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스영락장로교회 The Korean Young Nak Church of Dallas

2.15.2026 [달라스 영락장로교회] 주일설교 | 명치호 목사 | 제대로된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 느헤미아 7장 3절

명치호 목사 · 2026-04-24
본문
느헤미야 3

1.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2.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 3. 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4.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아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하였…

설교자
명치호 목사
날짜
2026-04-24
설교 길이
43 분
설교 영상 재생
요약

오늘 설교의 핵심은 '제대로 된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을 완성한 후, 성벽을 지키는 파수꾼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우리 각자가 가정과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예배를 우선시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헌신과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연결된 예배가 될 때, 진정한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성경 구절
설교 구조
제대로 된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1
우선 순위 점검
예배가 최우선이다
시편 127편 1절
2
하나님을 경외함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느헤미야 7장 2절
3
헌신과 충성
충성된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고린도서 4장 2절
4
새로운 비전
하나님 비전을 가져야 한다
느헤미야 7장 4절
5
기도하는 사람
기도로 변화되어야 한다
느헤미야 1장 4절
우리 모두가 파수꾼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길 바랍니다.
전체 스크립트

안녕하세요. 갑자기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허리에 힘을 주지 못하더라고요. 갑자기. 그래서 앉아서 있는 건 괜찮아요. 예. 이제 오늘은 느헤미아서 뒷부분을 저희가 보게 됩니다. 1장부터 6장까지는 모든 게 완성이 되죠. 그죠? 그러니까 우리가 이때까지 성전을 건축했어요. 그죠? 그리고 성전을 건축했는데 성벽이 없다 보니까 적들이 쳐들어오고 해서 이제 느헤미야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벽을 완성을 합니다. 근데 성벽을 완성하면 뭐예요, 여러분? 성벽을 완성하면 성벽만 너그런히 놔두면 돼요, 안 돼요? 그 성벽에 누가 필요할까요? 누가 필요할까요? 성벽을 지키는 파수꾼이 필요하죠. 바로 그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3절의 말씀 보면,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또 예루살렘 주민이 각각 자기가 지키는 곳에서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은 편을 지키게 하라 하였노니” 그렇죠. 느헤미야가 성벽을 적고 그리고 자기 집 앞에 있는 집 사람들에게 이제는 파수꾼이 되라라고 말씀을 해 주시는 부분이 오늘 말씀입니다. 여러분들, 파수꾼이 있어야 지킵니다. 특히 우리의 신앙은 우리의 가정은 우리 스스로는 우리 교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누구냐면 제대로 된 파수꾼입니다. 바로 그것을 느헤미야는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래서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네 집 앞에 있는 그 성벽에 파수꾼이 되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여러분들, 우리도 제대로 된 파수꾼이 되기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교회, 가정,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바로 그런 우리들이 되길 원해요.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제대로 된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라는 겁니다. 근데 제대로 된 파수꾼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로는 우리가 우선 순위에 점검이 필요하다. 뭐를 먼저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되겠죠. 그죠? 네. 근데 느헤미야는 영적인 파수꾼으로서는 뭘 해야 되는지를 7장에서 우리가 보게 되면 영적인 파수꾼으로서 우선 순위를 보게 돼요. 느헤미야의 우선 순위를 보게 됩니다.

첫째로 예배를 우선해야 한다라는 겁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다 완성한 후에 7장에서 1절부터 제일 먼저 뭐를 하느냐? 성전이 건축되면 문짝을 달고요. 문직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웁니다. 레위 사람들이 누구예요? 제사장이죠. 그렇죠? 느헤미야는 예배를 위해서 제사장을 먼저 세우는 것을 보게 돼요. 근데 이때만이 아니에요. 성벽을 세울 때부터 그랬어요. 성벽을 세울 때부터 느헤미야는 먼저 챙기는 게 뭐였냐면 예배였어요. 그래서 앞부분에 느헤미야 3장에 가서 보면 그때 대제사장 엘리야와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했다라고 얘기합니다. 할 일도 많은데 느헤미야는 제일 먼저 챙긴 게 뭐냐면 양이 드나드는 문을 만드는 거였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을 예배하려면 재물이 거룩해야 되거든요. 흠이 없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데를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제사하는 재물이 드여지는 양문, 그렇죠? 그걸 먼저 세운 거예요. 왜요? 예배가 우선이었기 때문에 예배가 우선이니까 그게 항상 느헤미야는 우선순위였어요. 예배가 우선이다.

그리고 나중에 느헤미야 뒷부분에 가서도 항상 느헤미야가 신경 쓰는 건 예배였어요. 그래서 느헤미야 13장에 가면 지금 뒷부분이죠. 13장에 가면 그때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을 사고 곡식단을 나기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음식을 팔기로 그날에 내가 경계하였다. 안식일에 예배해야 되는 날에 뭘 팔고 있는 거예요. 느헤미야가 막아선 거죠. 왜요? 예배가 우선이기 때문에 여러분들, 우리 삶에 최고의 우선 순위는 예배가 되고 있습니까? 네. 아니면 직장생활에서 성공이나 사업의 번영이나 건강이나 주말 여행이나 뭐 이런 것이 여러분의 우선 순위가 되고 있지 않은지를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특별히 영어로 보면 종교라는 게 '릴리전'이죠. 릴리전, 그죠. 영어를 말하면 종교를, 근데 이게 라틴어에서 온 거예요. '릴리지오'라는 나라에서 왔는데 이게 묶긴다라는 뜻이에요. 묶는다. 그러니까 종교라는 것은 신과 그 성도가 묶이는 것을 얘기해요. 특별히 무엇을 통해서? 예배를 통해서. 그러니까 우리가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과 하나로 묶이게 되어진다라는 겁니다. 예. 바로 그것이 필요한 거예요. 왜냐하면 시편 127편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다”라고 말씀하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아무리 파수꾼이 잘해도 혼자 힘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같이 파수꾼이 되어 주셔야 돼. 그러려면 어떻게 돼야 돼요? 예배가 되어져야 된다. 제대로 된 예배가 되어질 때 하나님이 함께 파수꾼이 되어 주시는 거예요. 왜요? 예배를 통해서 우리가 경험해야 되는 게 뭐냐면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하나님과의 묶임이 되기 때문에 그래요.

예.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점검해야 되는 것은 나의 예배는 정말 하나님과 하나로 묶여진 예배인가? 나의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가 경험되어지고 우리의 예배를 통해서 정말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내가 파수꾼을 서지만 결국에는 파수꾼을 서시는 분은 우리 하나님이다라고 간증할 수 있는 그런 예배자가 되는지를 우리가 생각해 봐야 돼요.

특별히 데이비드 핑크, 세계적인 정신 위생학자가 그런 얘기를 해요. 사람에게는 네 가지가 꼭 필요한 게 있대요. 정신 건강을 위해서 네 가지가 꼭 필요한데 첫째가 뭐냐 하면 일을 해야 된대요. 예. 그래서 일학 천금 복권에 당첨된 분들이 정신적으로 많이 앓고 있는 이유가 일을 안 하기 때문이래요. 그러니까 정신 건강하려면 일해야 된다. 둘째는 쉬어야 된대요. 건강하려면 쉬어야 한다. 쉬어야 한다. 그리고 세 번째는 사랑해야 된대요. 사랑하는 사람과 어울려 살아야 마음이 안정이 된다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라고 얘기해요. 이 네 가지가 우리의 정신 건강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얘기를 하는데요. 일하는 것, 쉬는 것, 사랑하는 것, 예배하는 것. 근데 이분이 모르는 게 한 가지가 있어요. 그게 뭐냐면 이 네 가지는 이미 뭐에 속해 있는 거냐면 우리의 예배 속에 속해 있어야 하는 부분이에요. 우리의 일도 세상에서 일하는 모든 것도 우리의 예배 속에 속합니다. 쉬는 것, 안식일을 지키는 거잖아요. 쉬는 것도 우리의 예배에 속해 있어요. 그리고 사랑하는 것도 예배에 속해 있는 거 맞아요. 그리고 예배. 그러니까 이 네 가지가 다 이미 우리의 예배에 속해 있어요. 그게 사도 바울이 우리 삶에 원하는 거예요. 사도 바울이. 그래서 로마서 12장 1절에 보면 “그러면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재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얘기합니다. 이 네 가지가 우리 삶 전체가 예배가 될 때 그것이 바로 우리가 드리는 영적 예배가 된다라는 거예요.

근데 중요한 건 뭐냐면 우리의 삶 전체가 예배가 되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거룩한 산재물로 드려야 한다라는 거죠. 우리 삶 전체가 거룩한 산재물이 돼야 돼요. 그게 오늘 두 번째 포인트로 이어지는데요. 제대로 된 파수꾼은 두 번째는 하나님을 경외함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라는 거예요. 느헤미야는 사람을 세울 때 인물이나 실력이나 학벌을 보고 세우지 않았어요. 오늘 말씀 2절에 보면 “내 아우 하나님 영문에 관한 하나냐가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 뛰어난 자다”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 뛰어났다. 경외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건 뭐냐면 거룩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라는 거예요. 거룩한 산재물이 되는 삶 전체가 거룩한 산재물이 되는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라는 거예요. 바로 하나님은 이것을 우리에게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그래서 느헤미야는 계속해서 느헤미야서에서 읽어보면 이런 거 강조해요. 10장 30절에 보면 “우리의 딸들을 이 땅 백성에게 주지 말라. 우리 아들들을 위하여 그대 딸들을 데려오지 말라. 왜요? 우상숭배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할 거니까.” 그래서 늘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거룩한 삶, 결혼을 똑바로 하는 것 이걸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느헤미야가 이렇게까지 해요. 그 거룩함을 위해서 13장 25절에 보면 “내가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그들 중 몇 사람을 때립니다.” 왜요? 이방인과 결혼하니까 결혼식장에 가서 깽판 놓은 거예요. 때린 거예요. 이 사람 대단해요. 그죠? 목사가 아니길 다행이지. 술 맡은 관원이에요. 아직은 이 사람이 목사 아니에요. 목사님 그러면 안 되는데 이 사람은 뭐 관원이니까 때려요. 근데 그걸로 끝나지 않고 뭐 합니까? 가서 머리털로 뽑아버려요. 이거 한국 사람들 그 딸들이 나가지 못하도록 막 가위 갖고 와 뭐 이런 거 다 여기서 온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그죠. 왜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거룩함이 파수꾼으로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 파수꾼이 잘 지켜야지 뇌물 받고 열어주면 안 되잖아요. 그렇죠? 거룩함을 지키는 것,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거룩함을 지키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셔야 돼요.

우리 중국, 일본, 한국 사람들은 다 젓가락을 씁니다. 그죠? 근데 희한하게도 옛날에 우리 한국분들은 노젓가락을 썼어요. 돈이 있으면 은젓가락을 썼죠. 왜요? 음식을 먹을 때 독이 있나 없는가를 먼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의 영적 레벨이 돼야 돼요. 우리는 늘 깨어 있어서 모서 먹고 마시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아가기 전에 이것이 나의 영적인 독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미리 알고 살아가는 그러한 모습이 제대로 된 파수꾼의 모습이 된다라는 것이죠.

세 번째로는 파수꾼의 우선 순위는 헌신과 충성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라는 거예요. 여러분들, 파수꾼이에요. 여러분들이 한번 상상을 해 보세요. 성에서 파수꾼으로 이렇게 서 있는데 파수꾼이 와야 되는 시간에 안 와. 그래서 그 파수꾼이 벼워요. 그 성은 안전할까요? 아니죠. 제대로 된 헌신이 필요해요. 그리고 충성이 필요합니다. 충성이 필요하다는 건 뭐냐면 항상 빠지지 않고 매순간 그 자리를 지키는 충성이 있을 때 그 사람이 제대로 된 파수꾼이에요. 헌신과 충성이 없다면 예, 가끔 가다 빠지고 하면 그 사람 어떻게 믿고 그 성을 어떻게 믿겠어요? 그렇지 않아요? 제대로 된 파수꾼은 헌신과 충성이 있어야 한다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 가정을 지키는 파수꾼,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려면 우리는 교회를 섬기고 있어야 돼요. 헌신하고 있어야 돼요. 그리고 충성하고 있어야 한다라는 거죠. 그렇죠? 근데 그 당시에 예루살렘 백성들은 정말로 헌신된 사람들 맞아요. 왜냐하면 느헤미야서 7장 3절부터 보면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또 예루살렘 주민이 각각 자기가 지키는 곳에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은 편을 지키게 하라”라고 얘기를 했는데 그다음에 웃겨요. 자기 집 앞을 지켜야 되잖아요. 근데 그 성읍은 광대하고 주민은 적으며 가고 미쳐 건축하지 못하였더라. 그까 아직 집도 자주 짓지도 않았는데 파수 먼저 하는 거예요. 아직 자기 집도 완성도 안 됐는데 이들은 먼저 성읍을 지키기 위해서 헌신하는 이들의 모습을 우리가 보게 되어집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교회의 헌신이 우선이었어요. 우선이었어요. 어떤 면에 있어서는 바로 이것이 우리가 본받아야 되는 부분이다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들은 자기 집도 완성이 안 됐는데 갖다 바쳐요. 70절에 보니까 어떤 족장들은 역사를 위하여 보조하였고 총독도 돈을 내요. 청독도 금천 드라크마와 대저식과 제사장의 보 530번을 곡간에 드리고요. 또 어떤 족장은요? 금 이만 드라크마와 은 2,200 만해를 역사 곡간에 드리고 그 나머지 백성, 그 2만 드라카마와 금 2천만 제사장의 의복 67번을 드립니다. 그 점점점 높은 사람들부터 백성들까지 다 자기 집도 지어지지도 않았는데 이들의 헌신의 모습을 보게 되어지는 거죠. 근데 왜 이들은 이렇게까지 했을까요? 감사해서예요. 감사해서 왜냐면 하나님의 성전인 예루살렘에 우리를 하나님이 이끌어 주셨기에 단지 그거예요. 와 보니까 집도 없어요. 안전하지도 않아요. 할 일이 태산이에요. 그러나 하나님 백성 삼아 주신 그것만으로 이들은 감사한 거예요.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왜 우리는 헌신과 충성을 우선으로 하며 살아야 될까요? 그 이유는 날 구원해 주신 십자가의 은혜 때문이에요. 날 구원해 주신 십자가의 은혜 때문에 우리 모두가 주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하는 우리들이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교회를 이렇게 연구하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의 교회들이 헌신하는 사람은 5%도 안 된대요. 5%도 안 된대요. 우리 교회는 어떨지 모르겠어요. 숨 모임 참석하는 걸 헌신으로 치자면 엄청난데 문제는 이제 끝나고 치우고 뭐 그런 것 또 헌신은 또 안 하죠. 뭐 하여튼 우리가 좀 더 주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헌신하는 어떻게 헌신하고 있는가를 돌아보기 바랍니다. 바로 그 헌신하는 사람에게 구할 것은 또 뭐냐 하면 고린도서 4장 2절에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라고 얘기합니다. 충성.

그래서 느헤미야가 사람을 세울 때에도 이걸 본 거예요. 그래서 느헤미야 7장 2절에 보면 “내 아우 하나님 영문에 관한 하나냐가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었다”라고 말씀합니다. 그죠? 아까는 다른 사람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이었고 여기 보면 충성이었다라는 거예요. 충성. 충성이라는 건 다른 게 아니에요. 자기 자리를 지키는 거예요. 그리고 그 자리를 지키면서 자기가 해야 될 일을 충성되게 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 일을 가지고 막 말고 알고 하는 게 아니라 자기의 일에 자리를 지키며 충성하는 것, 바로 주의 몸 된 교회는 그 파수꾼이 교회를 세웁니다. 교회를 세워요.

충성. 교회는요. 뭐 이렇게 특별이라는 단어를 앞에 쓰기를 좋아해요. 특별 새벽 기도 뭐 이런 거 있잖아요. 왜 그럴까요? 그래야 오니까 특별히 붙어야 오는 거. 특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은 충성과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예. 특별 새벽 기도에 오는 게 아니라 그때도 오지만 왜 특별히 안 붙어도 오는 그런 사람이 충성스러운 사람이다라는 것을 기억해야 돼요. 예. 그리고 무엇보다도 직분을 맡은 자들은 충성해야 합니다. 그 당시에 그 사람들은 충성했던 것 같아요. 예. 예루살렘 성이 텅텅 비어 있어요. 근데 1절에 보니까 느헤미야서 11장 1절에 보니까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했어요. 거주 살린 태상 같은데 지도자라는 직분 때문에 이들은 충성했습니다.

저희 교회 직분자들 이렇게 보면 참 열심히 교회 봉사를 하는 것 같아요. 보기가 되게 좋은 것 같아요. 감사하죠. 제가 아프고 나니까 제일 부러운 게 뭐냐면요. 걸어다니면서 교회라는 사람이 제일 부러워요. 교회 다니면서 그 걸어다니면서 교회라는 그분이 정말 부러워요. 야 나도 단면, 예 나도 할 수 있을 텐데. 예. 근데 교회 지도자가 누굽니까?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 스탠더드 지도자 누구예요? 장로님, 장로님까지입니까? 아니면 안수 집사님, 권사님이에요? 아니, 우리 주님 보시기에는 우리 모두가 지도자예요. 왕 같은 제사장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충성되게. 근데 이게 쉽지 않아요. 그 당시에도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2절에 보니까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다”라고 얘기하죠. 예.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자원하는 거, 이게 가장 귀한 거거든요. 자원하니까 그게 귀해서 그걸 보는 사람들이 복을 빌어 주는 거예요. 참 귀하다.

근데 문제는 뭐냐면 자원한 사람들이 인압하지가 않았어요. 예. 사람이 너무 커 가지고 너무 커 가지고요. 인나프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할 수 없이 우리가 1절로 다시 한번 올라가 보면 어떻게 한 거예요? 1절 윗부분에 한 구조 올라가면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 거주하였고 그 남은 복수는 제비 뽑아서 있게 됐어요.” 그러니까 어떤 분은 자원한 사람들은 축복받은 받아 가지고 막 축복해 주는데 이제 안 되니까 제비 뽑은 사람들은 기분이 아마 더러웠을 것 같아요. 아이 자원할 걸. 이왕이면 자원할 걸. 전 여러분들이 그게 뭔지를 알았으면 좋겠어요. 자원이 축복이다. 자원해야 된다. 예. 자원 안 하고 억지로 채워지는 그런 헌신이 아닌 자원하는 헌신자가 우리 교회는 가득 차기를 원합니다.

여러분들 신앙생활의 가장 어리석은 모습이 뭐냐면 부담 없이 신앙생활 하려고 하는 거예요. 부담 없이. 예. 신앙생활은 부담이 없을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사탄이 항상 공격하기 때문에. 그 때문에 편하게 봉사한다. 더 편하게 헌신한다. 충성이라는 단어 쓰기가 아깝겠죠. 그죠? 예. 문직기로서 파수꾼으로서 우리가 헌신과 충성을 우선으로 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 제대로 된 파수꾼은 새로운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라는 거예요. 오늘 말씀 7장 4절에 보니까 그 성읍은 예루살렘 성읍이요. 다 하고 나니까 너무 커. 광대해. 근데 주민은 적어요. 가고 미쳐 건축하지 못했어요. 그 안에서 이런 컴플레인하는 사람도 있었을 거예요. 괜히 큰 성업을 져 가지고 성벽은 왜 이렇게도 크게 했어? 예. 사람도 없는데 쓸만하게 그냥 딱 알맞게만 하지. 막 이런 컴플레인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거예요. 그러나 그건 하나님 원하시는 게 아니에요. 그렇죠? 여러분들이 파수꾼이 돼서 그 넓은 성읍을 이렇게 밤에 혼자 파수꾼이 돼서 그 성읍을 보면 제대로 된 파수꾼은 기도가 나와야죠. 하나님이 큰 성읍 허락하며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이제 채워 주세요. 주님 채워 주세요. 예. 주님이 성업을 통해서 뭘 하기 원하십니까? 크게 하여 주세요. 부흥케 하여 주세요. 이 성업을 사용하여 주세요.라는 이런 기도가 나오는 게 당연한 제대로 된 파수꾼이지. 이 큰 거를 왜 나한테 그냥 맡겨 가지고 피곤하게 만들어? 이거는 제대로 된 파수꾼이 아니죠. 예.

마찬가지예요. 우리도 교회를, 가정을,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파수꾼인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넉넉하게 뭔가를 주셨다면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꿈을 꿔야 돼요. 비전을 가져야 돼요. 비전을 가져야 돼요. 그래서 그 비전과 하나님의 비전과 일치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때문에 기쁨이 넘치는 바로 그러한 파수꾼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뭐가 이어져야 되냐면 세 번째로 기도하는 사람이 돼야 돼요. 기도하는 파수꾼은 기도하는 사람이 제대로 된 파수꾼이다라는 거예요.

여러분들, 우리가 느헤미야를 보면 기도로 시작한 게 이렇게 된 거예요. 느헤미야 한 사람의 기도로 모든 게 시작된 거예요. 뭐냐면 왕을 섬기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 우리 백성들이 예루살렘에서 성읍이 없 성벽이 없어 가지고 고생한다는 얘기를 듣고 느헤미야가 혼자 기도하기 시작한 거예요. 근데 이 한 사람의 기도가 이 한 사람의 기도가 엄청난 역사를 잃은 거죠. 한 사람의 기도. 이 한 사람의 기도가 그리고 그 기도가 모여서 엄청난 역사를 이루어 가는 것을 보게 돼요. 세상을 바꾸는 예루살렘을 바꾸는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백성을 바꾸는 그 기도로 이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도가 얼마나 귀한지 몰라요. 저는요. 이렇게 설교하는 사람으로서 제가 감사하게 여기는 것 중에 하나가 여러분들이 저희 안에서 예배를 위해서 기도하는 분들을 보면 감사해요. 예. 여러분의 기도 덕분에 내가 이렇게 설교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예, 감사해요. 한 사람의 기도.

그런데 느헤미야 기도는요 좀 특이한 게 있어요. 느헤미야서에 나온 기도는 그분에 대해서 좀 보려고 하는데 느헤미야가 보면요. 그날 스무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고 붉은 배옷을 입고 티끌을 물어 쓰고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이날에 나 4분은 그 자 제자리에 서서 그 자복하고까지 보죠. 2절까지 보면 이들은 이제 모여서 자복합니다. 회개하죠. 회개 기도하고 있는 거예요. 이들이 그렇죠. 모여서 근데 재밌는 게 뭐냐면 이미 회개하고 있는데 3절이 재밌어요. 이미 회개하고 있는데 이날에요. 그 제자리에 서서 그대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옆에서 낭독을 해요. 안 그래도 지금 회개하고 있는데 1분은 율법책을 낭독을 해요. 이게 무슨 뭘 의미해요? 회개하고 있는데 또 회개할 제목을 주는 거예요. 계속해서 보통은 회개하면 뭐 용서했다 뭐 이렇게 나와야 되잖아요. 근데 느헤미야의 기도의 특징은 뭐냐면 느헤미야에서 나온 기도의 특징은 회개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회개할 제목을 주는 이게 기도의 특징이었다. 그래서 나머지 낮은 죄를 자복하고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고 있었다라는 거예요. 왜 이렇게 할까요? 이게 기도가 느헤미야서에 나온 기도가 뭔지를 우리에게 가르치는 거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게 뭐냐면 느헤미야서에 나온 기도는 변화될 때까지 회개하기를 원하는 기도였어요.

보통 우리는 기도는 뭘 제일 중요시 여기냐면 응답을 제일 중요시 여겨요. 그렇죠? 응답을 제일 중요시해요. 근데 스웨스 리스도 그런 얘기를 했지만 기도 응답이 나에게 필요한 게 아니라 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원하는 기도라는 거예요. 내가 변화되는 것, 바로 그게 느헤미야에서의 기도의 그래서 계속해서 말씀을 주고 있는 이유가 뭐냐면 변화라는 거예요. 회개로 끝나는 게 아니라 변화하라. 변화하라. 그렇죠? 예. 바로 우리의 기도도 그래야 돼요. 우리의 기도도 이제부터는 응답도 중요하지만 내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 어떻게 변화되기 원합니까? 하는 그렇게 회개의 기도로 이어지는 바로 그 모습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라는 거예요.

어느 교회 새로 된 여전도의 회장님이 목사님께 여쭈었어요. 목사님, 어떻게 하면 이 일을 잘할 수 있을까요?라고 여쭤봤어요. 그럼 보통 목사님은 뭐 기도하세요라고 얘기하면서 여전도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겠습니다. 뭐 이렇게 기도하잖아요. 근데 이 목사님은 좀 특이하게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그분한테 뭐라고 얘기했냐면 기도할 때요.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나에 대해서 나를 좀 더 정확히 볼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얘기를 한 거예요. 그 어떤 면에서 여전도 회장님이 나빴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왜? 야, 네 자신을 좀 알아. 뭐 이런 얘기일 수도 있잖아요. 근데 이분은 그렇게 기도했어요. 하나님, 나를 좀 제대로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하나님, 나에 대해서 볼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이분은 기도한 거예요. 근데 이분이 이렇게 기도하면 할수록 이분이 경험하게 되는 게 바로 그거였대요. 아, 여전도의 회원들이 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나 때문이구나. 내가 문제가 있었구나. 내가 변화되는구나. 예. 나의 섬김이 문제였구나. 나의 말이 문제였구나. 그러면서 회개가 절로 나오더래요. 회개가.

그 하나님이 나를 보게 하시는데 내가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가를 보게 하시면서 회개가 나오더래요. 근데 회개하면 할수록 회개하면 할수록 여전회가 변화되요. 회개하면 할수록 내가 변화되는데 저쪽에서 오히려 함께 변화되는 것을 보게 되더래요. 여러분들 그게 우리의 기도이길 원해요. 성령님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 나를 볼 수 있기를 원해요.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 바로 그것이 그래서 어떻게 우리가 변화돼야 되는지 그것을 볼 수 있는 우리에게 기도이길 원합니다.

여러분들, 야곱이 야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했잖아요. 그죠? 너무나도 잘 알잖아요. 근데 하나님이 야곱의 환도뼈를 쳐 가지고 야곱이 쩔뚝발이가 되었어요. 그러니까 야곱은 기도하고 결론이 뭐였냐면 쩔뚝발이가 된 거예요. 야곱은 쩔뚝발이가 되기를 원해서 기도한 적 한 번도 없어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야곱은 기도한 이유는 자기 형 에서가 변해서 자기 죽이지 않고 살려 주기를 원하는 건데 하나님이 야곱에게 응답하신 건 그를 쩔뚝발이로 만들어 버리신 거예요. 어떻게 보면 원망도 할 수 있을 수 있어요. 그렇지 않아요? 근데 하나님 원하신 게 그거였어요.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원하신 건 뭐냐면 야곱이 변화되는 거였어요. 야곱이 자기 힘만 의지하면서 하는 그 야곱이 이제는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살도록 만들어 버리신 거예요.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살도록. 그게 야곱의 기도였어요.

예.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들 왜 우리가 기도합니까? 응답받기 위해서. 내가 잘되기 위해서 물론 그렇게 기도하는 거 중요해요. 중요해요. 그런데 내가 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변화하라고, 이렇게 회개하라고, 그래서 나 먼저 변화하라고, 나 먼저 나를 보면서 하나님의 눈으로 보라보면서 변화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부분은 없는지를 돌아보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의 기도에 필요한 부분이다라고 볼 수 있어요. 어떤 부분은 어떤 분은 회개하라 그러면 회개하라 그러면 죄를 발견하는 것으로만 회개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아니에요. 그건 회개가 아니에요. 더 나아가야 돼요.

누구를 생각해 볼 수 있냐면 가론 유다와 세리를 생각해 볼 수가 있어요. 가론 유다와 세리는 둘 다 죄인이었습니다. 그죠? 가론 유다와 세리는 둘 다 죄인이에요. 근데 결과는 완전히 달라요. 왜요? 가론 유다는 자기 죄를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회개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다른 사람에게 나서긴 싫었어요. 자존심 상하니까. 어떤 면선 다른 사람에게 그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그가 선택한 회개의 방법은 자살이었어요. 아무도 모르게 죽는 것. 아무도 모르겠 그게 어렵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는. 근데 그건 회개가 아니죠. 회개가 아니죠.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은 세리였어요. 그 세리는 어떻게 합니까? 주님을 만났어요. 그리고 회개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탈취한 재물이나 이런 모든 것들을 자기가 나누어 줍니다. 사람들에게 드러내놓고 자기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드러내는 거예요. 내가 부족했다. 내가 잘못됐다. 그래서 내가 대신 이것을 갚아 준다. 그래서 그의 삶에 그 모습이 드러나는 거예요. 그게 세리의 회개였어요.

여러분들, 우리의 회개는 어떠합니까? 그냥 죄만 발견했다. 그래서 회개가 다 됐다라고 생각하세요? 아니에요. 내가 변화돼서 변화된 모습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 다른 사람을 세워 주는 것까지 이어질 때 그것이 제대로 된 회개의 모습이 되어진다라는 거예요. 그렇죠?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당시에 맞아요. 그들의 회개는 제대로 된 회개가 맞았어요. 제대로 된 회개하다 보니까 어떤 일들이 이루어지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는 결국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돼요. 회개하면서 사랑을 경험하게 돼요. 오늘 말씀 31절에 보면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주는 은혜로우시며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게 뭐냐면요. 회개하는데 밑뚜끝 없이 계속 회개가 나오는 거예요. 조상부터 자기들까지 밑두끝없이 회개해요. 회개하다 보니까 뭘 느끼게 되냐면 야 우리는 심판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정말 매맞아 마땅하고 죽어 마땅하다라는 걸 느끼게 되는 거예요. 근데 보니까 우리가 아직 살아 있어요. 우리 민족이 아직 남아 있어요. 그걸 보면서 야 주님의 긍휼하심이구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심이구나. 그 31절 나온 고백이 그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거예요. 회개를 통해서. 예. 사랑을 경험하게 돼요.

근데 사랑을 경험하는 것을 끝나는 게 아니라 결국에는 이들은 38절에 이런 걸 체험하게 돼요. 그러면 우리가 이 모든 일에 인하여 이제 경고한 언약을 세우고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을 치나이다 하였나이다. 인을 쳤다. 성령의 인이 인을 친 거예요. 이게 무슨 얘기예요? 이들의 회개를 통해서 성령님께서 이들의 도장을 찍으시는 거예요. 무슨 얘기예요? 너희는 내 백성이야라고 도장 찍어 주시는 거예요. 이들의 회개를 통해서. 이들이 기도를 통해서. 예. 그리고 이 도장을 찍었다는 얘기는 누구냐면 어느 누구도 이제는 파할 수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사인했어요. 끝이에요. 하나님이 사인하신 거예요. 예. 마치 에베소서 1장 13절에 보면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성령의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라고 얘기하는 거 마찬가지예요. 성령의 인치심을 통해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거예요. 근데 자녀뿐만 아니라 우리는 뭐가 되냐면 성령의 도우심 속에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찬가지예요. 이 인침심을 통해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느냐 하면 이들이 첫째로 성적인 순결을 지키기로 다짐을 해요. 근데 여러분들 이게 우리가 비교해 볼 게 뭐냐면 아까 우리가 파수꾼의 우선 순위였죠. 우선순위. 그 두 번째가 뭐냐면 하나님이 경외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 거잖아요. 이들은 성령의 인치심을 통해 이제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 거룩한 삶을 살게 된 거예요. 그리고 살기로 결단하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파수꾼의 우선 순위가 제대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제 제대로 이루어지게 된 거죠. 기도를 통해서. 그렇죠? 그리고 이 두 번째로는 주의를 철저하게 지키기로 이들이 다짐을 합니다. 그 두 번째, 근데 이것도 아까 우선순위에 들어가죠. 예배가 우선순위였잖아요. 예배가 우선순위 바로 여기 있는 거예요.

그리고 세 번째는 헌신과 충성이었죠. 헌신과 충성. 이 성령의 인치심을 통해서 이들이 세 번째로 하나님의 것을 구별해 드리기로 다짐을 합니다. 근데 이게 헌신과 충성과 뭐 상관이 있느냐 하면 32절에 보면 “우리가 또 스스로 규례를 정하기를 해마다 각기 세계의 3분을 수납하여 하나님이 전을 위하여 쓰게 하대”라고 이건 11조 이외에 하나님께 드린 거예요. 물질을. 왜요? 교회가 안 돌아가니까. 그 당시 교회에 돈이 없으니까 제사장이나 아무도 뭘 먹을 걸 줄 게 없어요. 그까 봉사할 수가 없는 거야. 헌신과 충성을 할 수 있지가 않으니까 성도들이 헌신과 충성을 위해서 드린 거예요. 물질을 11조 외에도 더 드린 거예요. 바로 그걸 얘기하는 거죠. 그것도 아까 그 우선순위에 들어가잖아요. 그렇죠. 헌신과 충성. 바로 우리를 돌아보며 회개하며 우리 스스로를 발견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올 때 하나님의 사랑을 기도하며 나올 때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령의 인치심을 통해서 이제 성령의 도우심으로 파수꾼의 우선 순위를 감당하게 돼서 그 파수꾼은 바로 교회를 지키고 그 파수꾼은 바로 가정을 지키고 그 파수꾼은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그런 제대로 된 파수꾼이 되어졌다라는 거죠. 바로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길 원합니다.

이제 말씀의 결론을 내리면요. 우리가 이제 설교 후에 부를 찬양이 “여기 모두 끝나면 주 앞에 나와 더욱 진실한 예배를 드린다”라고 그러거든요. 그 예배라는 게 우리의 찬양과 지금 축도 끝난 예배가 끝난 게 아니에요. 이제는 여러분들이 세상에 나가서 살면서 일하면서 쉬면서 사랑하면서 이제 그때부터 어떠면서 제대로 된 더 제대로 된 예배를 드리는 성도가 제대로 된 파수꾼이다라는 거거든요. 바로 그러한 예배자가 되기 원해요. 예배가 우선인 사람, 주의 몸 된 교회를 헌신하고 충성의 우선인 사람, 경건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우선인 성도,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 기도하고 나를 변화되는 기도, 내가 변화되는 기도. 그래서 그 기도를 통해 사랑을 체험하고 성령의 인치심을 받아 성령의 힘으로 이제는 살아가면서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며 교회를 바라보며 새로운 비전을 꿈꾸며 하나님과 함께 꿈꾸며 그렇게 제대로 된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네가 바로 하나님 나라를 지키는 교회를 지키는 가정을 지키는 내 스스로를 지키는 파수꾼이다라고 말씀해 주심에 주님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제대로 된 파수꾼 되길 원합니다. 예배가 우선인 삶을 살아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혼자만의 파수꾼이 아니라 하나님 파수꾼이 되어 주시는 그런 제대로 된 파수꾼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경건케 하여 주시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사탄 막이 틈탐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헌신이 우선이게 하시고 충성이 우선된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우리는 부족합니다. 성령님 인쳐 주시옵소서. 도와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 우리가 변화되기 위해 기도하는 우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우리의 기도가 변화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를 통해 나를 보게 하시고 회개케 하시고 변화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제대로 된 파수꾼이 돼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며 꿈꾸며 비전을 가지고 주의 뜻을 함께 이루어가는 그런 충성된 파수꾼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여기만의 예배가 아니라 세상에 나가 제대로 된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스터디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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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정리

  • 제대로 된 파수꾼은 예배를 우선으로 해야 한다.
  •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파수꾼의 필수 조건이다.
  • 헌신과 충성이 있는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 기도하는 파수꾼이 되어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진다.

나눔 질문

  1. 우리가 예배를 우선순위로 두고 있는지 어떻게 점검할 수 있을까요?
  2.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3. 교회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헌신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4. 기도를 통해 나의 변화를 위해 어떤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이번 주 적용

이번 주에는 매일 예배의 중요성을 되새기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하기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기도 · 묵상

하나님, 내가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예배와 기도를 통해 주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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