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 오늘 말씀은 요한복음 2장 7절에서 10절입니다. 제가 하나님 말씀 봉독해 올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의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기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애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애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애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아멘.
오늘은 여러분들과 요한복음에서 나타난 기적에 대해서 보려고 합니다. 근데 요한복음에서는 오늘이 2장에 나타난 기적이 첫 번째 기적이에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착각해서 안 되는 게 뭐냐면 요한복음에서 첫 번째 기적이지 예수님이 행하신 첫 번째 기적은 이 기적이 아닙니다. 이게 무슨 얘기냐면 특별히 사도 요한은 이유가 있어서 이 기적을 먼저 이야기했다는 거예요. 역사적으로 그냥 순서적으로 예수님이 첫 번째 행하신 기적이 뭡니까? 해가지고 그렇게 기적을 썼다면 아, 그거는 예수님의 어떤 인텐션이 있으셨나 보다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이 부분은 사도 요한이 “예수님이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다”라고 쓴 부분이 있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뜻하는 바가 있었어요. 이 기적을 첫 번째 기적을 쓴 이유가 사도 요한에게는 뜻하신 이유가 있다. 그럼 그 사도 요한이 뜻한 이유는 뭘까요? 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행하신 여러 가지 기적 중에 가나의 혼인 잔치의 기적을 첫 번째로 우리에게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왜 가나의 혼인 잔치 기적을 첫 번째로 보여 주시느냐”입니다. 왜 보여 주실까? 왜 이것을 첫 번째로 쓰고 싶었는가?
첫 번째 이유는 뭐냐면요. 이 가나의 혼인 잔치라는 거 자체가 우리 삶 전체를 보여 주시는 기적이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 삶 전체를 보여 준다는 얘기는 뭐냐면 이 결혼이라는 거 자체가요. 결혼이라는 거 자체가 그 사람의 신앙을 나타내 주기가 딱 좋은 게 그의 결혼이에요. 결혼의 모습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그 한 사람의 신앙을 보여 주는 부분이기 때문에 예, 바로 사도 요한이 그렇게 했다라고 볼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 삶 전체, 가정은 어떠한가를 보여 줘요. 그 사람의 가정 생활에 있어서 그의 신앙생활은 어떠한가를 왜냐하면 결혼이기 때문에 보여주는 부분이기 때문에 예. 그리고 좀 더 크게 보면 신학자들은 결혼이라는 것은 결혼이라는 것은 그냥 가정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 전체를 보여 주는 거다. 교회. 예. 교회. 그 사람이 섬기는 교회. 그 사람 섬기는 공동체 이러한 전체를 나타내 주는 부분이 바로 결혼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먼저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근데 그렇게 보면 맞는 것이 뭐냐면요. 포도주에 대한 얘기를 하잖아요. 그죠? 포도주에 대한 얘기예요. 2장 7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기까지 물을 채웁니다. 근데 이제 떠서 연애장에 갖다 주라 하심에 갖다 주었더니 연애장은 이제는 떠서 연애장에서 갖다 주라 하시며 갖다 주었더니 연애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나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애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이걸 좀 왜 읽었냐면 많은 우리 한국분들은요 이 얘기를 하면 첫 번째로 하는 얘기가 뭐냐면 “아, 목사님 보라고 예수님도 물을 포도주로 만든 거라고, 예수님도 포도주를 마셨고, 예 결혼식에는 그 사람들은 술을 마셨다. 근데 왜 우리는 마시면 안 되느냐?” 뭐 이렇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뭐 그 사람들 이야기를 그렇게 끌고 가면 그 사람의 신앙의 정도는 거기까지 거예요. 거기까진 거예요. 예. 저는 신학교 들어가는 허락을 받은 날짜와 결혼식을 한 날이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제 저의 신앙이 별로 안 좋았어요. 한마디로 말하면 왜냐하면 신학교 허락을 받기 바로 전까지는 제가 술을 엄청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항상 이렇게 만약에 소고기를 먹으면 저는 맥주는 미겔러을 마시고 어떤 이런 루틴이 있었어요. 예. 뭘 어떤 고기를 먹으면 어떤 고기 어떤 술을 마시고 그 술을 되게 좋아하는 사람이었죠. 저희 아내도 제가 신학교에 간다는 얘기를 듣고 제일 걱정했던 게 뭐냐면 저렇게 술을 좋아하고 또 많이 마시는 사람이 전 술 엄청 마시는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신학교 가서 술을 끊을까라는 게 저희 아내도 걱정을 했었어요. 왜냐하면 저희 아내가 저랑 사랑에 빠진 이유 중에 하나가 제가 술을 잘 마시기 때문에 그래요. 다른 친구들은 술을 마시면 항상 뭐가 있어요? 누굴 때리든가 이렇게 세게 때리는 게 아니라 이렇게 뭐 여자처럼 이렇게 때려냈던가 과거 여자 친구 얘기를 하던가 뭐 옛날에 얘기하는데 스토리가 똑같아요. 스토리가 똑같아요. 예. 예. 물론 여러분들이 이 설교 들으면서 “지금 목사님 저 그거 옛날에 했었어요”라고 했을 예. 저도 알아요. 근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술을 끊을까 걱정을 했었어요. 근데 이제 신혼 여행을 갔었잖아요. 제가 신혼 여행을 제주도로 가는 날 이미 이제 신학교는 허락을 받은 날짜예요. 어떻게 보면 세상으로 말하면 전도사 전도사인데 제주도에 갔는데 그 제주도의 민숙촌에 갔는데 동동주에다가 빈대떡을 이렇게 그 샘플로 해 놓았는데 너무 맛있게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제 하나님 앞에 그랬어요. 하나님 저인지 신학교 가면 인진 끝인데 마지막으로 제가 동동주랑 예이 빈대떡을 먹으러 제가 이제 제 술 인생은 끝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나님께 얘기하고 먹었어요. 근데 문제가 뭐냐면 이 술을 먹은 후에 3박 4일 내내 토하고 난리가 났었어요. 예. 몸이 술이 안 맞아 안 맞나 봐요. 그때부터 그래 가지고 뭐 누가 얘기를 안 하더라도 저는 술이 끝났어요. 술이 예. 근데 나중에 알았어요. 제가 체질이 바뀐 거를. 예. 뭐 그다음부터는 내가 술이 먹고 싶은데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근데 어떻게 체질이 바뀌는 줄 알았냐면 제가 이제 목사가 된 후에 어떤 교인의 누가 뭐 천주교인데 결혼을 한대요. 그래서 결혼식에 참석을 했더니 천주교인들이 제가 목사라고 본인들 신부 앞에다가 저를 앉치더라고요. 근데 이 시무님은 소주를 너무 좋아하시는 분이더라고요. 그러니까 목사 앞에 앉았는데 소주를 계속해서 마시더라고요. 근데 그 소주 냄새가 역하더라고요. 소주가 역하더라고. 그래서 아, 하나님 나를 체질까지 바꿔 주셨구나. 그래서 술을 먹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구나라는 것을 알겠어요. 그러니까 저는 솔직히 자랑할 건 없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체질을 바꿔 주실 거기 때문에 아, 그거 하나 못 이깁니까라고 자랑할 건 하나도 없어요 저는. 그런데 이미 저는 그런 거를 먹고 싶던 생각이 들지 않았잖아요. 예. 그리고 지금은 어떠냐라고 물어보면 지금은 또 체질이 바뀐 거 같아요. 뭐 술 냄새가 역하지 않아요. 그냥 안 마셔요. 그냥 안 마셔요. 그래서 누가 저한테 물어보잖아요. “왜 목사님은 술을 안 마십니까?”라고 물어보면 제 답은 딱 한 가지예요.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써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 뭐냐면 “그러므로 너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그까 왜 목사님 술 안 마세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건 안 하면 되는 거예요. 이게 술이 뭐라고 제가 고민을 합니까? 그렇잖아요. 예. 신앙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면 안 마시면 되는 거예요. 안 마시면 되는 거예요. 그렇게 가장 간단하게 여러분들이 답을 갖고 계시다면 여러분은 이미 술을 이긴 분이 맞아요. 근데 여러분들이 술 때문에 아직도 고민이 되고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의 신앙은 아직도 다르지 못한 거예요. 예. 예. 그것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정확하게 답을 얻으면 된다라는 거예요. 근데 잘 자랑할 건 없어요. 왜냐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신 거니까 자랑할 건 없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답은 그거예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안 마시는 거예요. 그렇죠? 간단하게 여러분들이 그런 답을 갖고 계시다면 여러분은 이긴 거고 여러분 신앙의 정도는 바로 그거다라고 볼 수 있는 거죠.
하여튼 중요한 거는 뭐냐면 이런 술, 술이라는 이거는 한 가지만으로도 여러분의 신앙의 정도와 그것을 볼 수 있는 거거든요. 여러분의 신앙의 정도는 어디까지입니까?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제 개인의 문제는 이 술에 있어서 개인의 부분에 있어서는 이렇게 점검할 수가 있어요. 이렇게 점검할 수가 있는데 이제 참 재밌는 게 성경이 재밌는 게 뭐냐면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이 에덴동산이라는 가정을 만드셨잖아요. 그죠? 그게 하필로면 창세기 2장이에요. 2장. 2장. 근데 하필리면 요한복음 2장에서는 그것도 2장이죠. 같은 2장에서는 가나의 혼인 잔치가 나와요. 결혼이라는 어떤 사람이 결혼을 해요. 2장에서. 근데 보세요. 창세기서 2장에서는 결혼을 실패했어요. 그렇지 않아. 하나님이 먹지만 하는 그걸 먹음으로 말미암아 예, 결혼을 실패한 모습을 보여주죠. 여러분 기억나세요? 예전에 첫 아담 넘어졌는데 두 번째 아담이 이로 말미암아 시험을 이겼다. 그걸 보여 주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기도 해요. 그렇죠? 첫 번째 결혼식은 실패했어요. 첫 번째 결혼식은 실패했어요. 그러나 두 번째 결혼식 가나의 혼인 잔치는 예수님께서 물이 다 떨어져서 문제가 생겼는데 2장 9절에 보면 연애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나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애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야, 사람마다 좋은 포도주를 먼저 내고 취한 후에 내는 것이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던 아니라” 이 좀 너네는 좀 다르네. 너네 가정은 뭔가 좀 다르네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예수께서 이 표적을 갈릴리에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심에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이 결혼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오히려 전도가 되는 그러한 가정이 되어졌다라는 거야. 이렇게 오히려 다른 가정. 근데 보통 일반 가정도 여러분들 우리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여러분들 처음에는 결혼식을 하잖아요. 신혼발 때문에 재밌게 잘 살아요. 예. 꽁냥꽁냥하면서 예. 재밌게 잘 살아요. 근데 진짜로 얘기할 수 있을까요? 야, 보통 과정은 신혼발 때문에 처음엔 잘 살지만 나중에는 그거 다 떨어지고 나면 어떻게 사랑해야 되는지도 모르고 예, 그 가정이 정말 사랑할 줄도 모르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도 못하는 영광을 가리는 그런 가정이 되는데 야, 너희 가정은 다르네. 이런 소리를 여러분들 들을 수 있습니까? 들을 수 있으세요? 한번 돌아보세요. 우리 가정은 문제가 없는지 우리 가정은 예수님 안에 있으면 예수님 안에 있으면이 답을 얻을 수 있어요. 예수님 안에 있으면 예.
그리고 또 재밌는 게 뭐냐면 사도행전 2장을 보면요. 첫 가정은 첫 가정은 그 창세기 2장이었죠. 그렇죠? 그리고 세례 요한이 말하는 가정은 요한복음 2장이었죠. 그죠? 사도행전 2장을 보면 뭐가 나오냐면 2장 1절에 보면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모인 무리의 수가 약 120명이나 되더라. 아까 약 120명이나 되더라. 그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제가 2명 2에 꽂혀 가지고 자꾸 뭐 22명 막 이러는데 여기는 120명입니다. 그렇죠? 근데 중요한 것은 뭐냐면 사도행전 2장은 교회의 시작이었어요. 교회의 시작. 공동체의 시작이었어요. 그래서 120명이 모였을 때 오순절날에 한 곳에 모였는데 예, 120명이 모였어요. 근데 어떤 일이 발생을 합니까? 2장 4절에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날이 2장이었어요.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래서 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우리가 잘하는 오적 자락방에 그 성령 충만의 사건이 사도행전 2장에 일어나요. 그들의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2장 4절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론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래서 2장 4절에 신약의 교회가 탄생하게 되고 공동체가 탄생하게 되어집니다. 여러분들이 공동체가 탄생을 하는 것 이것도 굉장히 중요해요. 예. 뭐냐면 창세기서 4장에 가면 제가 2장에 꽂혀서 창세기 2장 얘기할 줄 알았죠? >> 예. 아멘. >> 근데 창세기 4장에 가면 아주 중요한 사건이 하나가 있어요. 그게 뭐냐면 가인이 그의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들의 아벨을 쳐죽이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자기 형제를 쳐 죽여요. 쳐 죽여요. 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이렇게 물어봐요. “내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어보십니다. 근데 이 가인이 이런 얘기를 해요.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감히 이런 얘기를 합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 이거 굉장히 중요한 가인의 대답이에요. 이것이 그 당시에 하나님께서 공동체를 만드셔 가는 그 과정 속에서 그 당시에 사람들의 영성이었어요. 그들의 영성이 뭐냐면 “하나님,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 이게 그들의 영성이었어요. 우리 교회를 말하면 선교회를 향해서 지금 나아가야 하는데 완전히 반대로 가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뭐냐면 “하나님, 내 책임 아니에요.” 하나님 내 책임 아닙니다라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가진 영성을 가진 것이 창세기 4장의 모습이었고 그 당시에 무너진 공동체의 모습이었다라는 거예요. 여러분들 우리의 공동체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어떠해요? 왜? 우리가 우리의 아우를 지키는 자 맞습니까? 맞아요. 맞아요. 우리가 그들 주님께로 인도해야 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어요. 보세요. 창세기 4장 10절에 보면 그 당시의 영성이 이렇게까지 돼 있어요. “이르시되 내가 무엇을 하였느냐? 내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에서부터 핏소리가 진동하는데 너는 그게 보이지 않냐? 너는 들리지 않냐? 예. 근데 들리지가 않아요. 왜요? 이들의 영성이 그랬기 때문에 이들의 교회의 공동체의 영성이 그랬어요. 나만 잘 먹고 잘 살아요.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되기 때문에 이들의 영성이 거기에 갇혀 있기 때문에 거기에 문제가 있었던 거예요. 문제가 있었어요. 혹시 이것이 우리의 영성이 아닌지를 돌아보시라는 거예요. 예. 우리의 가정의 영성은 어떠한지, 우리 교회의 영성은 어떠한지 우리의 공동체의 연성은 어떠한지 그래서 하나님이 “야, 누가 어디 있냐?” 그러면 “어 하나님, 제가 그 아우를 지키는 게 저의 사명 맞아요. 어디 어디 있고요? 제가 이렇게 돌보고 있어요”라고 하는 것이 답이에요. 하는 것이 답이에요. 우리의 영성이 어디 있는지 여러분들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 제가 아프면서 요즘 어려운 게 뭔지 아세요? 가장 어려운 게 뭐냐면 변기에서 일어나서 나오는 거예요. 전 이게 이렇게 어려울지 몰랐어요. 왜 화장실마다 그 알루미늄 된 그 뭐 이렇게 바치는 거 있잖아요. 힘 줘서 일어나는 거. 그게 왜 있는지 몰랐어요. 근데 아프니까 예, 하나하나 사모더라고 제가 그거를. 예. 왜냐 못 일어나요. 못 일어나요.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지 않으면 못 일어나요. 근데 제 아들이 덩치가 크잖아요. 예. 200파운드가 좀 넘을걸요. 제가 이 몸무게 얘기하면 싫어할지 모르겠는데. 근데 제 아들이 약 200파운드 정도 되고요. 제가 한 170파운드 정도 돼요. 그리고 저희 아내가 한 100, 110 돼요. 근데 아세요? 제가 화장실에서 나오려고 하면 누가 저를 제일 잘 꺼내 줄까요? 예. 누가 제일 저를 잘 꺼내 줄까요? 예. 저희 아내예요. 저희 아내예요. 110파운드 되는 저희 아내가 저를 들어올려요. 이게 상상이 되세요? 어떻게 저를 들어 올려요? 그들 들어올려요. 처음에는 저희 아내가 “나 내 목 자꾸 올려” 했을 때 “어떻게 말이 돼요? 어떻게 170원 남자가 그 몸무게 전체를 저희 아내 목에 기대해 가지고 목에 의지해서 제가 일어날 수 있겠어요?” 말이 안 되잖아요. 근데요. 그게 되더라고요. 저희 아내가 잡아 올려 하니까 제 몸이 올라가요. 저희 아들은 어쩔 줄 몰라 해요. 저희 아들은 한 번에 침대에서 저를 저희 아들이 “아빠 나 잡아.” 그리고 올리다 마는 거예요. “야 왜 그래?” 그랬더니 “아니 힘을 못 주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야 이게 힘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힘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사랑으로 되는 거예요. 사랑으로 진짜로요.” 예. 그리고 저희 아내가 사랑만 갖고 되는 게 아니라 공부를 했더라고요. 이미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을 들어 올릴 수 있을까? 아, 저는 허리 다칠까 봐 걱정 되게 많이 했거든요. 아, 이게 이런 사람이 올리다가 허리 다치면 어떡하나? 그랬더니 다 공부해서 그게 본인의 사명이라고 느끼니까 사명이라고 느끼니까 그게 되더라고요. 예. 어떻게 보면 성경에 보면 “내가 내 아를 지키는 자니까”라는 사명을 본인이 하나님 주신 사명이라고 느끼고 공부하고 거기다가 힘을 쏟으니까 그게 되더라는 거예요. 그게요. 그래서 “야 이게 하나님이 그 주신 사명과 사랑으로 하면 이게 못 할 것이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데 이제 어느 날 저를 돌볼 사람이 없으니까 저희 둘째 딸을 이제 저희 아내가 보낸 거예요. “야, 엄마도 하니까 예. 아빠 화장실 가고 싶다 그러면 이를 이렇게 해라고 이제 저희 딸한테 가르쳤어요.” 근데요. 저희 딸이 하는데 안 되더라고요. 안 되더라고요. 문제가 뭔지 아세요? 문제가 저한테 있는 거예요. 왜냐면 저희 딸이 임신했잖아요. 온전히 제가 저희 딸한테 맡겨야 되는데 제 몸을 아, 못 맡기겠는 거예요. 예. 저희 아내한테 혼날 것 같은 거예요. 예. 예. 뱃속에 있는 애를 생각해야지. 어떻게 그럼 어떡하냐고 그럴 거 같은 거예요. 제 기분에. 물론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어서니까 온전히 못 맡기는 것도 있지만 그런데 중요한 거는 거기에 있는 거예요. 나의 공동체에 대한 영성이 어떻게 되느냐? 영성이 어떻게 되느냐? 사랑하느냐? 사명감이 있느냐? 사명감이 있어서 배우느냐? 이런 모든 것들이 그 영성과 연결되어져 있다라는 거죠. 예. 하여튼 우리의 삶 전체를 보여 주는 게 바로 이 혼인 잔치기 때문에 바로 혼인 잔치에 대한 이야기를 한 거예요. 공동체, 교회, 가정 여기 다 포함되기 때문에. 예. 와우.
근데 제가 포인트 한 1했는데 12시간 넘었네. 인제 좀 제가 빨리 할게요. 그리고 두 번째는 기쁨으로 이어지게 하시는 역사이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 우리의 공동체가 결론은 이거예요. 기쁨으로 이어지라고. 우리의 내 개인의 영성이 하나님께 주시는 기쁨으로 이어지라고. 교회도 마찬가지고 가정도 마찬가지고 결론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이 있느냐라는 거예요. 기쁨이 있느냐. 여러분들 가나 혼인 잔치도 마찬가지예요. 포도주를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됐네.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됐네. 내 인생이 변하여 포도주 됐네. 예. 내 교회가 내 삶이 내 가정이 변하여 포도주 됐네. 그것이 상징하는 바가 뭐냐면 기쁨이 됐다는 거. 주님 주시는 기쁨으로 가득 찬 공동체가 되었다라는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여러분들 세상 사람들도 결혼식에 예, 술이 떨어지면 술이 떨어지면 기쁨이 떨어졌다고 많이 생각을 하잖아요. 물론 우리는 그렇게 생각은 하진 않아요. 근데 그 당시에 유대인들의 문화도 마찬가지였어요. 그 당시에 유대인들의 문화도 술이 떨어지면 예 기쁨이 없어졌다. 기쁨을 잃어버렸다라고 생각하는 공동체가 그들의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걸 보여 주시는 거예요. “야,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마. 더 좋은 포도주. 세상에 알지 못하는 세상보다 더 생각할 수 없는 그 기쁨의 상징인 포도주를 너에게 너의 영성에 너의 가정에 예. 너의 교회에 쏟아부어 줄게.”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시는 장면이에요. 예. 요한복음 2장 3절에 보면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시되 “야, 저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떨어지면에 포도주가 없다 하니 그렇죠. 문제가 발생했어요. 근데 예수님의 어머니는 이 포도주가 없어진 기쁨이 없어진 것에 대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사람이 또 마리아였어요. 그게 감사한 거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합니까? 마리아가 첫째로 첫째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마리아는 기도함으로 해결해요. 기도함으로. 2장 3절에 포도주가 떨어진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시되 “야, 저도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야,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예수님께서 예수님 포도주가 없어요 해결해 주세요. 예수님 어 아직 돼 안 됐는데요? 아니에요. 예수님 저 포도주 없었어? 없어요. 해결해 주세요. 좀 약간 막무관낸 엄마의 모습이죠. 그죠? 그렇지만 이게 기도예요. 기도예요. 예수님 포도주 없어요. 해결해 주세요. 저 예수님만 믿어요. 그리고 기도하고 예. 그리고는 그 종들에게 얘기해요. 2장 5절에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야, 너에게 예수님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해.” 이게 무슨 얘기예요? 말씀에 순종해. 말씀에 순종하면 돼. 말은 안 돼도 순종해. 예. 그래서 그 종들이 어떡합니까? 2장 7절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시되 “한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기까지 채운 거예요. 이 사람들도 온지 몰라요. 근데 물 끝까지 채운 거예요. 맹물을 끝까지 채운 거예요. 그리고 이제 갖다 놓은 거예요. 예. 근데 어느 정도냐면 2장 6절에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 세트들은 돌 항아리를 여섯 시 놓였는지라. 이 여섯 어떻게 합니까? 끝까지 채웠어요. 아기까지. 아기까지 끝까지 채웠어요. 말씀에 끝까지 순종했어요. 예. 그랬더니 어떻게 돼요? 그 모든 것이 포도주가 돼요. 포도주가 돼요. 예. 다른 사람은 몰라요. 근데 순종해 본 사람만이 알아요. 2장 15절에 예수께서 이 협족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심에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그렇죠? 예. 저는 바로 우리의 가정에 우리 성도들의 간증이길 원해요. 세상 사람들 이해 못 하는데 우리가 기도하고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 기쁨이 우리 가정에는 넘치는 바로 그것을 경험하는 예. “야, 너희는 이해 못 해. 내가 설명해도 이해 못 해. 근데 우리 주님이 하신 일이 이거야. 기쁨으로 그냥 이빨이 채웠어. 이빨이 그냥 가득 채웠어요. 가득 채웠어요.” 그게 우리 주님이 우리의 삶 속에 우리 교회의 가정에 공동체에 행하시는 역사다라는 거죠. 그래서 얻게 되는 게 그거예요. 두 번째로 은혜로 성령으로 변화되게 하심을 경험하게 되는 거죠. 여러분, 이거는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성령으로 된 거예요. 은혜로 된 거예요. 이 종들은 이해해요. 이것을 본 사람들은 이해해요. 제자들은 이해합니다. 이해합니다. 예. 이 하나님이 행하시는 그 놀라운 역사 물이 포도주가 돼. 그래서 나중에 그 사도 요한은 참 똑똑한 사람이에요. 있지 않고 이 물이 들어가. 물에 이런 역사가 있어. 그럼 3장을 써야지. 그래서 요한복음 3장 5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여기서 물을 넣쳐. 물을 넣죠. 그러면서 싹 껴놓는 게 뭐냐면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우리는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얘기하는데 그렇죠.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어. 이 참 사도 요한이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에요. 쫙 얘기하면서 예, 이렇게 표현하는 그런 모습. 예. 근데 맞아요. 맞아요. 주님의 은혜 아니면 안 돼요. 주님의 은혜 아니면 아무것도 안 돼요. 거기에 성령의 역사하심이 아니면 아무것도 안 돼요. 아무것도 안 돼요. 여러분들 우리 앞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세요? 기도하세요. 기도하세요. 기도하라고 문제가 발생하는 거예요. 그리고 순종하세요. 순종하세요. 우리 주님은 이빨이 채우기 원하시는데 우리들은 믿음이 없어서 “아이씨 뭐라는 거야? 대충 갖다 주지.” 이러면 안 돼요. 가득 채우고 믿음으로 바라보며 성령의 역사하심을 바라볼 때 거기에 예, 우리 예수님이 행하시는 모든 것을 보게 되고 그것이 우리의 간증거리가 되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도구가 되어진다라는 거죠. 저는 우리 성도들이 남 얘기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이게요. 예. 성령의 역사하심이 남 얘기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가정의 간증이길 원해요. 예. 우리의 가정의 간증이길 원해요. 그러라고 문제를 주신 거거든요. 예. 우리의 간증이길 원해요. 그래서 정말 기쁨으로 가득 채우시는 기쁨으로 가득 채우시는 우리 가정의 공동체 기쁨으로 가득 채우시는 주님 때문에 우리가 너무 기쁘기를 원해요. 너무 기쁘기를 원해요. 예.
하여튼 중요한 것은요.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기쁨으로 가득 채우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가정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신다라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들 우리가 꼭 기억해야 되는 게 뭐냐면 우리의 가정이 기쁨으로 가득 차려면 기쁨으로 가득 차려면 한 가지를 행해야 돼요. 그건 뭐냐면 그건 뭐냐면 십자가예요. 십자가예요. 예. 항상 많은 분들이 “야, 너 왜 결혼하려고 하니?” 그러면 사랑받기 위해서 결혼하려는 사람들이 되게 많아요. 사랑받기 위해서. 근데 그런 목표로 결혼하면 그건 실패해요. 왜냐면 우리 결혼을 만드신 분이 누구예요? 우리 예수님이잖아요. 그렇죠? 근데 그 결혼을 만드신 분이 우리에게 얘기하세요. “그냥 너 결혼하에 성공하고 싶고 기쁨이 가득 차길 원하니? 그러면 내가 십자가에서 피흘림을 기억해야 돼.”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됐네라는 그것이 예수님의 보혈이거든요. 예수님의 보혈이 어떻게 된 거예요? 예수님 십자가 지셨을 때 보혈이 된 거예요. 예수님 십자가 지셨을 때 십자가 없이는 안 돼요. 예. 그 결혼은요. 결혼은 사랑받기 위해서 결혼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기 위해서 결혼하는 거예요. 사랑하기 위해서. 예수님처럼 결국엔 내가 십자가 지고 피흘리기 위해서 결혼하는 거예요. 그것이 여러분의 목표가 되고 피흘리는 삶을 결혼 생활을 이어갈 때 결국에는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그런 놀라운 역사가 여러분의 가정에 간증거리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 저도 쉽게 얘기하고 싶어요. 사랑받고 싶어서 결혼하세요. 결혼하면 좋아요라고 쉽게 얘기하고 싶지만 절대로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예. 제가 부부 세미나도 인도도 굉장히 많이 해 보고 하지만 내리는 결론은 그거예요. 내리는 결론은 뭐냐면 내가 어떻하면 사랑할까요? 내가 어떻게 하면 내가 저들 십자가를 질까? 그 십자가를 질 때에만이 십자가를 질 때야만이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것을 경험할 수가 있어요. 다른 답이 없더라고요. 다른 답이. 예. 그 때문에 내가 저에 대한 십자가가 뭘까? 내가 저에 대해서 십자가가 뭘까? 그래서 내가 이렇게 사랑하기 위해서 결혼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래요. 그럴 때 여러분은 아, 우리 하나님 주신 결혼의 목표가 기쁨이 맞구나. 예. 기쁨을 위해서 주님께서는 항상 법대로 행하셨구나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여러분의 가정도 물이 변화에 포도주 되는 그런 간증거리가 넘치기를 원합니다.
세 번째는요. 성전 정화가 필요해요. 예. 그 세례 요한이 쓴 그 요한복음 2장 지금 하고 있는데 참 2장이 길어요. 저는 2장이 짧을 줄 알았는데 2장 읽으면 읽을수록 그 안에 내용이 엄청 많아 길어요. 근데 그 안에 들어간 사건이 뭐 하냐? 그 중에 사건이 뭐 하냐면 성전 정화 사건이에요. 예. 예수님이 장사하는 사람들을 들어엎어요. 장사 못 하게 하고 성전을 깨끗하게 청소를 하십니다. 여러분들 예수님은 몇 번 성전을 정화하셨을까요? 몇 번 하셨을까요? 이 성전 정화 사건은 힌트를 주자면 마태복음에도 써 있고요. 마가복음에도 써 있고요. 누가복음에도 써 있고요. 요한복음에도 써 있어요. 근데 제가 아까 얘기했죠. 순서 그 요한은 역사적으로 쓴 기적 역사적으로 쓴 거 아니기 때문에 예. 예수님이 첫 번째로 행하신 기적이지만 언제 행하신 기적인지 모른다라고 얘기했어요. 그렇죠? 그렇다면 예수님이 행하신 이 성전 정화 사건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성전 정화 사건은 몇 번째 성전 정화 사건일까요? 예. 옛날에는요. 저는 이런 게 되게 중요했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자랑하고 싶었어요. 이 컴퓨터 사이즈 전공한 사람들은요. 따지는 거 되게 좋아해요. 그래서 여기에 무아가 나무가 언제 폈기 때문에 근데 이때는 무화가 나무 예수님이 저 그 저주했기 때문에 근데 요번엔 없네. 그럼 어 이건 다른 사건이네. 막 이런 거 따지는 거 좋아하면서 아 예 성전 정화 사건이네 번이네. 아니야. 세 번이네. 두 번이네. 아니야. 한 번이네. 이런 게 되게 중요했었어요. 여러분들 예수님 성전 정화는 몇 번 하셨을까요? 몇 번 하셨을까요? 더 이상 저한테는 그게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한 몇 번 했는지도 따지고 싶지도 않았어요. 설교 준비하면서 읽어보면서 여러분들이 자랑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근데 한 가지 중요한 것만은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그건 뭐냐면 언제든지 예수님이 성전이 지저분한 걸 보면 그 꼴을 못 보신다는 거예요. 언제든지 예수님은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지저분하게 놔두는 인간들을 가만히 안 놔둔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하나님 몸된 교회를 뒤집고 없기를 원하세요. 예수님은 하나님 몸된 교회가 깨끗하게 원하세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도하는 집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 교회가 깨끗하기를 원하세요. 그래서 몇 번 하셨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예, 우리가 인생 속에서 하나 교회 청소를 몇 번 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 몸된 교회가 지저분하고 더러운 부분이 있고 거룩함을 망가뜨리는 부분이 있다면 우린 당연히 뭐 해야 되는 거예요? 일어나 청소해야죠. 그게 답이에요. 예. 일어나 청소하는 게 답입니다. 그렇죠? 꼭 제가 이런 설교하고 나면 저한테 이메일 보내신 분들 있어요. “목사님 제가 따져 보니까 몇 번 했더라고요.” 아마 맞을 거예요, 여러분들이. 아마 여러분이 맞을 거예요. 예. 근데 어느 순간 그게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그 예수님의 마음이 중요하더라고요. 예.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몸된 교회가 지저분하고 하나님의 몸된 교회가 거룩한 길을 걷지 아니하고 하나님 몸된 교회가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엉뚱한 길을 걸어갈 때 몇 번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말 “야 이러면 안 되지.” 예. 하나님 몸된 교회를 일어나서 청소하자. 예. 청소하자. 하나님 몸된 교회 이러면 안 되지.라고 그렇게 나오는 우리들이기 원해요. 특별히 하나님의 몸된 교회는요. 우리 몸을 상징해요. 우리 몸을 상징해요. 예. 그래서 고린도서 3장 16절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에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니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이제 하나님의 몸된 교회가 더럽다고 생각하고 치워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에는 내 몸까지도 내 몸까지도 생각하는 거예요. 왜냐면 내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예.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예. 그래서 고린도서 6장 19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예.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것이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다라는 거예요. 우리 이것이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바다라는 거죠.
이제 여러분들 이제는 우리 몸도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의 몸도 깨끗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오늘 말씀 가나의 혼인 잔치를 우리에게 보여 주시면서 우리 신앙의 정도가 어떠한지를 돌아보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신앙의 정도가 개인으로 볼 때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런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연한 것을 가지고 싸우고 흔들리고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당연한 것을 가지고 예하게 결정하고 당연하게 주님 원하시는 기쁨의 길을 걸어갈 줄 아는 우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정말 우리가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기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왜 말씀에 순종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간단한 모든 문제를 정확하게 하나하나 해결함으로 인하여 우리 가정에 내 삶에 우리의 공동체 속에 우리 교회가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는 우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정말 우리에게 기쁨으로 가득 찬 공동체를 허락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바라봅니다. 우리 변화에 포도주 되는 그런 놀라운 역사. 근데 그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미 주님의 목표에 그것이 있음을 바라보며 우리는 우리 변화의 포도주 되기 위해 기도하고 말씀 보며 성령님 붙들며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그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우리 안쪽에 잠쪽에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기억하며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럼으로 말미암아 정말 우리의 몸을 통해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오늘 말씀에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우리 다 같이 일어나셔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 하리라. 좁은 물 좁은 문 좁은 길 나의 십자가지고 >> 나의 가는 이길 >> 나의 가는 이길 끝서 나는 주님을 보이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 주시니 >>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일어나 달려가리라. 주의 영광 못 땅을 때 나는 일어나 노래하리. 내 사모하는 주님 온 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내 사모하는 주님 온 세상에 부주 내 사모하는 주님 온 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영광의 원이시라. 영광의 >> 영광의 왕이시라시라 영광의 왕이시로 >> 지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부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오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화감동 교통하심과 역사하심이 이제 우리 모두에게 깨달으라고 가나의 혼인 잔치를 보여 주신 주님 때문에 먼저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공동체 우리의 모든 것을 제대로 점검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가정에게 우리의 공동체에게 우리에게 기쁨이 넘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쏟아부어 주시는 그 주님을 경험하고 간증하고 체험하는 바로 그러한 영락의 성도들 되기를 소원하는 바로 그러한 예수로서 궁접한 구질령한 모든 성도들이 되기를 소원하는 바로 우리 영락의 성도님들 머리머리 위해 우리 주신 그날까지 영원토로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 아멘. 주의 영광 주님 나를 주라 찬송 성령 완전 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