자녀 교육은 이렇게"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을 전합니다.

1
첫째, 주신 말씀으로 기도해야 한다
말씀 붙들고 기도하자
누가복음 2장 40절

첫째, 주신 말씀으로 기도해야 한다

첫째로는 늘 주신 말씀 가지고 기도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은 당연하지만, 제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 40절과 52절을 다시 한번 더 보면, "아기가 잘하며 강화해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 위어 있더라." 52절로 딱 뛰어넘으면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라는 이 두 구절. 여러분, 이 두 구절은 저한테는 굉장히 특별한 구절입니다. 뭐냐면, 제가 이 두 구절은 목회하면서 20년째 써먹은 구절이에요. 20년째 써먹은 구절이라는 게 무슨 얘기냐면, 만약 우리 교회 아기가 태어나잖아요. 아기가 태어나면 저는 무조건 이 두 구절로 가서 말씀을 전하고 설교를 합니다. 제가 우리 성도들을 약간 무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아기라면 무조건 이 두 구절인데, 굉장히 많은 성도들이 몰라요. 두 번째 얘기나 이 말씀 전에도 첫째 때 이 말씀 주셨는지 몰라요. 그런데 다섯 번째 가서 아는 것 같아요. 우리 다섯 번째가 있잖아요. 한 세째 정도부터 캐치를 한 거예요. 그런데 이제 문제는 이제 셋째부터 캐치를 하면 시험에 들어 목사는 땅 구절은 없나? 쌍 구절 없나? 왜 똑같은 구절로 똑같은 설교를 할까라고 생각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 구절 택하기가 힘들어서요? 아니, 성경 구절은 세고 셌어요. 그런데 저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요. 목회 철학이라고 하면 철학인데 저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모든 성도들은 목표가 하나예요. 태어나서부터 우리 모든 성도들은 목표가 하나인데, 그건 뭐냐면 예수님을 닮아가는 거예요. "Be like Jesus Christ." 물론 이런 표현도 있죠. "Like MJ." MJ가 누군지 아세요? 예, 마이클 조던. 운동 좋아하시는 분들은 "Be like MJ," 마이클 조던 뭐 이런 표현도 있어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한 게 아니라 저는 모든 우리 성도들은 영락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닮아가야 돼요. 그러면 어릴 때부터 아기 때부터 예수님을 닮아가야 하기 때문에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합니다. 우리 애들이 예수님처럼 어릴 때부터 자라나라고 이 말씀을 전하는 거예요.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뭐냐면, 우리 성도들이 아기를 낳잖아요. 그런 많은 부모님들은 그 한 명의 아기를 낳으면서 굉장히 이렇게 패닉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조금만 아프잖아요. 그럼 바로 응급실 가려는 부모들도 있고요. 어떤 부모님은 열난다고 저를 불러요. "목사님, 우리 애가 열나요." 모든 아기는 열나면서 크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아기가 소중하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고 하는 부모들이 되게 많아요. 그런데 이 9절에 보면 시작이 그거거든요. "아이가 잘하며 강화해지고." 그렇죠? 52절에도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그렇죠? 키가 자라간다는 것은 건강하게 자란다는 거잖아요. 그렇죠? 강화해진다는 얘기는 처음의 얘기는 약해요. 나약해요. 모든 아기는 나약합니다. 그 하나님이 약속하신 건 뭐냐면 강화해진다는 거예요. 건강하게 잘할 것이라고 말씀을 통해서 약속을 하시거든요. 그러니까 그 성도는 태어났을 때 우리 아기가 어떤 말씀을 받았는지도 모를지 모르지만 저는 알아요. 저는 그냥 20년 동안 우리 애들이 똑같은 말씀을 제가 전했기 때문에 저는 알기 때문에 그분에게 그런 얘기해요. "기가 태어났을 때 제가 전한 말씀이 이겁니다." 그런데 그분은 모르죠. 모든 아기한테 똑같이 말씀 전한 줄 모르죠. 그까 그분은 "와, 목사님 기억력 좋네요." 좋죠. 왜냐, 태어날 때 이 말씀 가지고 전했기 때문에, 그리고 말씀을 믿고 전했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전하는 거예요. 왜냐, 말씀에 능력이 있기 때문에. 능력이 있으려면 뭘 저했는지 알아야 될 거 아니에요. 적어도 성도들은 그 부모는 기억을 못 할지 모르지만 목사는 알아야 되잖아요. 목사는 알아야 되잖아요. 그래서 제가 이 말씀을 전하는 이유가 똑같은 말씀을 전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제는 주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성도가 되게 되는 거잖아요. 주신 말씀이 뭔지를 기억을 하면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게 되는 거예요. 아기에게는 꼭 필요한 모든 것이 이 말씀 안에 다 있어요. 애가 잘하면 강화해지고. 그렇죠? 그런데 건강만 하면 안 되잖아요. 그다음 어떻게 돼요? 지혜가 있어야죠. "지혜가 충만하며." 예, 지혜가 자라며. 그렇죠? 아기에게 꼭 필요한 거잖아요. 그걸로 끝나서는 안 돼요. 믿지 않는 사람들은 건강하고 지혜로우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뭐냐면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해야 돼요. 우리 힘으로 안 돼요. 아무리 그 애가 똑똑하고 잘라도 결국에는 그 자녀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예요. 하나님의 은혜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것이 절대적으로 그 자녀에게 필요하다라는 거죠. 그렇죠?

그런데 제가 이 말씀을 이렇게 붙으면서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뭐냐면, 우리 성도들이 저한테 와서 그래요. "딴 건 모르겠는데요, 목사님 우리 애가 목사님처럼 되고 싶대요." 그래, 왜 저처럼 되고 싶어요? 저도 저처럼 되고 싶지 않은데. 예, 뭐에 의해서 저처럼 되고 싶냐 했더니 "목사님처럼 키웠으면 좋겠대요." 그래서 우리의 기도 제목이 "목사님처럼 키크게 하는 거" 그게 기도 제목. 그래서 적어도 자기를 위해서 주신 말씀 하나는 기억하고 있다라고 생각하게 되는데요. 너무너무 중요해요. 예. 상처받지 않고 애가 잘 자라는 것이 엄한 세상에서 그것도 되게 중요합니다. 예.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는 것도 중요한데 또 중요한 것이 뭐냐면 아기가 사랑을 배울 수 있어야 돼요. 사랑할 줄 알아야 돼요. 이러한 세상 속에서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할 줄 아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 예수님이었잖아요. 그렇죠? 52절에 보면 "하나님과 아이가 잘하며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너무너무 중요한 거예요. 사랑받고, 우리 예수님이 어떻게 그렇게 사랑할 줄 아는 자녀가 되었느냐? 그거는 사랑받고 자랐기 때문에 그래요. 예,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사랑할 줄 아는 자녀가 되는 거거든요. 예. 그때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이것도 빼먹으면 안 돼요. "하나님, 우리 애들 사랑 많이 받고 자하게 해 주세요." 주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언니, 누나들, 친구들, 주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으며 자하게 해 주시고, 그래서 예수님처럼 인류를 품을 수 있는 하나님 나라를 품을 수 있는 그렇게 사랑할 줄 아는, 사랑받고 자라는 그런 자녀로 잘 자라게 해 주세요. 여러분들이 구절만 가지고 기도해도 우리 자녀들은 잘 자라날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 않아요?

제가 진지하게 이런 설교를 10년 전 했으면 예, 더 좋았을까요? 예, 어떤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제 20년이 지나고 제가 드디어 왜 이것을, 왜 이 구절을 가지고 전하는지 여러분에게 드디어 이야기하네요. 그죠? 물론 여러분들 대단한 것도 아닌데라고 얘기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저 나름대로 이것을 붙들고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서 기도했고, 그리고 이제는 여러분들도 알았으니까 그렇게 기도해 주었으면 좋겠고, 그렇죠. 그리고 20년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계속해서 이 전통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라는 거죠. 이어지는 기도, 자녀를 향해서 이어지는 기도. 거기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다라는 거죠.

한눈에 보기
mindmap
  root(("자녀 교육은 말씀과 기도로 시작된다"))
    ("첫째, 주신 말씀으로 기도해야 한다")
      ("누가복음 2장 40절")
    ("둘째, 자녀는 자라야 한다")
      ("누가복음 2장 52절")
2
둘째, 자녀는 자라야 한다
자녀는 건강하게 자라야 한다
누가복음 2장 52절

둘째, 자녀는 자라야 한다

두 번째는 자녀 교육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 자라가야 하는 우리 자녀들이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돼요. 누가복음 2장 40절에 보면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그렇죠? 52절에도 보면 "예수는 지혜가 키가 자라가며"라고 얘기합니다. 자라나야 돼요. 그러니까 어린 아기이기 때문에 뭐 해야 돼요? 자라나야 해요. 여러분들이 이제 조직 신학이나 신학을 공부해 보신 분은 그런 단어를 알아요. "세 번째 아담, 첫째 아담, 두 번째 아담"이라는 그런 신학적인 용어를 여러분들이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예수님은 두 번째 아담이에요. 그리고 아담과 하와의 첫 아담은 그가 아담이에요. 참 말하기가 힘드네요. 누군지 아시겠죠? 그런데 이 차이점이 뭐예요? 첫 번째 아담과 두 번째 아담의 차이점이 뭘까요? 좀 신기하게 여겨야 돼요. 왜 신기하게 여겨야 되냐면 두 번째 아담이지 죄를 아닌가? 첫 번째 아담이 아, 예, 정신 차려서 여러분들 들주셔서 감사합니다. 첫 번째 아담이 지은 죄를 두 번째 아담이 용서하러 해결하러 오셨거든요. 그러면 똑같아야 되잖아요. 모든 상황이 똑같아야 돼. 그런데 상황이 똑같지 않아요. 왜냐면 첫 번째 아담은 어른으로 왔거든요. 하나님이 어른으로 만드셨어요. 어른으로 만드셨어요. 그런데 첫 번째 아담은 아기로 오셨거든요. 아기로.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상황이 똑같아야 되는 거 아니에요? 상황이 똑같아야 모든 인류제를 예, 사할 수 있는 그러한 자격이 주어지는 거 아니에요. 똑같아요. 그런데 왜 그러셨을까? 왜 그러셨을까? 그거는 한마디로 말하면 보너스예요. 우리 말로 하면 우리 인류를 위한 보너스다라고 볼 수 있어요. 왜냐면 세 번째 아담이라면 예수님께서 세 번째 아담이라면 예수님께서 어른으로 오셨으면 못 하시는 게 하나가 있어요. 그게 뭐냐면 우리의 어린 때, 우리가 베이비 때, 어린 나이 때 그걸 이해를 못 하세요, 우리 예수님께서. 예. 그러니까 그것마저도 우리를 이해하시고 그것마저도 사랑하시고 그것마저도 품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아기로 오신 거예요. 아기로 우리를 위해서 사랑이죠. 그죠? 우리를 위해서 그래서 아기로 왔기 때문에 그 모든 아기로서 당해야 되는 고통을 다 짊어지신 거예요. 세 번째 아담이라면 좋아요. 누리 거 다 누리고 커서 와 가지고 엄마, 엄마, 엄마가 아프지도 않고 그 나은 엄마도 진통도 없이 누릴 거 다 누리고 퍼스에요. 잘하고 있죠. 저 지금 퍼스에 대한 세컨 에다 잘하고 있죠. 예. 예. 누리고 누리고 온 거예요. 그런데 세 번째 아담은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모든 죄와 우리의 어릴 때의 모습까지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아기로 오신 거예요. 아기로 주님의 사랑이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실 수가 있었어요. 히브리서 4장 15절로 가면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리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더라." 그러니까 이 말씀을 하실 수 있는 이유가 뭐냐면 우리가 어릴 때 지은 죄마저도 우리 주님은 이해하신다는 거예요. 해결해 주신다는 거예요. 어릴 때마저도 우리의 연약함을, 어릴 때가 어떤 면에서는 어릴 때 제일 연약해요. 어릴 때 그렇지 않아요? 생각없이 지금도 많을 텐데, 어릴 때마저도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그것마저도 죄가 없으시다라는 거죠. 그렇죠? 아기가 태어날 때 그냥 그 모든 고통과 그냥 그 남편이 머리처를 지어 뜯으면서 이러면서 하는 모든 그런 그 과정 속에서 그 모든 것을 다 이해하시는 주님. 예. 바로 그것을 우리 예수님께서 얘기하세요. 그러면서 마태복음 18장 3절에 그런 말씀하시죠. "이르치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 예수님의 어린 시절이 없었으면 이 얘기를 할 수가 없죠. 자격이 없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 어린 시절이 있기 때문에 "야, 너는 어린 애처럼 돼야 천국에 들어가는 거야." 그럼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다라고 이야기하실 자격이 있는 거고, 그 시험을 이기셨기 때문에 그것이 자격이 있다라는 거예요. 그렇죠? 그 중요한 것은 어릴 때부터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이해하시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주님이 다 경험하셨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문제는 이것이 제대로 되려면 자라나야 돼요. 자라나야 돼요. 예. 그래서 아까도 피가 자라가며라고요. 이 자라가야 돼요. 잘 자라가야 돼요. 자라는 과정 속에서 죄가 있으면 안 돼요. 잘 자라나야 돼요. 그리고 그 자라나는 과정 속에서 제대로 피드가 돼야 돼요. 잘 자라날 수 있도록. 재없이 자라 수 있도록. 예. 모든 것이 이렇게 잘 먹고 영양분이 영적인 영양분도 제대로 피드가 돼야 이게 잘 자라는 거거든요. 그렇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의 자녀를 키울 때 우리가 갖고 있는 그 정답이에요. 무슨 얘기냐면, 우리가 자녀들을 키울 때 우리는 우리 자녀들이 잘 자라날 수 있는 그것을 우리가 부모로서 해 줘야 되는 거예요. 잘 자라날 수 있도록 고민해야 돼요. 어떻게 하면 우리 자녀들이 잘 자라날 수 있을까? 잘 자라날 수 있을까? 그렇죠.

저는 우리 자녀들에게 잘 자라기 위해서는 꼭 해 줘야 되는 얘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뭐냐면, 우리 몸이 하나님의 전이다라는 것을 가르쳐야 돼요. 하나님의 전이다. 고린도서 3장 1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는 계신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렇죠. 자라는 자녀에게 "너는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성전으로 잘 자라나야 돼"라는 것을 분명하게 아이덴티티를 심어 주고 성전서 잘 자라날 수 있도록 피드를 해야 되는 거죠. 그렇죠? 그것이 우리 할 일이에요. 그럼 우리 자녀들은 잘 자라면서 "아, 내가 하나님의 성전이구나." 그러면 우리의 삶이 달라지겠죠. 어떻게 해요? 거룩함을 이루기 위해서 살겠죠. 그렇잖아요. 우리 애들이 아무리 못도 교회 가면 좀 이렇게 가다듬어요. 가다듬어요. 그런데 너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우리의 삶 전체를 가다듬겠죠. 그렇죠? 예.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의 성전이야. 네,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야. 이렇게 우리 자녀들을 우리가 가르칠 때 우리 자녀들은 변화되기 시작하고 그 모습으로 하나님 성전답게 살아가는 거예요. 그러면서 고린도서 6장 20절에 나온 말씀처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값으로 산 사람이에요. 예. 내 생명이 내게 아니에요. 하나님 것이에요. 하나님이 십자가의 피로 사신 것이 바로 나예요. 나는 지불된 사람이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 지불된 사람이 우리 몸이고 그때 우리가 할 일이 뭐냐면 "너 나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몸이라는 것은 내 삶 전체를 이야기하는 거죠. 내 삶 전체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것, 바로 그것을 우리 자녀들에게 심겨 줘야 되는 거예요. 내가 누구냐에 대한 아이덴티티를 심겨 줘야 되는 거예요. "너는 하나님의 전이야. 성령이 거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전이야." 예. 그리고 "너는 값으로 사는 사람이야. 늦게 아니야. 늦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돼."라고 하면서 그 자녀에게 이것을 정확하게 심겨 줘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우리 자녀에게 심겨 줘야 된다. 또 다른 게 뭐냐면 습관이라는 걸 심겨 줘야 돼요. 습관. 여러분들, 우리의 인생은요. 습관이 우리의 일생을 지배해요. 여러분들이 알거나 모르거나 여러분에게 어떤 습관이 있잖아요. 그거 여러분들 계속해서 갖고 있어요. 이 습관이라는 건 무서워요. 그래서 제대로 된 신앙의 습관을 심겨 줘야 돼요. 어릴 때부터 기도하는 습관. 예. 시간을 정해 놓고 말씀을 읽는 습관. 예배드리는 습관, 교회 참석하는 습관. 예. 이것이 누가 얘기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자녀들에게 배어 있어야 돼요. 우리 부모들이 처음에 얘기를 놓으면 이건 잘하는 것 같아요. 날마다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니 은혜로우신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노래가 끝나면 식기도 끝이에요. 그런데 그 습관이 끝이에요. 더 이상 부를 노래가 없어. 우리 자녀들이 이제 식기도 밥 먹을 때 그다음 뭐 해야 되는지 몰라요. 또 다른 습관을 만드세요. 그거밖에 없어요. 예. 식기도만 하면 끝이에요. 예. 어떤 우리 자녀들에게 내가 무엇을 심겨 주고 있는지 어떤 습관을 심겨 주고 있는지 그것을 생각해 보시고 제대로 된 습관을 심겨 줘야 돼요. 신앙의 습관을. 예. 어릴 때 깐나내기 때뿐만 아니라요. 커서도 제대로 된 습관을 심겨 줘야 돼요. 그런데 우리 많은 어른들이 우리 자녀들에게 식관을 심겨 줄 때 실패해요. 넘어져요. 왜냐면 우리 자녀들이 똑똑하거든요. 똑똑하거든요. 그런데 그걸 몰라. 엄마, 엄마, 아빠보다도 똑똑해요. 자녀들이 똑똑하다는 얘기는 뭐냐면 어떤 그 습관을 심겨 주기 위해서는 "rightning"이 필요한 거예요. 애가 "아, 이거는 정말 하나님의 뜻이구나"라고 인식이 돼야 돼. 인식이 돼야 되는데 그 인식이 되지 않고 부모의 고집이 되어질 때가 많아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일했으니까 너도 일해야 돼." 그런 게 어디에요? 그렇지 않아요? 예. 우리 자녀들 되게 똑똑해요. 하나님의 뜻인 것을 정확히 알면 그 자녀들은 그 습관에 가게 돼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보기에 마음에 안 들잖아요. 그럼 여러분들 성경을 이용하거나 그러면 거기서부터 틀어질 수가 있어요. 저 여러분들이 다 아시는 것처럼 저는 다리를 엄청 떱니다. 엄청 떨어요. 시험 드는 사람도 있는 줄 알아요. 제 다리 떠는 것 때문에. 그래서 밝히고 살아요. 저 다리 뜹니다. 저 다리 뜹니다. 그런데 왜 제가 다리를 떠는 줄 아세요? 이렇게 얘기하면 우리 엄마를 욕하는 것처럼 보여서 저 진짜 나쁜 자식이구나 할지 모르지만, 우리 엄마의 라직이 틀렸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 엄마의 라직이 뭐냐면 제가 다리 떨면 제 엉덩이를 세게 때려요. 그러니까 이게 한두 번 맞아본 엉덩이가 아니에요. 진짜 아프게 맞아요. 예. 그리고 맞으면서도 "아, 내가 다리 떨었나 보다." 알아요. 그런데 때릴 때마다 이렇게 얘기하세요. "복당하게 왜 다리 떨어?" 이렇게 얘기하세요. 다리 떨면 복 나갑니까? 어떠세요? 다리 떨면 복 나가요? 예. 아니, 성경에 없어요. 그런 말. 성경이 없어요. 그거는 미신적인 말이에요. 미신적인 말이에요. 목사님, 사모님이 세상에 떠도는 미신적인 말을 가지고 어떤 것을 못 하게 하는 것은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거 자체부터가 벌써부터 그 자녀에게는 먹히질 않아요. 생각해 보세요. 목사가 우리 엄마 그러는데 다리 떨면 복 나간다고 좀 달리 안 떨어요. 그러면 저 이상한 목사예요. 성경에 없는 걸 그것을 낳지 그어 가지고 그래서 다리를 안 뜬다. 그거는 진리랑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는 게 제 삶이 되는 거예요. 한마디로 이상한 목사가 되는 거예요. 항상 우리 믿는 사람은요. 어떤 위증이 되고 어떤 얘기가 될 때 성경적이어야 돼요. 성경이 진리가 베이스가 돼야 돼요. 진리로 무슨 얘기가 돼야 돼요? 진리로 충고가 돼야 되고 진리로 일이 되어질 때 거기에 해결점을 보는 거예요. 그 습관을들을 때 우리 자녀들이 어릴 때라도 어리다고 무시하지 마시고 우리 중고등부 자녀들 성경에 대해서 정말 많이 알아요. 예. 그럼 뭐든지 성경적이어야 돼요. 여러분의 경험을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성경적이어야 돼요. 예.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분명히 얘기할 수 있어야 돼요. 여러분의 고집이 돼서는 안 돼요. 여러분이 누구로부터 들어서 한 말이 돼서는 안 된다는 얘기예요. 예. 항상 성경적으로 이것이 전해질 때 변화가 일어나고 그것이 제대로 된 습관이 되어질 수 있다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돼요. 은근히 우리 삶 속에 그런 게 많습니다. 많아요.

그걸 우리는 뭐라고 또 연결시킬 수 있냐면 이게 지혜냐 지식이냐 이걸로도 연관이 시킬 수가 있어요. 예수님이 어릴 때는 40절에 보면요. 40절에 보면 "아이가 잘하며 강화해지고 지혜가 충만했다"라고 얘기해요. 지혜가 충만했다. 그리고 "지혜와 키가 자라갔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들, 예수님에게는 지식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요. 지혜라는 단어를 씁니다. 지혜라는 단어를 써요. 이게 굉장히 중요해요. 우리 믿는 사람들은요. 지혜가 자라가야 되지 지식이 자라가서는 안 돼요. 이게 뭐가 다르냐? 지식이 자라고 하면 여러분들은 남을 판단하고 정지하는 데 쓰는 게 지식입니다. 지식은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지식은 사람을 망가뜨릴 수 있어요. 왜냐면 이렇게 정해는 게 좀 웃길지 모르지만 지혜 안에는 사랑이 포함되어져 있어요. 지식에는 사랑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요.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이 하는 것은 지식이에요. 그들은 수많은 성경적인 지식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지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공격해요. 이게 바리새인이잖아요. 예. 그 지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 정지하고 "너 이거 잘못됐어." 오케이. 잘못될 수 있어요. 그러나 거기에는 사랑이 없으면 사랑이 없다면 그거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될 수 있다라는 거예요. 지혜로 해석할 수 있어야 돼요. 지혜로 해석할 수 있어야 돼요.

제가 그 누구예요? 세계에서 가장 부자였던 사람의 얘기를 한번 할게요. 그런데 여러분들 또 그럴 거예요. 아, 저 목사 또 안 하더니 헌금 얘기하네라고 얘기할지 모르지만, 헌금 얘기예요. 예. 그런데 락펠로 같은 경우에 보면 세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됐어요. 가장 큰 부자가 됐어요. 그런데 그 이유가 뭐냐면 엄마가 그 락펠로한테 지식을 전달한 거예요. 지식을. 그 지식이 뭐냐면 어릴 때부터 "넌 다른 걸 몰라도 아무리 가난해도 너는 11조를 할 수 있어야 돼"라고 얘기를 한 거예요. 여러분들, 락펠로가 세계에서 이제껏 역사 중에 락펠로만큼 큰 부자가 없었어요. 큰 부자가 없었어요. 그런데 락펠로는 그 어머니의 지식을 듣고 지식을 듣고 가난한 농부예요. 돈도 없어요. 받는 월급이 너무너무 작아요. 예. 어떤 면에서는 이거 헌금하면 먹고 살기도 힘든 그러한 시츄에이션에 락펠로는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락펠로는 빠짐없이 하나님 앞에 11조를 드렸어요. 11조를 하나님 앞에 드렸어요. 예. 그런데 이게 지혜와 지식과 무슨 상관이냐? 락펠로는 그 지식을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엑서사이즈 한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헌금을 받고 "아, 그니까 엄마로부터 용돈을 받고 일을 하면서 락펠로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난 이 정도는 해야지. 그래도 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내가 우리 하나님 앞에 이 정도도 못 하면 안 되지"라고 이 물질에 대한 해석을 락펠로는 한 거예요. 이게 지혜예요. 이게 지혜예요. 그런데 이걸 지식으로 받는 사람은 뭐냐면 "내가 이거 안 하면 하나님이 나를 치실지 몰라. 내가 이거 안 하면 큰일 날지 몰라." 예. 싫지만 뭐 하나님이 어떻게 해 주시는지 한번 보지 뭐. 이게 지혜로 이끄는 게 아니라 지식으로 끝나는 사람의 모습인 거예요. 여러분들, 차이점이 보이세요? 차이점이 보이세요? 예. 어떤 지식을 받았을 때 어떤 엄마로부터 어릴 때부터 지식을 받았을 때 락펠로는 지혜로 해석을 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그 지혜가 뭐냐면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는데 내가 이 정도는 해야지. 예. 그런데 반대로 지식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이거 안 하면 끝날지 몰라." 예. 있는 사업도 하나님은 망하게 하실지도 몰라. 이게 지식으로 해석하는 사람의 특징인 거죠. 그렇지만 그 차이점은 엄청난 거예요. 결과는 엄청난 거다라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이거에 그 디퍼런스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식을 받았을 때, 예, 그것이 사랑을 품은 지혜가 되는지 아니면 지식을 받았을 때 그냥 내 스스로도 그 지식 앞에서 넘어지고 나를 정죄하고 예, 그러면서 지식으로 "어, 받아들이고" 결국에는 그 지식 때문에 어떤 면에서 내가 망할 수도 있어요. 망할 수 있어요. 여러분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셔야 돼요. 그래서 예수님의 결과가 뭐였어요? 예수님의 결과가 예, 예수님의 결과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그게 답인 거예요.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주신 지혜가 사랑으로 해석을 해서 삶에 적용하니까 예, 모든 사람에게 사랑스러워 가실 수 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라는 것이죠. 그렇죠? 저는 여러분들이 바로 그 해석을 할 수 있는 정말 참 지혜로운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지혜로운 사람.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여러분들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그런 자녀로 아름답게 키워가는 그런 여러분들이 되어 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오늘 안 하던 짓을 좀 할게요. 오늘 숨모임이 없잖아요. 그렇죠? 다 안 해도 돼요. 쓰리 포인트까지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예. 딱 투 포인트로 마치고 예. 문제 있나요? 오늘 혹시 일찍 끝나면? 어, 문제 없죠? 네. 예. 우리 찬양을 좀 더 하셔도 돼요. 찬양을 좀 더 하셔도 되는데 우리 기도하고 예.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기도의 제목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우리 자녀를 키울 때 우리 모두가 예수님 닮은 자녀로 잘 자라게 하여 주시옵소서. 건강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자녀들 지혜가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충만하게 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그것뿐만 아니라 우리로 자라나게 하여 주심에 감사합니다. 주 안에서 주님께 주시는 좋은 것을 마음껏 먹고 마음껏 누리며 잘 자라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혜가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혜가 딸리는 일이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그리고 우리 자녀들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잊지 않고 거룩하게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정말 그 하나님께서 주신 지식이 지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혜가 되어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라나는 우리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정말 선물로 주신 우리 자녀들 우리가 잘 키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게으르지 않게 하시고 선물로 주신 우리 자녀들 정말 주님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칭찬받으며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오늘 말씀에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스터디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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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정리

  • 자녀 교육은 주신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 자녀는 건강하게 자라야 하며, 지혜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 자녀에게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심어줘야 한다.
  • 신앙의 습관을 어릴 때부터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나눔 질문

  1. 우리가 자녀를 위해 기도할 때 어떤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수 있을까요?
  2. 자녀가 자라면서 필요한 지혜와 사랑은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요?
  3.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자녀에게 어떻게 심어줄 수 있을까요?
  4. 신앙의 습관을 자녀에게 어떻게 자연스럽게 심어줄 수 있을까요?

이번 주 적용

이번 주에는 자녀를 위해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잘 자라도록 돕는 방법을 고민해보세요.

기도 · 묵상

자녀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으며 자라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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