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스영락장로교회 The Korean Young Nak Church of Dallas

3.15.2026 [달라스 영락장로교회] 주일설교 | 명치호 목사 | 이렇게 기다려야 합니다. | 누가복음 2장 25절

명치호 목사 · 2026-04-25
본문
욥기 23:10

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설교자
명치호 목사
날짜
2026-04-25
설교 길이
41 분
설교 영상 재생
요약

오늘 설교에서는 시몬과 안나라는 두 인물이 등장하여 메시아를 기다리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400년 동안 기다림 속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를 믿으며 기다렸습니다. 기다림은 쉽지 않지만, 신앙의 본질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준비시키기 위한 과정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결국, 우리가 무엇을 기다리는지, 메시아를 원하는지 아니면 세상의 것들을 원하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 구절
설교 구조
하나님을 기다리는 신앙의 중요성
1
메시아를 기다리는 삶
메시아를 기다리는 두 사람의 삶
누가복음 2장 25절
2
기다림의 어려움
기다림은 쉽지 않은 과정이다
누가복음 2장 26절
3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기
하나님은 위로의 답을 주신다
욥기 23장 10절
4
성령의 지시를 받기
성령의 인도하심이 필요하다
누가복음 2장 26절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성령의 지시를 통해 잘 기다려야 합니다.
전체 스크립트

오늘 저희가 읽은 말씀에 보면, 굉장히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등장합니다. 한 사람의 이름은 시몬이고, 한 사람은 안나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삶이 완전히 달라요. 둘 다 신앙이 좋은 건 맞아요. 그런데 시몬은 굉장히 잘 사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힘도 있는 사람이고, 남자고, 그러니까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그런데 안나라는 여인은 과부예요. 아주 일찍 과부가 됐어요. 그래서 과부로 84년을 삽니다. 그리고 뭐 인정받지 못하는 어떤 비천한 가문의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굉장히 사는 게 먹고 살기가 힘들었던 사람이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나이를 계산해 보면 100살이 넘어요. 그렇게까지 살았어요. 그런데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 뭐냐면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여러분들 생각에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거면 당연한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메시아를 기다리는 게 그 당시의 상황으로는 쉽지가 않아요. 왜냐하면 말라기가 마지막 선지서잖아요. 그리고 말라기서 이후에 400년 동안 사람들은 메시아를 기다렸어요. 400년 동안 기다린 메시아가 안 왔거든요. 그런데 왜 자기들한테 메시아가 오겠어요? 이렇게 생각하기 쉽죠. 400년 동안 안 왔는데 내가 기다린다고 될까? 예. 이런 생각, 400년 동안 기다렸기 때문에 이게 나한테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그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었어요. 그 기다리는 게 쉽지 않은 거예요.

거기다가 나이가 자꾸 먹어가요. 안 그래도 나이가 많은데 나이가 더 먹어가니까 이건 더 불가능하게 보이는 거야. 내가 메시아를 만날 수 있을까? 그렇잖아요. 거기다가 사회적인, 문화적인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런 게 있었어요. 나는 메시아를 지금 기다리고 있어라고 얘기하면 저 사람도 이상한 사람 아니야? 라고 생각을 해요. 특별히 시몬 같은 경우에는 그 주위가 다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메시아가 오면 자기의 삶이 어떻게 될지 몰라요. 그러니까 실제로 메시아가 왔을 때 그들이 예수님을 배격했잖아요. 왜냐하면 잘 먹고 잘 사는데 괜히 와서 삶을 방해하는 메시아를 원하지 않는 그런 분위기예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메시아를 기다린다 했을 때 사람들로부터도 이렇게 인정을 못 받고, 안나 같은 경우에도 보면 그렇게 찢어지게 하는데 난 교회에서만 있어. 좀 나가서 어디 가서 일도 좀 하고 먹고 사는 거 좀 챙기고 이러면 될 텐데, 메시아 기다린다고 교회만 있는 그런 사람들이 저 여자 광신자 아니야? 라고 보기도 쉬운 그렇지 않아요? 뭐 요즘에도 그럴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메시아를 기다리는 게 이게 쉬운 게 아니에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그런 사람들. 예. 참 기다린다는 거, 기다린다는 건 쉽지가 않아요.

특히 안나 같은 경우에 보면 100살이 만약에 진짜로 넘었다면 수학적인 계산이 이제 과부가 된 지 몇 년 해 가지고 몇 살에 결혼해서 84년이다 이렇게 하면 80몇 살도 나올 수도 있고, 100몇 살도 나올 수가 있어요. 그런데 스틸 와 교회에서 메시아를 기다려.

저는요, 이렇게 아프고 나서 우리 교회가 이렇게 큰지 몰랐어요. 우리 교회 건물이 이렇게 큰지 몰랐어요. 제가 이제 일부 예배 설교 끝나면 제 방에 가서 쉬고 있다가 이제 여기까지 오려면 네 번을 쉬어야 돼요. 그래서 제가 가는 자리마다 의자들이 있거든요. 오늘 숨이 차니까 네 번을 쉬어야 돼요. 그냥 그러면서 연세 드신 분들이 교회 와서 예배 드린다는 게, 그리고 특히 예배 끝나고 저기 먼 식당까지 가시잖아요. 예. 배려해 주셔야 돼요. 진짜로. 진짜로 배려해 주셔야 돼. 저는 못 가요. 거기까지 힘들어서 못 가거든요. 예. 나이로 보면 많지도 않은 사람인데. 예. 그러면서 그걸 기다린다는 것, 기다림. 예. 하나님이 나의 삶 속에 어떻게 역사하실까? 실제로 이루어질까라는 어떤 그 기다림. 그러고 보니까 신앙의 최고봉은 기다리는 것 같아요. 여러분 신앙 생활이라는 게 기다리는 거예요. 잘 기다려야 돼요. 잘 기다려야 돼.

근데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바빠도 10개월 채워야 아기가 나와야 아기가 건강하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그 모든 이게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아기 나는 것도 생명이 태어나는 것도 그렇고 농사도 마찬가지예요. 농사도 바쁘다고 그래서 미리 걷어버리면 못 먹잖아요. 기다려야 돼요. 기다려야 돼. 건축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바빠도 시멘트 굳고 뭐 시공 날짜 아무리 그래도 이거 안 기다리면 부실공사가 돼버려요. 나중에 무너져요.

여러분들은 잘 기다리고 계세요. 기다려야 될 거. 여러분들 뭐가 급한 게 있으세요? 아니면 지금 기다리고 있는 게 뭐가 있으십니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떤 청년은 결혼이 급하세요? 그것도 잘 기다려야 돼요. 예. 어떤 분은 다이어트가 급하세요? 빨리 다이어트 해 가지고 좀 잘 만나야 돼요. 다 스텝이 있어요. 스텝이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예요. 기도 응답이 급하십니까? 어떤 분들은 교회 부흥이 급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내 집 장만이 급할 수도 있고. 근데 우리 신앙인은요. 중요한 게 뭐냐면 잘 기다려야 돼요. 잘 기다려야 돼요. 이 밥도 안 기다리면 설설은 설잖아요. 예.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근데 세상을 찾고 기다리는 걸 방해하는 것 같아. 옛날에는 고속이라고 그러는데 이제는 초고속으로 그냥 아니면 우리가 시대를 못 따라잡는 것처럼 자꾸 덩달아 붙이면서 신앙생활도. 그런데 여러분 그거 아세요? 신앙생활도 잘 기다리고 못 기다리는 걸로 결정이 나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왜 섭섭한 줄 아세요? 여러분들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 앞에 왜 섭섭해요? 아니, 하나님이 빨리 안 해 주시니까 섭섭한 거예요. 우리가 조급하기 때문에 섭섭한 거예요. 나는 급해 죽겠는데 우리 하나님은 안 급한 것처럼 하시니까. 예.

근데 가만 보면, 가만 보면 나만 기다리는 것 같죠? 하나님한테. 아니에요. 하나님이 더 기다리세요. 하나님이 더 기다리세요.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 같은 경우에 보면 자기들은 레디가 된 줄 알아요. 그래서 빨리 광야에서 가나안 땅을 왜 왜 안 들여다보는 왜 안 들어주느냐고 자꾸 얘기하잖아요. 근데 하나님은 40년을 기다린 거거든요. 누굴 기다린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이 변화되길 기다린 거예요. 왜냐하면 이 백성들 빨리 가나안 땅에 집어넣으면 전쟁에서 다 멸망할까 봐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신 거예요. 그 40년을. 예. 아브라함 같은 경우에는 그 아들을 죽이기까지 25년을 기다리셨죠. 왜요? 아브라함이 준비가 안 된 거예요. 아브라함은 레디. 그죠? 준비가 안 됐기 때문에 기다린 거예요. 야곱도 21년 늘 기다린 거고, 모세 같은 경우에 80년에 기다리시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잘 기다렸다고 생각을 하지만 하나님 타임테이블에는 나 아직 아닌가요? 준비가 아직 안 된 거예요. 예. 그래서 잘 기다려야만 우리가 신앙생활도 잘 되고 변화되는 거거든요.

솔직히 사람은요. 명 몽둥이로 변화되는 거 아니에요. 잔소리로 변화되는 거 아니에요. 특히 우리 엄마들, 아내들 잔소리로 변화되는 거 아니에요. 예. 시간 속에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깨뜨리시고 변화시켜 주셔야만 하는데, 하나님이 기다린 시간이 더 길다라는 거죠.

그렇다면 여러분들 우리가 하나님이 그렇게 기다려 주시는데 우리는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어떻게 기다리는 게 답일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보려면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이렇게 기다려야 합니다'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기다려야 돼요. 첫째는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를 기다려야 돼요. 이걸 좀 더 세게 얘기하면, 하나님은 분명히 위로의 답을 주십니다.라는 믿음으로 갖고 기도하셔야 돼요. 예. 저는 우리 성도들에게 이 믿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예. 하나님께서 주신 기다리라고 하는 것 속에서는 기다리면 위로해 주세요. 분명히 위로해 주십니다. 그 믿음으로 기다려야 돼요.

그 카네기 멜론, 그 카넥이라는 데일 카네이라는 재벌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은 아주 그냥 그림이 낡아 빠진 그림이 색상에 그 사람 뒤에 있대요. 그 그림이 뭐냐면, 말라 있는 강에 배가 하나가 딱 있는 그림이에요. 말라 있는 강에 배가 하나 딱 있는, 되게 슬픈 그림이죠. 그죠? 그런데 그림 밑에 뭐라고 써 있는 걸 보면 이해가 돼요. 그림 밑에 뭐라고 써 있냐면, 반드시 밀의 때가 온다라는 거예요. 이 사람은 사업을 하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기다릴 때마다 이 사람에게는 확신이 있었어요. 된다라는 거죠. 된다. 그 그림을 생각하면서 여러분 우리는 많이 기다려요. 기다린다는 얘기는 지금 현재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일 수 있어요. 그렇죠?

여러분 기다리는 것 왜 기다립니까? 뭔가 부족하기 때문에 기다려요.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해요. 근데 가만 보면 소망이 아니라 희망 상황에 가까워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그냥 아무런 어떤 생각 없이 기다리는 사람들도 되게 많아요. 그런 사람들 더 많은 것 같아요. 프랭클린 정신학자가 이제 정신과 의사인데 어떤 환자가 와서 그러대요. 그래요. 하나님 아니요. 아, 의사 선생님 저는 이래서 못 살고요. 저래서 못 살고 아, 죽겠어요. 죽고 싶어요. 그래 그러더래요. 그래서 어느 날 의사 선생님이 딱 환자가 들어왔을 때 그 환자한테 그랬대요. 아니, 가서 죽지 왜 왔어요? 그렇게 얘기했대요. 또 그렇게 얘기하니까 이 사람이 뭐라는 줄 아세요? 아, 우리 자식들은 어떡하고요? 우리 사업은 어떡하고요? 뭐 이러더래요. 그러니까 아무 생각 없이 죽고 싶다고 얘기를 했지만 그 사람의 삶에는 죽지 못하게 만드는 뭔가가 그 사람을 붙잡고 있는 거예요. 붙잡고 있기 때문에 안 죽는 거예요. 그렇지요?

근데 아무런 생각 없다 보니까 그냥 죽고 싶다. 이런 얘기를 그냥 내뱉는 거죠. 그렇죠?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도 생각 없이다는 것처럼 보이지만 온갖에 붙잡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그 사람들에게는 그게 희망 사항이에요. 희망 사항. 우리 믿는 사람들과 다른 게 뭐냐면 우리는 소망을 붙고 살아요. 소망을. 그들은 원하는 거예요. 그런데 막연해요. 뭔가가 없어요. 뒤에. 그런데 우리 소망을 붙들고 산다는 건 뭐냐면 우리는 하나님이 계세요.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다면 이건 확실한 소망이 되는 거예요. 내 삶에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예.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위로해 주실 수밖에 없는 소망이 되는 거예요. 바로 그게 시몬과 안나가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그들은 그냥 막연한 게 아니었어요. 막연한 게 아니었어요. 그들에게는 말씀이 있었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확신을 하게 되고 위로를 받을 거라는 믿음으로 견디게 된 거예요.

그렇게 견디고 하다 보면 결국에는 그 기다림 속에 그들이 깨닫게 되는 게 있어요. 뭘 깨닫게 되는지 아세요? 왜냐하면 왜 하나님께서 나로 기다리게 하셨는지를 알게 돼요. 욥 같은 경우 욥의 고백을 하게 되는 거예요. 욥은 어떤 고백을 합니까? 욥기 23장 10절에 보니까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게 하시려고 기다리게 하셨구나라는 거예요. 여러분들 어떤 소망을 가지고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사람은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깨닫게 돼요. 하나님이 나로 정금같이 순금처럼 되게 하시려고 하는구나.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죄를 하나하나를 다 털어버리고 다 씻어버리고 주님께 쓰임받도록 만들려고 하나님께서 지금 이렇게 하고 계시는 거를 깨닫게 되는 거예요.

욥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는 자기는 정말 죄가 없는 줄 알았어요. 그리고 아무런 회개할 것도 없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기다림의 시간 속에 하나님께서는 정금같이 순금처럼 만드시는 조각을 해 나가는 하나님께서 작품을 만드시는 것을 경험하는 것을 욥이 경험하게 되는 거죠. 예. 뭐 부족한 저지만 아프면서 느끼게 되는 게 그거예요. 아픔을 통과하면서 회개할 것을 찾게 되고 부족한 것을 찾게 되고 그리고 내가 해야 될 것을 찾게 되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닫기를 원하면서 아, 이게 정금같이 된다는 게 이런 거구나를 서서히 깨닫게 돼요.

그러면서 이제 욥이 이런 고백을 마지막에 욥기서 마지막 장에 가서 그런 고백을 하죠. 42장 5절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할 수 있었는데 그 말씀으로 듣기만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눈으로 봐요. 시몬과 안나랑 똑같아요. 그들은 귀로만 들었어요. 메시아가 올 거라고 약속을 늘었어요. 약속을 붙잡고 살았어요. 그런데 결국에는 메시아를 어떻게 하는 거예요? 눈으로 보게 된 거예요. 눈으로 보게 된 거예요. 예. 그 위로함을 받은 거죠.

누가복음 2장 25절에 예루살렘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을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그런데 성령이 그 위에 계셨는데 위로함을 받게 된 거죠. 저는 우리 영락의 성도들이 이 간증이 있기를 원해요. 기다렸더니 하나님이 응답하심으로 말미암아 위로함을 경험했다. 기다린 동안에 정금처럼 만드신 것을 체험하면서, 그런데 이제는 내가 눈으로 주를 봅니다라고까지 갔으면 좋겠어요.

근데 저는 아직까지 이제 거기까지는 안 온 것 같아요. 거기까지는 안 온 것 같아요. 제가 눈으로 제가 몇 주째 계속 설교할 때 임마누엘에 대한 설교를 계속 하죠. 여러분들도 자꾸 듣게 되죠.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십시오. 주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시고 이게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라고 몇 주째 계속해서 설교를 했고, 예. 근데 내 눈으로 내 육신의 눈으로 주를 봅니다는 이건 또 다른 경험인 것 같아요. 또 다른 경험인 것 같아요.

네. 근데 중요한 거는 시몬과 아나는 봤고 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말씀이 있었고, 그리고 누가복음 2장 26절에 보면 내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그 성령의 지시를 받고 그대로 그것이 이루어졌다는 거죠. 그렇죠 여러분들.

근데요. 시몬이 받은 그 위로함, 그거는 우리가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우리가 뭘 기다리느냐라는 것을 생각해 봐야 돼요. 뭘 기다리냐? 이 시몬이라는 사람은 굉장히 잘 나가는 사람이고 정치적으로 굉장히 높은 올라간 사람이거든요. 그럼 보통 정치가들은 뭘 기대할까요? 우리가 나라가 해방이 돼서 잘 먹고 잘 사는 걸 기대하기가 쉬워요. 정치가니까. 이게 이제 메시아닉 에이지라고 얘기를 하거든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하는 메시아는 메시아닉 에이지를 원한 거예요. 메시아 에이지라는 건 뭐냐면, 우리나라가 해방이 돼서 잘 먹고 잘 살고, 나도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그 메시아닉 에이지를 꿈꾸기가 쉬운데 시몬은 그렇지가 않았어요. 그가 원하는 건 메시아였어요. 메시아. 그가 원하는 건 메시아를 원한다는 건 뭐냐면, 내가 왕으로 섬길 분을 찾는 거예요. 내가 왕으로 섬길 분을 찾아서 그분의 말씀대로 내가 살고 그분에게 충성할 사람을 찾는 거예요. 그분의 뜻이든지 무엇이든지 간에 내가 쫓아갈 그분, 그분을 원한 것이 바로 시몬이었다는 거죠. 예. 바로 그것을 이룬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들이 뭘 원하든지 간에 뭘 원하고 뭘 소망하든지 간에 여러분들은 메시아닉 에이지를 원하는 건지 메시아를 원하는 건지 이게 구분을 좀 생각해 보셔야 돼요. 그냥 내 욕심대로 내가 원하는 것을 주셔 가지고 내가 잘 먹고 잘 사고 우리 애들이 건강하고 뭐 다 잘되고 하는 거 좋아요. 그래서 궁극적인 목적이 그거냐? 아니면 하나님의 왕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나라를 원하는 것이냐? 이거에 대한 생각을 해야 돼요.

근데 시몬은 그걸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부모들에게 제대로 된 걸 전해요. 그의 부모들도 그런 생각을 했을 거예요. 처음에 와, 우리 아들이 좀 있으면 왕이 될 수 있어. 예. 메시아의 에이지를 바랄 수 있었을 거예요. 근데 시몬은 그들에게 정확하게 지적을 해요. 그분이 누군지. 누가복음 2장 34절에 보면 시몬이 그들을 축복해요. 모르겠어요. 시몬의 축복이 이게 축복인지요. 그의 아들이 이렇게 될 거란 얘긴데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길, 보라,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의 표적이 되기 위하여 생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예수님은 뭐만이 뭐 먹고 산다는 거예요? 욕을 바가지로 먹고 산다는 얘기예요.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살 거라고 얘기를 결국 그것이 십자가를 지게 되는 거거든요.

근데 이걸 축복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하여튼 그 칼이 내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나게 함이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이 죄악성인 걸 다 드러나게 해 가지고 다 막 예수님이 찔러요. 그냥 아프게 해. 그 사람들이 괴로워 가지고 저 인간 십자가 못 박아야 되겠다라고 만드는 그 예언을 해요. 예언을 해요. 근데 이 시몬이 이런 예언을 할 수 있게 된 이유는 뭐냐면 메시아를 원한 거고 메시아를 원하다 보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길을 보는 거예요. 그 길은 뭐냐면 십자가 없는 길은 위로가 없다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길이 없다면 진정한 위로하심을 받을 수 없다라는 얘기까지 진행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생각해야 돼요. 이제 우리가 기다려요. 하나님 말씀이 저 들어왔어요. 그래서 그 기다림 속에서 말씀 때문에 우리는 견뎌요. 그런데 내가 왜 기다리고 있는가 한번 생각해 보셔야 돼요. 예. 그 기다림 속에 내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기다림이 아니면 메시아를 원하는 왕이신 하나님을 내가 제대로 섬기고 싶은 어떤 그것을 원해서 기다리고 있는지.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함의 위로함을 채워 주실 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점점 하나님의 뜻에 맞는 그 기다림. 그래서 정금처럼 나와서 결국에 내 눈으로 주를 보기까지 하는 바로 그러한 위로함을 받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것이죠.

근데 이게 쉽지가 않아요. 쉽지가 않아요. 자꾸 우리의 마음이 세상을 향해 가요. 내가 바라는 것이 세상적으로 향해 가요.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 번째, 성령의 지시를 받아야 돼요. 성령의 지시를 받아야 돼요. 예. 아까도 얘기한 대로 이 시몬이라는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에요. 지금은 알면 사내에 산내들이 회장까지 됐어요. 사내들이 회장이면 대통령이 된 거예요. 대통령이 된 거예요. 어떻게 보면 이 사람이 보통 대통령까지 되면 무슨 야욕이 있어요? 나라를 내 맘대로 할 수 있어요. 그 나라를 내 맘대로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내 맘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에요. 성령의 잔소리 귀찮아. 내 맘대로 할 수 있어. 내 뜻대로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 시몬이에요.

그런데 이 사람이 누가복음 2장 25절에 보면 예루살렘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인데 중요한 건 그 위에 뭐가 있었어요? 성령님이 함께 하셨어요. 성령님이 함께 하셨어. 성령님이 함께 하면서 이 사람이 뭘 했냐면 누가복음 2장 26절에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으며 살았던 거예요. 바로 이것을 우리가 소망해야 돼요. 성령의 지시함을 받으며 살아야 돼. 안 그러면 모든 게 헷갈려요. 말씀을 묵상하더라도 헷갈릴 수 있어요. 항상 깨어 있어 성령의 지시함을 받아야 돼요.

근데 성령의 지시함을 못 받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성령의 지시를 받아야 되는데 못 받는 이유는 아까 우리가 읽었던 구절에 있어요. 이 사람이 성령의 지시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의롭고 경건하게 살았기 때문에 그래요.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 안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지시하세요. 근데 몰라. 왜냐하면 내가 갖고 있는 죄 때문에 경건하지 않은 삶 때문에 그게 구분이 안 되는 거예요. 그게 구분이 안 되는. 그래서 경건하게 살아야 돼요.

근데 경건하게 산다는 게 뭘까요? 왜 여러분들 예전에 우리 어릴 적에 이런 복음 성가를 부른 적이 있는데 가사가 이래요. 내 눈이 보는 것을 조심해. 내 눈이 보는 것을 조심해. 위에 계신 하나님 사랑스레 보시네. 내 눈이 보는 것을 조심해. 만약에 여러분들이 이 복음 성가를 안다면 여러분들 정말로 나이 많으신 거예요. 예. 근데 그 가사가 이거예요. 내 눈이 보는 걸 조심해. 그다음에 내 귀가 듣는 걸 조심해. 내 입이 하는 말을 조심해. 내 손이 하는 일을 조심해. 그런데 발휘하는 길을 조심해라는 거예요. 경건한 삶이라는 건 이거예요. 바로 내가 가진 육체로 어떻게 사용하고 있느냐가 한마디로 말하면 경건한 거예요.

바로 이 경건한 삶이 이미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세요. 즉 우리가 경건한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성령의 지시함을 받아서 결국에는 우리는 결국에는 위로함을 받게 되어지는 거예요. 왜냐하면 성령이 지시함을 받으면 보이잖아요. 보이잖아요. 그렇죠? 솔직히 시몬은 보통 사람 같으면 예수님을 알아보기 힘들어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그 아기 때 그 몰골이 이만 점만이 아니에요. 예. 말고 해서 지금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셨고 지금 도망자의 신세고, 지금 아기 데리고 그러면에도 불구하고 이 엄마 아빠가 애들을 잘 신앙적으로 키우기 위해서 이제 때가 돼 가지고 예배 드려 와 가지고 제사 지내는 거예요. 그런데 그 재물을 딱 보니까 가난에 찢은 사람이에요. 어떻게 알아요? 예. 산비둘기 한 쌍을 바치는 걸 보면 이건 비둘기를 바쳤다는 얘기, 뭐냐면 가난하다는 얘기예요. 찢어지게 가난한 그 아기를 보면서 시몬은 알아본 거예요. 이 사람이 메시아다.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라고 볼 수 있는 이 시선이 구별할 수 있는, 이것은 성령님밖에 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성령의 지시 때문에.

여러분들 이게요, 성령의 뜻을 아는 게 절대로 쉽지 않아요. 특히 저 같은 경우에는 아직까지도 미련을 못 버렸는지 모르지만, 아직까지도 미련을 못 버렸는지 모르지만 하나님께 이런 질문해요. 하나님 저 살까요, 죽을까요? 하나님 살까요, 죽을까요? 왜냐하면 제가 이제 어떤 이렇게 안 좋은 소식을 듣잖아요. 그럼 그런 질문을 또 해요. 이제 안 좋은 소식이 뭐냐면 이제 제 배에 이제 일부 때는 제가 실수해서 육수라 그랬는데 그 아 또 뭐라 그래? 그게 그 물을 뭐라 그러죠? >> 옥수. >> 예. >> 복수. >> 아, 복수. 복수가 차기 시작했어요. 이제 복수가 차기 시작했어요. 보통 옛날에 제가 이제 신방 다니면 배가 복수가 차신 분을 보면 아 이제는 진짜 마지막이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그분을 신방을 보통은 해요. 근데 이제 재배에 복수가 차기 시작한 거죠. 예. 그렇게 안 보이죠. 복수 찬 사람처럼. 네. 솔직히 하스피스 케어 받고 있는데 제가 신방 다니면서 저 같은 하스피스도 처음 봐요. 예. 하스피스인데 나 돌아다니면서 설교하는 사람은 예. 하여튼 신기해. 그러니까 저도 하여튼 그런 뉴스를 딱 접하면 또 하나님 앞에 물어봐요. 하나님 저 살 거예요, 죽을 거예요? 이렇게 물어보고 아침이 되면 이제 아침에 일어나면 성경 묵상을 하잖아요. 성경 말씀을 이렇게 딱 그날 말씀을 딱 펼쳤어요. 딱 펼쳤는데 딱 1절에 마태복음 20장이었어요. 요즘에 우리 생명상이 마태복음 하잖아요. 20장 딱 폈는데 시작이 이거였어요. 천국은 그래서 딱 덮었어요. 아 죽는구나. [웃음] 천국 간다 얘기, 천국에 관한 얘기니까. 예. 천국 그래서 아 하나님 죽을 준비하라 그러시는군요. 그래서 하루 종일 죽을 준비를 한다는 게 뭘까라고 생각을 하면서 이렇게 사는데 하나님이 자꾸 이렇게 묵상을 하는데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너 요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얘기 하잖아. 요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얘기하죠. 그렇죠? 우리가 하나님 나라로 여러 사람을 품어야 되고 하나님 나라의 개념에 대해서 제가 설명을 하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확장을 이루어야 되고 뭐 이런 설교를 하잖아요.

야, 천국이 하나님의 나라야. 지금 여기서 말하는 천국은 그럼 계속 읽어 봐. 그래서 성경을 읽어 보니까 이 천국에서 일을 하네. 일꾼을 모아 가지고 일을 시켜요. 이거는 죽어서 일하는 게 아닌 거예요.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그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딱 덮은 게 아니 덧플게 아니라 이건 다른 그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얘기하네. 그럼 하나님 나 사는 거예요, 죽는 거예요? 또 질문을 해 보죠. 그렇죠? 저도 몰라요. 살지 죽을지 하나님께서 살려 주실지 죽을지 모르지만 자꾸 그게 힘든 거예요. 야, 이 목사지만도 이게 하나님 무슨 뜻이에요? 기도하게 하고 또 묵상하게 하고 그러면서 참 우리 하나님 재밌다. 예. 어떻게 이렇게 다 답이 두 가지지? 예. 그러면서도 재밌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뭐 하여튼 여러 가지 믹스 필링이 이렇게 다 있으면서 뭐 그렇게 살아요.

근데 목사집은 뭐가 필요해요? 성령의 지시하심이 필요한 거거든요. 근데 아직도 저는 예, 좀 그런 스테이지예요. 과학적으로 볼 때는 완전히 지금 점점 점점 저쪽으로 가는 거 저도 알아요. 저도 아는데 하여튼 성령의 지시함을 받는다는 게 이게 쉽지가 않다는 거죠. 우리는 꾸준히 깨어 있어 지시를 받는 그런 삶을 살아야 되는데, 그런데 중요한 거는 세 번째 포인트에 우리가 기다리면서 성령의 지시를 받으며 미래 지향적임을 기억해야 돼요.

근데 어떻게 보면 이 구절이 미래 지향적인 게 맞나라고 생각하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기가 쉬워요. 왜냐하면 보세요. 29절에 주여 이제는 말씀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해서 이제는 메시아를 만났기 때문에 나 이제 죽어 죽을 수 있어. 이 사람 정말 죽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나이가 너무 많아서. 그러니까 이제 하나님 이제, 예, 저 이제 죽습니다. 저도 이렇게 죽고 싶어요. 예. 이렇게 얘기하면서 하나님 이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십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그냥 죽기 싫고 바라가는 게 아니라 뭐 이렇게 죽고 싶은 죽고 싶은 그런 모습이에요.

근데 이런 구절만 보면 미래 지향적이지 않잖아요. 죽은 게 끝이었잖아요. 예. 근데 왜 내가 미래 지향적이라고 기 얘기를 하냐면 30절에 내 눈이 주의 고원을 보았사오니에요. 근데 자기 혼자 본 걸로 끝나면 이게 미래 지향적이 아니에요. 그런데 이 사람이 전은 만민 앞에 예비한 친 것이요 이방에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인이다라고 사람들에게 전한 거예요. 거기서부터 미래 지향적으로 바뀌는 거예요. 이걸 부모에게 전달한 거거든요. 부모는 솔직히 긴가민가하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왕인데 어떤 왕이 될까? 예. 왕은 될 것 같은데 부모가 다 이해하지 못했어요. 알잖아요. 예. 형제들도 메시아는 걸 나중에 인정 못 나중에 인정하게 되잖아요. 부모도 말씀들어서 아는데 정확하진 않은 거예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헷갈려 하는데 목자들이 와서 전하고 했기 때문에 헷갈리 왕은 왕인데 어떤 왕일까? 어떻게 사가지? 헷갈리고 있는데 이 시모라는 사람이 와서 이 사람이 바로 이방의 빛입니다. 이방의 빛을 비추는 일을 할 겁니다. 이스라엘은 영광입니다. 메시아입니다라는 얘기를 좀 더 정확하게 했을 때 요셉과 마리아에게 있어서는 그리고 거기서 그것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는 이제는 그들이 새로운 미래 시작을 읽어 가는 거예요. 그 말씀 때문에 그 말씀 때문에 이제는 메시아로 섬길 분이 왔기 때문에 이제는 메시아로 섬길 일이 미래가 시작이 되는 거잖아요. 바로 전달하는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이 사람의 죽음은 이제는 끝난 게 아니라 미래의 시작인 거고, 미래 지향적이라고 얘기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거예요. 바로 거기에 있는 거예요. 예. 근데 이게 중요한 게 뭐냐면 안나도 마찬가지예요. 안나도 끝이에요. 이제 전함으로 끝. 그러니까 예수님을 만남으로 끝났어요. 근데 안나도 만난 게 혼자 끝 죽은 게 아니에요. 거기 하필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메시아가 있었는데 만나면서 이분입니다라고 바텀을 사치하면서 이분을 메시아로 섬겨야 됩니다라고 해서 다른 사람이 미래 지향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든 일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끝이 아니에요. 미래 지향적인 삶의 시작인 거예요.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끝이 아닌 거죠. 끝이 아닌 거예요.

그러니까 저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전하고 있는 복음을 전하고 있는 이것이 미래 지향적인 삶을 살아가는 거예요. 끝이 아니에요. 여러분에게 내가 다 할 수 없는 일을 여러분에게 전달하는 전달함으로 말미암아 바로 미래 지향적인 것이죠. 그리고 미쳐 부모가 생각하지 못한 게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난과 십자가에 대한 얘기를 전달하면서 이들에게는 새로운 소식이 전달되면서 아, 내 아들이 이제는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데 그러니까 이게 만화향이지만 잘되는 것만이 아니라 고난의 길이 있구나까지 알려 줬기 때문에 그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거고 준비할 수 있는 그런 것까지도 미래적인 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거예요.

근데 여기서 중요한 게 있어요. 중요한 게 뭐냐면 긴가민가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냐면 사람을 붙여 주셔서 요셉과 마리아가 긴가민가하고 있을 때 사람을 붙여 주셔서 확실하게 잡아주는 사람을 붙여 주실 때는 우리는 확신하게 되는 거예요. 더 확신하게 되는 거예요. 아, 나는 이 일을 위해서 쓰임받기를 원해서 하나님께서 미래를 정해 놓으셨구나를 보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사람을 붙여 주세요.

그러니까 제가 헷갈리는 게 뭐냐면 아 이제 죽음을 준비해야 되는구나라고 더 이렇게 가다가 그런데 이제 말씀 묵상해 보면 아니거든요.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이렇게 어떤 성도들이 저한테 이렇게 카톡을 보내고 메시지를 보내는데 목사님 제가 이렇게 말씀을 묵상하는데요. 목사님 죽지 않고 산대요. 예. 그리고 제가 묵상한 말씀과 똑같은 말씀을 가지고 딱 대되면서 예. 목사님 산대 왔을 때는 저도 저도 놀래요. 아니, 어떻게 이렇게 똑같은 말씀으로 할까? 근데 이걸 막 얘기하고 다니면 죽기 싫어 가지고 바락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고. 예. 근데 그 사람이 말씀 받았는데, 그런데 이게 한 명이 아니라고 두 명이었거든요. 아니 죽을 준비 죽어야 된다고 생각하다가도 말씀 때문에 막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똑같은 말씀으로 갑자기 나를 산다라고 얘기를 딱 이렇게 던지면 뭐 어떡하라는 얘기예요 하나님 저 그러다 보니까 저는 그런 거는 있어요. 만약에 하나님께서 살려 주시면 내가 할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는 거죠.

물론 사람들은 뭐 그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하 저도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저의 할 일은 뭐예요? 저희들은 미래 지향적인 기다림을 저는 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살려 주시면 나는 물론 선교랑 연관된 거죠. 뭐 여러분들에게 뭐 그런 얘기 할 필요는 없지만 그게 있어요. 그 플랜이 있어요. 아니면 아 내가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미래 지향적인 삶을 살았구나 끝나는 거예요.

근데 여러분들 중요한 게 뭐냐면 미래 지향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게 있어요. 그건 뭐냐면 미래를 이걸 위해서 현재가 이루어져야 되는 거예요. 현재성이 해결돼야 돼요. 보세요. 시몬과 안나 같은 경우에는 현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미래를 얘기할 수 있어요. 현재가 뭘 이루어진 거예요?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에. 현재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에 그 미래 지향적인 것이 연결이 된 거예요. 안 만났으면 전달할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전을 줄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 미래적인 삶을 살 수도 없었어요.

근데 시몬과 안나에게는 이게 뭐냐면 현재 메시아를 봤다라는 그 현재가 이루어진 거예요. 현재가. 그 하나님께서 현재를 이루어 주셨을 때 우리는 준비가 돼 있어야 돼. 아, 그 미래에 할 일과 미래에 대한 준비가 되어져 있어야 되는 거죠. 그러기 때문에 저는 우리 성도들이 이렇게 기다려야 된다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냥 빨리 하나님 이루어 주세요가 아니라 이루어 주셨을 때 준비가 되어진 거죠. 하나님 이루어 주시면 나를 정금같이 나오게 하신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렇잖아요. 그냥 천국 가서 잘 먹고 잘 살려고 많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나를 정금같이 나오게 한 이유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래서 그 현재성이 이루어졌을 때 확실하게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욥처럼 어떻게 고백해요? 내가 귀로 듣기만 했는데 이제는 주님을 눈으로 봅니다까지 되는 거죠.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걸 볼 때 현재성이 이루어졌을 때 맞아. 저 사람은 진짜 주를 보는 사람이 맞네라고 결정이 되어지는 거죠.

저는 이제 결론을 맺으면요. 여러분들 신앙생활이라는 건 기다림이에요. 뭐 안 기다릴 수가 없어요. 뭐든지 기다려야 돼요. 근데 제대로 기다려야 돼요. 기다릴 때 그냥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고 그 위로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과 함께 기다릴 때 이것이 소망이 되는 거고 그 소망이 이루어지는 성도들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역시 우리 하나님은 나를 그 소망을 이루심으로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여러분들 어떤 기다림이든지 간에 바로 이 간증이 여러분에게 있었어요. 있기를 원해.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성령의 지시함을 받아야 돼요. 물론 뭐 헷갈릴 수도 있어요. 그러나 성령의 지시함을 받는 거기에 그럴 때 근데 그러기 위해서는 경건하게 사는 거죠. 성령께서 지시해 주신 그 길을 가면서 기다리는 거예요. 가면서 어쨌든 불확실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것이 미래 지향적이길 되기 원해요. 이루어질 줄 믿고 준비하길 원해요. 그래서 여러분의 삶 속에 현재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심을 바라보면서 딱 이루어 주심 때문에 미래형이 완료가 되면서 아 이래서 나를 정금같이 나오게 하시는구나. 이제는 내가 주를 귀로 만들었는데 눈으로 봅니다라는 간증이 있는 바로 그렇게까지 기다림을 이루는 여러분의 삶이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참 기다림.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기다리지 않고서는 되지 않는 것을 봅니다. 잘 기다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헛되게 기다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헛된 꿈을 꾸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 안에서 기다리게 하시고 메시아닉 에이지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충성할 메시아를 원하며 제대로 기다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야 우리 하나님께서 그 기다림에 응답하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위로를 얻었다라고 간증할 수 있게 하여 주시고, 그 기다림 속에 제대로 기다리기 위해 성령의 지시함을 받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바로 경건하게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야 내 안에 계신 성령님과 대화하고 좀 더 깊이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제대로 된 지시함을 받아, 하나님 나의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미래 성이 있는 기다림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냥 막연하게가 아니라 우리로 전과 같이 나오게 하신 이유가 있기에 하나님 아버지 그것을 믿고 미래를 준비하며, 그래서 우리의 삶 속에 현재에 이루어 주시는 그 하나님을 경험함으로 말미암아 내가 예전에는 귀로 만들어 싸웠는데 이제는 눈으로 봅니다라고 하나님 앞에 고백할 수 있는 그러한 신앙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말씀에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멘.

스터디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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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정리

  • 시몬과 안나의 삶은 서로 다르지만 둘 다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 400년의 기다림 속에서도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 신앙의 최고봉은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를 기다리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 성령의 지시를 받아 경건하게 살아야 진정한 기다림을 경험할 수 있다.

나눔 질문

  1. 시몬과 안나의 기다림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2. 여러분의 삶에서 기다림이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3.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를 어떻게 경험하고 있나요?
  4. 성령의 지시를 받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이번 주 적용

이번 주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를 기대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또한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해 경건한 삶을 살도록 노력해보세요.

기도 · 묵상

하나님, 저희가 기다림 속에서 위로를 경험하게 하시고, 성령의 지시를 따라 경건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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